주간동아 721

2010.01.26

아, 사람이 그립고 그립다

저출산 초고령 2040년 코리아, 강희생 씨의 어느 하루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0-01-19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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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는 2001년 이후 합계출산율 1.3명 이하의 초저출산 사회를 이어가고 있다. 매해 출생아 수도 평균 50만명에 불과하다. 한 세대 전인 1970년대의 평균 출생아 수 100만명의 절반 수준. 그렇다면 한 세대 후인 2040년, 지금의 아이들이 핵심 노동계층이 됐을 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1명의 핵심 노동인구가 2명의 부모는 물론, 2명의 조부모까지 부양해야 하는 사회가 되어 있지 않을까. ‘주간동아’는 2000년 ‘밀레니엄 베이비’로 태어나 2040년을 살아가는 ‘강희생’ 씨의 하루를 가상으로 만들어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장, 한국개발연구원 문형표 경제정보센터 소장, 한국조세연구원 최준욱 선임연구위원, 미래학자 최윤식 교수, 김광수경제연구소 선대인 부소장,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에게 도움말을 받았다. 각종 국내 연구소의 저출산, 고령화 관련 보고서와 유엔미래보고서도 참고했다.
    아, 사람이 그립고 그립다
    물컵을 집어든 ‘무자녀’(60) 장관 후보자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아이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장관에 오를 수 있냐?”면서 야당 의원들은 핏대를 올리며 그를 다그쳤다. 청문회가 열리는 국회 밖에선 일부 과격논자들이 “아이가 없는 사람이 공직에 오르는 걸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법안을 발의하자”며 영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기 2040년 1월19일 오전 8시, 아침식사를 하면서 3D 영상으로 실감나게 펼쳐지는 이 장면을 지켜보던 ‘강희생’(40) 씨는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이 완전히 맛이 갔다”며 혀를 끌끌 찼다.

    무 후보자는 국내 최초 베트남 혈통으로 당선된 ‘고세안’(51) 대통령의 오른팔로 꼽힌다. 젊은 이미지를 내세우며 혜성처럼 나타난 고 대통령은 “국민연금 수령 연령을 기존 65세에서 80세로 높이겠다”는 파격적인 공약과 각종 감세안으로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2038년 12월 당선됐다. 그는 현재 생산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혼혈인과 이민자는 물론, 20~ 40대 젊은 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형제, 자매, 삼촌, 고모가 없는 사회

    하지만 그의 공약은 어마어마한 인구를 자랑하는 60대(1970년대 생)의 거센 반대로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고 대통령 역시 결단력 있는 태도를 보이지 못했고, 그를 지지하던 세력도 등을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고 대통령은 ‘무자녀’인 무 후보자를 제1부처인 ‘감세정책부’ 장관으로 지명했던 것. 저출산, 초고령 사회인 2040년 한국에선 자녀를 일부러 가지지 않는 건 최악의 ‘매국 행위’로 여겨진다. 최근 무 후보자가 허위 ‘불임증명서’를 요구한 적이 있다는 병원 측 폭로가 이어지면서, 언론은 연일 그를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짜증 가득한 얼굴로 영상을 보던 강씨는 TV를 끄고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그는 학교가 있는 몇 안 되는 동네에서 다섯 살 어린 아내와 초등학교 2학년인 딸 희망(8)이와 함께 살고 있다. 2000년대에 태어난 강씨 부부는 모두 형제, 자매가 없다. 희망이는 삼촌, 이모, 고모란 말은 알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1개 동에 100가구가 사는 이 아파트에서 강씨처럼 아이를 키우는 집은 다섯 가구밖에 없다. 10대 청소년부터 20대 초반 청년은 10명 정도 보인다. 반면 50대 이상 장·노년층 부부가 사는 집은 50여 가구나 된다. 그중 15여 가구는 부부의 평균 나이가 65세 이상이다.

    그래도 이곳은 ‘초등학교’가 있어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많은 편이다. 한국은 40년 전인 2001년 초저출산 사회가 시작된 이래, 10년간 단 한 해도 출산율 1.3명을 넘어선 적이 없다. 2010년 처음으로 서울시내 2개 초등학교가 줄어든 학생 수 탓에 통폐합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10년간 순차적으로 초·중·고교와 대학이 학생 수 부족으로 줄줄이 문을 닫았다.

    강씨는 이 동네로 이사 오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인구가 줄어듦에 따라 부동산 가격은 급격히 떨어졌지만, 학교가 있는 동네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이 학교가 있는 동네로 몰려들었기 때문. 학교가 없어진 곳에는 사람들도 사라졌고, 거대한 아파트 단지만 덩그러니 남았다. 수도권은 말할 것도 없이, 서울에서도 학교가 있는 인구 과밀지역과 학교가 사라진 과소지역으로 확실히 나뉘었다. 인구가 줄었는데, 사람들은 더 빽빽이 모여 산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강씨 역시 과소지역에서 과밀지역으로 옮겨오는 데 10년이 걸렸다.

