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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한국은 일본을 얼마나 따라잡았나 11

“보수적 일본, 높은 시민의식 배울 만”

지일파 최상용 前 주일대사 “서로를 필요로 하는 두 나라 미래 낙관”

“보수적 일본, 높은 시민의식 배울 만”

“보수적 일본, 높은 시민의식 배울 만”
2001년 4월10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주일대사를 전격 소환했다가 열흘 만에 귀임시킨 일은 한·일 정치외교사에서 유명한 일화다. 일본이 문부성 검정 역사교과서를 축소, 왜곡하려고 하자 전례 없이 강력하게 항의를 표시한 것. 당시 주일대사가 바로 최상용(67·사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겸 희망제작소 상임고문이다.

최 고문은 대표적인 지일파다.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인 그는 서양정치철학이 전공이지만 석·박사 학위를 일본 도쿄대에서 받았다. 그 후 국내 주요 대학에 적을 두고 도쿄대 초빙교수, 미국 하버드대 일본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일본과 지속적으로 연을 맺어왔다. 한일 대중문화 개방에 앞장서 일본에 ‘한류’ 바람의 토대를 만들기도 했다. 그에게 경술국치(한일강제병합)의 의미와 일본은 어떤 나라이며 일본인은 누구인지, 한국과 한국인은 그들에게 무엇을 배우고 느껴야 할지, 그리고 한일관계의 현재와 미래 등에 대해 들어봤다.

경술국치는 우리나라에 어떤 의미가 있는 사건인가.

“한·중·일 동북아 3국이 외부세력의 압력에 대응하는 과정, 즉 산업화와 근대화 경쟁에서 일본이 앞선 결과다. 중국은 산업화와 근대화에 앞선 일본의 침략전쟁에다 서구 열강까지 밀고 들어오면서 반(半)식민지화했고, 우리는 일본의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했다. 외압에 대한 대응에서 우리가 가장 실패한 것이다. 그 결과가 1910년 한일(강제)병합조약이다.”

학계에서는 ‘식민지 발전론’과 ‘식민지 수탈론’이 맞서고 있는데.



“유네스코 헌장이나 세계사의 보편적 합의에서 ‘식민지주의’는 나쁜 것으로 돼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식민통치에는 근대화의 역할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식민지 근대화론이 결코 식민통치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식민지 수탈론자들도 엄연한 사실을 외면한 측면이 있다. 역사적인 사실 확인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100년 전의 한일관계와 지금의 한일관계를 비교한다면.

“100년 전 한국과 일본은 철저히 피해자와 가해자,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관계였다. 1945년부터 한일수교가 이뤄진 65년까지는 무(無)국교 시대였다. 20년간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 양국 간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된 것은 1998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대중문화를 개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러면서 일본에 ‘한류’붐이 일었고, 시민 간 교류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5년은 ‘한일 우정의 해’였다. 그해 역사왜곡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정부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양국에서 무려 750건의 문화행사가 성공리에 치러졌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일본인의 한국 선호도가 63%에 달했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직후엔 1년에

1만명 정도가 양국을 오갔지만, 지금은 하루에 1만3000여 명이 교류하고 있다. 그만큼 양국관계가 발전했다.”

일본은 어떤 나라라고 생각하나.

