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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한국은 일본을 얼마나 따라잡았나 12

“한국의 문화 DNA, 일본이 벤치마킹”

지한파 호사카 유지 교수 “유교사상은 물론, 기업들도 한국 따라하기”

“한국의 문화 DNA, 일본이 벤치마킹”

“한국의 문화 DNA, 일본이 벤치마킹”
‘우리역사 독도’(2009), ‘일본 古지도에도 독도 없다’(2005), ‘일본에 절대 당하지 마라’(2005), ‘일본에게 절대 당하지 마라’(2002)….

일본에 비판적인 한국인이 쓴 책이 아니다. 아니, 7년 전에 귀화했으니 한국인인 건 맞다. 하지만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쓴 책이다. 세종대 교양학부 호사카 유지(53·사진) 교수가 그 주인공.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독보적인 독도 전문가다. 1988년 고려대로 어학연수를 왔다가 정치학으로 전공을 돌려 석·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한국에 눌러앉은 뒤 올해로 22년째다.

그 사이 “법적, 문화적으로 한국 사람이 다 됐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는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일주일씩 일본에 다녀오는 것을 빼고는 줄곧 한국에서 산다. 그렇다고 일본과 무관하지는 않다. 그의 전공이 ‘일본지역학’이다. 특히 한일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독도’가 그의 부전공이다.

그에게 일본은 어쩌면 애증의 대상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의 눈에 한일관계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그리고 경술국치(한일강제병합) 100년이 지난 지금, 일본과 한국의 모습을 그는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12월 마지막 주 월요일(28일), 마침 일본에 다녀온 호사카 교수를 세종대 교수실에서 만났다. 먼저 경술국치가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지에 대해 물었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도움이 됐다는 소위 ‘식민지 발전론’에 나는 반대한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외형적인 발전이 있었다고 해도 이는 한국에 사는 일본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한반도나 한국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정책만 봐도 그렇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고도의 기술교육을 가르친 반면, 한국 사람들에게는 보조기술만 가르쳤을 뿐이다. 일본이 패전 후 한국을 떠나면서 남기고 간 시설이나 기계를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만 봐도 그렇다. 일본이 한국을 발전시켰다면 광복 직후 세계 최하위의 극빈국으로 전락할 수 있었겠나. 또 하나는 ‘식민지 수탈론’인데, 나는 여기에도 전면적으로 찬성하진 않는다. 큰 틀에선 맞는 주장이지만, 확실한 증거를 찾아서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철저히 분석하고 증명해야 한다.”



100년 전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이유는 뭐라고 보나.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100년 전과는 위신이 다르지만, 지금도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6자회담을 통해 주변 열강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처지다. 또 지금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동북아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패권을 다툴 가능성이 큰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재자, 균형자 노릇도 해야 한다. 하지만 100년 전엔 그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은 망하고 일본은 전쟁을 일으키게 됐다.”

오랜 기간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한국은 어떤 나라라고 느꼈나.

“분단이라는 현실이 한국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무척 크다. 사람들도 늘 불안요소를 안고 사는 것 같다. 한국 기업의 주가가 실적이나 가치만큼 올라가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분단 현실을 잊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같은 게 늘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고 불안해한다. 당장 눈앞에 좋은 것이 있으면 서로 차지하려고 싸운다. 이런 이유로 성급한 성격이 형성된 게 아닐까. 그래도 한국 사람들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예의를 잘 지키고 정이 많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떤가.

“일본은 분단돼 있지도 않고 외부의 침략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5년 후 또는 10년 후에 대한 계획을 쉽게 세운다.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나고 글로벌 경제시대라 불안한 면이 없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열심히 살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요즘 일본 사회는 전체적으로 가치관이 붕괴됐다. 위아래 권위가 없고, 정신적 질서도 사라졌다. 누군가 조금만 잘못하면 엄청난 지탄을 쏟아붓는다. 총리가 자주 바뀌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국에는 삼강오륜 같은 유교적 가치관이 규범으로 통하지만, 일본에선 상식으로만 남아 있다. 일본에선 효도도 더 이상 규범이 아니라 상식이다. 여러 사정으로 효도를 못해도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공공질서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한국 사람보다 일본 사람이 낫지 않나.

“일본에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규범이다. 그런 점은 한국 사람들이 배워야 한다. 일본 공항에선 검색대 앞까지 카트를 끌고 가면 안 되는데, 이를 어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한국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끼어들기를 잘한다. 이런 것은 질서를 파괴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다. 일본에서 함부로 끼어들기를 했다가는 사람들이 다 차를 세워놓고 비난한다.”

일본에서 한류가 성공한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일본 것보다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토야마 총리도 드라마 ‘이산’ 팬이다. ‘나도 정조 같은 정치를 하겠다’고 말할 정도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는 일본 드라마,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랑 얘기와 액션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일본 드라마와 영화의 사랑 얘기는 매우 표면적이다. 일본 사람들은 목숨을 건 사랑이라는 것을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재발견했다. 그래서 욘사마 열풍이 분 것이다. 액션 장면도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훨씬 강력하다. 일본에서는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장면이 많다. 여기에 가족을 생각하고, 예의바름과 남을 먼저 생각하는 내용이 일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최근 또다시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일 양국이 마찰을 빚고 있다. 현재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보나.

“큰 틀에서 이명박 정부와 하토야마 정부는 우호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독도 문제가 뇌관으로 남아 있다. 이번 일본 고등학교 해설서의 독도 기술 문제를 놓고 하토야마 정부가 상당히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결국 독도를 표기하는 대신 ‘중학교 해설서에 입각해서’라는 말을 넣어 사실상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포함시켰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하토야마 정부는 선거공약을 많이 수정하면서 자민당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등 어려움에 처해 있다. 아마도 이런 국내 상황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하토야마 정부는 기본적으로 자민당 정부와 자세가 다르다. 동북아 문제든, 역사 문제든 한국 정부와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최근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자고 먼저 말을 꺼낸 것도 하토야마 총리다. 야스쿠니 신사에도 안 간다고 했고, 한·중·일 공동 역사교재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도 하토야마 총리다. 그런 일본 정부에게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인정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하토야마 정권은 무너진다. 독도는 이제 역사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한일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지금까지는 한국이 일본에게 배우는 부분이 많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한국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유교사상을 배우려는 일본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이제 일본 기업들이 한국의 삼성과 LG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가 정책을 관료 중심에서 정치인 중심으로 바꾸려는 것도 한국의 정치를 따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양국관계는 더 좋아질 것이다. 한일관계는 대립하는 것보다 협력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주간동아 2010.01.12 719호 (p48~49)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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