    아, 사람이 그립고 그립다
    월급의 40%, 세금과 사회보험료

    강씨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지하철은 여전히 최고의 교통수단이다. 30년 전만 해도 출근 시간대 이용객이 매우 많아 ‘지옥철’이라고 불렸다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출근 시간대 이후 노인 이용객이 더 많아졌다. ‘배려석’ 개념이었던 노약자석도 사라진 지 오래.

    오늘은 월급날이다. 예나 지금이나 직장인은 월급날이 가장 즐겁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강씨는 컴퓨터를 켜고 월급명세서를 확인했다. 기쁨도 잠시. 한숨부터 나온다. 세금,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으로 월급의 40%가 이미 빠져나갔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래, 감세정책을 꾸준히 펴서 줄인 게 이 정도다.

    세금과 사회보험료가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 연금을 받고 병원진료가 많이 필요한 노인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이를 부담하는 젊은이는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 쉽게 말해 30년 전인 2010년에 비해 2040년의 노인 인구(65세 이상)는 대략 3배 늘어났고, 핵심 노동인구(25~49세)는 3분의 2로 줄었다. 즉, 노인 부양 부담이 약 5배로 늘어난 셈. 국민연금, 장기요양, 건강보험 등 노인 부양 관련 공공지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에 이른다.

    그래도 강씨는 ‘이 돈이 저 멀리 실버타운에서 살고 있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에게 간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하긴 돌이켜보면 어릴 적 그는 부모는 물론, 조부모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를 키운 건 일하는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였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들어간 ‘엄청난’ 학원비는 할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 사랑이 세금이 되어 돌아온 게 씁쓸하고 억울하지만, 어쩌겠는가.

    강씨가 다니는 회사는 3D 입체 화상진료기계를 만드는 기업이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환자의 장기 내부 영상을 찍어 의료진에게 전송하는 기계로, 세계 각지의 의료인들로부터 화상으로 진료나 시술, 처방을 받을 수 있다. 그는 세일즈팀장을 맡았다.

    오늘 오후엔 신의주에서 바이어와 미팅이 있다. SUKTX (Super Ultra KTX)를 타면 1시간밖에 안 걸리는 거리다. 점심을 먹고 서울역에서 신의주행 SUKTX를 탔다. 문뜩 지난해 초 신의주에서 마지막으로 받았던 ‘혹한기 예비군 훈련’이 떠올랐다.

    2020년 저출산의 여파로 군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자, 다급해진 군당국은 예비군을 통해 전력을 보완하기로 결정했다. 예비군 훈련기간을 만 39세까지로 대폭 늘린 것. 동원 예비군과 정예 예비군으로 체제를 분리했고, 정예 예비군의 경우 현역 군인 못지않게 훈련해 유사시 바로 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2030년 남북통일이 이뤄진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전방 초소가 휴전선에서 중국과 맞닿은 국경선으로 옮겨졌을 뿐. 정예 예비군이었던 강씨는 지난 15년간 신의주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영하 30℃, 칼바람이 부는 날 전방 보초를 서다가 초소에 잠시 들러 마시던 따뜻한 보리차가 정말 맛있었는데….”

    지긋지긋한 훈련이었지만, 이젠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아련하게 아쉬움이 남았다.

    오후 3시,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인 인도인 크리슈나(48) 이사와 만났다. 압록강을 내려다보며 대화를 나누던 중 크리슈나 이사는 “당신네 회사가 중국이나 인도로 이전한다는 말이 들리던데, 사실이냐”며 넌지시 묻는다. 사실 그는 최근 회사의 이전설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2020년부터 주요 소비 계층인 젊은 인구가 줄면서 한국 내수시장의 규모가 급속히 작아졌다. 2040년 현재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한국 시장만을 위해 상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대형 공장은 한반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2040년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인구수는 4500여 만명. 수만 놓고 보면 30년 전인 2010년과 큰 차이가 없지만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먹고 마시고 놀고 소비하고, 그리고 이를 위해 일하고 저축하는 인구(25~49세)는 27.6%로 급감했다(2010년 41.3%). 근로자의 평균 연령도 약 42세로 높아졌고(2010년 약 39세), 평균 저축률은 15%로 떨어졌으며(2010년 30%), 잠재성장률은 1%대(2010년 5%대)에 머물러 있다.