“일본은 한마디로 ‘연속성의 국가’ ‘보수적인, 너무나 보수적인 국가’다. 역사를 보는 큰 틀이 ‘연속성’과 ‘변화’다. 상대적인 이 두 개념 가운데 연속성을 중시하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하나의 왕조가 1500년간 한 번도 변하지 않은 나라는 지구상에 일본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 사람들이 역사의 연속성을 자랑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일본이 전통과 문화를 잘 보존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니 당연히 진보나 혁명보다 보수가 강하다. 전통, 문화, 제도 모든 분야에서 보수적인 국가다. 간혹 일본 정치가 보수화한다든지, 우경화한다는 말을 하는데 더 이상 보수화할 것도, 우경화할 것도 없는 나라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우리나라는 신라에서 고려로, 다시 조선으로 큰 왕조의 변화가 있었다. 엄청난 역성혁명을 통해서다. 연속성보다 변화의 국가다. 민주주의 성취과정을 봐도 그렇다. 일본과 한국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국가다. 일본은 시민혁명의 경험이 없다. 메이지유신의 ‘유신’은 영어로 ‘restoration(복원)’이다. 권력과 권위가 없던 천황에게 이를 복원시킨 것이다. 메이지 천황이 일본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과 권위를 독점했고, 이런 천황을 정점으로 근대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서양 민주주의를 배웠다. 일본 민주주의는 학습 민주주의다. 쟁취한 것이 아니다. 역사의 연속성에 뿌리를 두고 서구 민주주의를 일본 나름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반면 우리는 30년간 피 흘리면서 민주주의를 쟁취한 나라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피 흘리며 쟁취한 나라는 우리뿐이다. 동학혁명, 3·1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등 준(準)시민혁명이 헤아릴 수 없이 일어났다. 그게 일본과 한국의 차이다.”

근본적으로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의 국민성에도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일본 사람을 ‘내향적 유형’, 한국 사람을 ‘외향적 유형’으로 분류하는 학자들이 있다. 기질, 행동방식의 패턴에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추진력이 놀랍고 결단도 빠르다. 그 대신 실수가 잦다. 반면 일본 사람들은 매사 철저해 실수가 적을지는 몰라도, 추진력이 약하다. 또 하나는 ‘문인정치’와 ‘무사정치’의 차이다. 이 차이의 경계는 바로 과거제도다. 한국은 이를 채용했다. 오늘까지 ‘사서삼경’을 읽던 사람이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내일부터 정치를 해야 한다. 학문과 정치가 연결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제도를 채택하지 않은 일본은 완전히 단절돼 있다. 지식인의 정치참여가 거의 없다. 따라서 양국의 정치적 성향도 크게 다르다. 한국은 명분을 내세우고 이론투쟁을 벌인다. 힘에 이념까지 실리면 타협이 쉽게 되지 않는다. 이념성향이 적고 칼을 중시하는 일본은 승부가 분명하다. 타협도 쉽다.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은 서로 다른 만큼 서로 배워가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한국 사람이 일본 사람보다 많이 부족하지 않나.

“일본 사람들의 규범과 규칙, 태도는 문화적 쇼크를 느낄 정도로 우리와 차이가 크다. 늘 겸손하고 규칙을 잘 지킨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우열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 많다. 우리 국민의 지적 수준은 상당히 높다. 그러나 민주의식과 시민의식은 많이 떨어진다. 적극적이고 추진력 있는 한국 사람들이 겸손함과 남에 대한 배려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한일관계를 전망해본다면.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심스럽지만 낙관한다. 두 나라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한국을 뺀 일본은 대중, 대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반면 한국과 협력하면 시너지 효과가 훨씬 클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일본과 협력해야 대중관계에 힘이 실린다. 두 나라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도 조심스러운 이유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독도’ ‘역사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세 가지다. 하지만 이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이미 해답이 나와 있다. 일본의 대표적 보수논객인 와타나베 쓰네오(‘요미우리신문’ 주필 겸 회장)와 대표적인 보수정치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는 물론, 현 민주당 내각의 주요 정치인들 대부분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있다. 역사교과서는 역사적인 사실 확인 문제와 해석 문제, 두 가지다. 무엇보다 사실 확인 작업이 중요하다. 일본도 확인된 사실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해석에서는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 국민이 만족할 만한 최선의 답은 없다. 우리의 실효지배를 포함한 평화적인 현상유지가 차선이다. 한국은 일본이 자극하는 만큼만 반응하면 된다. 현 하토야마 내각은 일본 내에서도 그나마 합리적인 집단이다. 이들을 자극하거나 궁지에 몰지 않으면서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문제에 관한 쟁점을 해결하는 데 현 하토야마 내각은 우리가 일본의 현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양질의 정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한일 양국 지도자들의 사려와 용기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주간동아 2010.01.12 719호 (p46~47)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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