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9

2010.01.12

“남들도 다 하는데…” 비리 얼룩 홍성郡

군수 뇌물사건 이어 서무담당 공무원들 예산 빼돌리기 … ‘충절의 고장’ 이미지에 먹칠

  • 홍성=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0-01-06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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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도 다 하는데…” 비리 얼룩 홍성郡
    거대한 충남 홍성군청 코앞에 조그만 J사무기기 사무실이 있다. 군청 직원들은 군내에 사무용품 납품업체가 서너 곳 있는데도 주로 이곳을 이용했다. 걸어서 채 1분도 걸리지 않아 드나들기 편리한 데다 J사무기기 대표의 아내가 홍성군청 주민복지과 직원이라 끈끈한 관계였던 까닭이다.

    J사무기기 대표는 홍성군청의 ‘심부름꾼’을 자처한 사람이었다. 군청 각계의 서무담당자들이 연락해오면 가짜로 세금계산서 떼어주는 일을 밥 먹듯 했다. 물건을 팔지 않았으면서도 판 것처럼 서류를 작성해준 것이다. 그러면 서무담당자는 경리담당자에게 가짜 세금계산서와 함께 가짜 지출결의서를 제출했고, 경리담당자는 ‘심부름꾼’에게 물품 대금을 줬고, ‘심부름꾼’은 세금 등 수수료를 제하고 남은 돈을 서무담당자에게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J사무기기 대표는 1~2%의 수수료를 받아 그야말로 심부름만 한 꼴이 됐지만 결과적으로 납품 독점권을 따냈으니 밑지는 장사를 하진 않았다.

    공무원들이 이렇듯 허위 계산서로 공금을 횡령할 수 있었던 건 ‘심부름꾼’의 노력뿐 아니라 그들의 예리한 관찰력 덕분이기도 하다. 공무원들은 책상, 노트북컴퓨터 등 내구재를 구입할 경우 나중에 물품 구입 사실을 증명해야만 하지만, 쓰고 나면 흔적이 남지 않는 종이나 프린터 토너 등을 구입할 경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노렸다. 예산을 신청한 사람과 예산 집행 결과를 확인한 사람(물품이 제대로 납품됐는지 확인하는 사람)이 동일인물이니 마음을 졸일 일도 없었다.

    108명이 5년간 7억원 공금 유용

    12월21일 검찰 발표에 따르면 홍성군청 전체 공무원 677명(현원 668명)의 16%인 108명이 지난 5년간 이런 방식으로 군청 예산 7억원을 빼돌렸다고 한다. 세법상 회계장부, 세금계산서 보관 의무가 5년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그전에도 공금을 유용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고 짐작만 할 따름이다.



    검찰은 군 예산 3000만원 이상을 유용해 유흥비 등으로 쓴 6급 공무원 손모(44) 씨와 7급 공무원 박모(39) 씨를 사기 및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같은 방법으로 예산을 빼돌린 군청 직원 43명과 ‘심부름꾼’인 납품업자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한 나머지 공무원에 대해선 관계기관이 징계하도록 통보했다.

    기자가 홍성을 찾은 12월29일, J사무기기는 문이 굳게 잠긴 채 여직원 하나만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고, 군청은 군청대로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진 뒤에 징계를 할 것”이라며 노심초사해하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지나칠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은 우연히 포착됐다. J사무기기 직원의 공금횡령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수입지출 현황을 살펴보던 검찰이 많은 매출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은 수입에 의문을 품고 40일간 수사를 벌인 끝에 사건의 전말을 밝혀냈다.

    이 사건이 심각한 것은 홍성군청 전체 직원의 16%가 연루됐다는 사실보다는, 가담자 108명이 대부분 각계의 서무담당자라는 데 있다. 계장(6급)을 보좌하며 각계의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7급 90명이 걸렸으니, 홍성군청에서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7급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가담했다고 볼 수 있다. 모집단을 전체 홍성군청 공무원 수가 아닌 전체 서무담당자로 하면 가담률이 90%에 육박한다는 얘기. 가담하지 않을 것으로 드러난 나머지 18명은 과거에 서무를 담당한 5급, 6급 공무원들과 마땅히 서무담당자가 없어 ‘대타’를 자처한 8급 공무원들이다. 공무원들은 검찰 조사에서 “누구나 서무를 맡게 되면 그럴 수밖에 없다”며 호소했다고 한다. 홍성구청에서 만난 한 계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이 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말을 이어갔다.

    주민들 “창피하고 기막히다”

    “예산 횡령은 군청 16개 과 중에서 축산과 한 곳을 뺀 15개 과와 11개 읍면 중 9곳에서 일어났다. 5년간 7억원을 받았다면 1년에 1억4000만원을 받았다는 건데, 그걸 24개 조직(15개 과+9개 읍면)으로 나누면 연간 580만원이다. 그걸 또 12개월로 나누면 한 달에 50만원도 채 되지 않는 돈이다. 얼마나 돈이 없으면 이렇게 해서 운영비를 만들었겠나. 물론 이 돈을 개인 유흥비로 쓴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회식비나 대외판공비 등 공금으로 썼다. 다른 곳도 다 이렇게 할 것이다.”

    이 공무원은 대외판공비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예산자립도가 20%가 안 되는 상황에서 중앙부처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어 접대를 할 일이 자주 생기는데, 여기에 쓸 마땅한 경비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돈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그렇지만 문제가 불거진 지금도 뒤탈이 두려워 이런 명목으로 돈을 썼다고 변명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물론 개인 유흥비로 공금을 횡령한 공무원을 처벌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했지만.

    공금횡령 사건 때문인지 홍성군청 공무원들의 표정은 다들 무거워 보였다. 말을 걸어보면 대개 “아는 바 없다” “조직에 있는 내가 감히 말할 수 없다”며 대답을 피했고 “중앙의 방송매체에까지 우리 얘기가 나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씁쓸해하기도 했다. 홍성군청을 찾아온 주민들의 표정도 제각각이었다. “김좌진 장군, 한용운 선생의 고향에서 이런 일이 생기니 기가 막히다”는 주민이 있는가 하면 “세종시 문제로 우리가 밉보여 집중 공격당하는 것 아니냐”는 주민도 있었다.

    홍성군은 이래저래 고달프다. 2006년 당선된 이종건 군수는 2007년 버스공영터미널 이전과 관련해 50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가 지난 12월10일 대법원에서 징역 3년6월에 추징금 5000만원이 확정됐다. 군수 뇌물수수 사건으로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군청 내부의 고질적 비리가 전국에 공개됐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학자들은 중앙정부 등 외부기관들의 감사가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기초자치단체 공무원들이 타 지역과 인사교류를 하는 경우가 사라져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새해엔 홍성군청 정문에 쓰인 표어대로 ‘새로운 출발, 미래의 홍성 건설’이 실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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