    아, 사람이 그립고 그립다
    2010년 선심성 돈쓰기, 2040년 대재앙으로

    이렇다 보니 가뜩이나 작았던 내수시장이 더 작아졌다. 기업은 더욱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글로벌 기업의 몇몇 해외법인 매출이 국내 본사 매출의 10배를 넘어선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거대 인구를 자랑하는 아시아 대륙에 대한 의존도는 매우 높다. 2030년 이후 세계 경제의 중심은 아시아로 넘어왔다. 특히 17억, 14억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와 중국은 아시아 경제의 ‘핵’이다. 일부 과격파 학자들 사이에선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완전히 통합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2030년에 있었던 남북통일 역시 인구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됐다. 통일이 되기 전 일부 학자들은 “통일이 되면 인구가 대략 30% 이상 늘어 인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먼저 5000조원에 이르는 통일비용이 고스란히 부채로 남아, 가뜩이나 세금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의 어깨를 더욱 짓누르고 있다. 만일 통일이 1970년대처럼 GDP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고성장 사회에서 이뤄졌다면, 국가 부채를 털어내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2020년부터 저출산, 초고령화로 저성장 사회에 들어섰다. 당시 북한 역시 고령 인구의 비율이 남한 못지않게 높았다. 젊은 인구의 생산성은 남한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으며, 그만큼 교육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또 통일 후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느라 최근 북한 주민들은 아이를 거의 낳지 않고 있어 더 큰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으로 오는 이민자 수는 급증했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 등 아시아지역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민자는 과거처럼 한국인들이 꺼려하는 3D 업종에 종사하는 부류와 고학력 엘리트 출신으로 대기업 등 고급 직종에 포진한 부류로 나뉜다. 최근 정부는 이민정책을 고급인력 중심으로 바꿨다.

    크리슈나 이사 역시 비슷한 경우다. 일부 보수 우익단체에서는 “이민자들이 한국의 부를 본국으로 빼간다”고 비난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들에게 고마워한다. 이들이 들어와 생산과 소비량을 조금이라도 높여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울행 SU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선(禪)사랑 회원들이 객실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기술적 진보를 거듭해 첨단 사회로 갈수록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성’에 몰입했다. 강씨 역시 매주 선사랑 지부에서 수행을 한다. 부양해야 할 노인만 가득한 세상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주말엔 산촌에 가서 농사를 짓는 등 ‘원시’적 생활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인간 본연으로 돌아가자’는 모토를 내세운 영성단체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어떤 것도 ‘영성’이라는 이름을 달면 상품이 되어 팔려나간다.

    아, 사람이 그립고 그립다
    “2100년엔 삼국시대, 2200년엔 부족국가?”

    삐리리~! 희망이에게서 영상전화가 왔다. 강씨에게 희망이는 유일한 희망이다. 중국이나 인도로 유학 가는 친구들과 매일매일 작별해야 한다고 슬퍼하는 희망이를 바라볼 때면 강씨의 마음은 무척 아팠다. 그래도 희망이는 항상 밝다. 오늘도 한국 현대사 시험에서 95점을 받았다며 자랑이다.

    “아빠, 현대사 주관식 문제가 ‘2010년부터 2020년 사이를 무엇이라고 일컫느냐’였거든요. ‘잃어버린 10년’이 답이었는데,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이것만 맞혔으면 100점인데. 그런데 왜 이때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해요? 선생님도 자세한 설명은 안 하고 그냥 외우라고 하세요.”

    예나 지금이나 주요 인물들이 생존해 있는 ‘현대사’는 민감하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는 2000년에 시작된 저출산의 문제가 싹을 틔웠고,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시작하면서 고령화 사회의 전조를 보이던 시기다. 2020년엔 부동산 버블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부동산에 자산이 몰린 베이비붐 세대는 순식간에 빈민 노인층으로 전락했다. 노동인구(15~64세)는 2016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핵심 노동인구(25~49세)는 더 빠르게 감소했다. 소비와 투자가 줄자 경제성장률도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드라마틱한 변화의 전초가 바로 이 시기에 이뤄진 것이다.

    정부는 물론 국민도 위기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아니, 그때까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기에 앞으로 다가올 폭풍을 애써 외면했다. 정부에겐 ‘표’가 되지 않는 ‘강씨’ 세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2020년 이후 급속도로 늘어날 정부 지출을 고려한다면, 당시 정부는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최대한 많이 지니고 있어야 했지만, ‘선심성’ 돈쓰기는 계속됐다.

    사람들은 여전히 비싼 사교육에 자녀를 맡겨야 했다. 집값도 비쌌고 직장은 불안했다. 정부가 다양한 출산장려정책을 내놓았지만, 실제로 출산율이 가장 낮았던 중산층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건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사회적, 구조적 변화였지만 정부의 대책은 표면적이고 일회성 도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출산율 제고를 외쳐대도, 국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때의 폐해는 2040년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했다. 예를 들어, 강씨의 부모 세대인 1970년대에는 매해 100만명씩 아기가 태어났지만, 강씨 세대인 2000년대에는 매해 태어나는 아기가 50만명도 안 됐다. 강씨 세대가 모두 2명씩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이제 매해 태어나는 아기는 50만명에 불과하다. 이 세대 역시 1명씩만 낳는다면, 강씨의 자녀 세대는 25만명으로 줄고, 그 자식 세대는 12.5만명으로 줄 것이다.

    ‘이러다 2100년엔 삼국시대, 2200년엔 부족국가시대의 인구로 돌아가겠군.’

    강씨는 코웃음을 친다. 방긋 웃는 희망이를 보면서 지금이라도 활기 넘치고 기회가 남아 있는 중국이나 인도로 이민을 가야 하지 않을까 고민에 빠진다. 2010년 우리 부모는 왜 한 명만 낳았던 것일까. 왜 그때의 사회는 우리의 부모로 하여금 한 명씩 더 낳게끔 대처하지 못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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