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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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술로 찾아온 한국형 판타지 영웅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09-12-30 09: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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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술로 찾아온 한국형 판타지 영웅

    주인공 전우치(강동원 분·사진)를 포함해 개가 사람으로 둔갑한 초랭이, 악의 축 화담 등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최동훈 감독은 한국 영화의 장르적 변용을 개척해왔다.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는 할리우드산(産) 범죄물이나 도박영화에 익숙해진 관객을 단숨에 한국적 장르영화의 호흡 속으로 끌어들였다. 빠른 화면 전개, 감칠맛 넘치는 대사, 기억에 남는 캐릭터로 구성된 최 감독의 영화는 한국의 상업영화가 얼마나 영민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비유하건대 최 감독은 한국의 스필버그라 할 만하다.

    스필버그의 초기작들은 그다지 많은 제작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요구되는 것은 ‘평범한 휴양지에 식인상어가 나타난다면’ ‘외계인이 친구가 된다면’ 같은 상상력과 발상의 전환이었다.

    최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전우치’는 그런 점에서 발상의 전환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게 한다. 도사 전우치(강동원 분)는 우리가 어린 시절 민담이나 동화에서 읽던 한국의 전통적 영웅 캐릭터다. 영화 ‘전우치’에는 몇몇 흥미로운 장면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예를 들면 전우치가 수묵산수화 속으로 도망친다거나 여러 명의 인물로 나뉘는 분신술로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장면이다. 최 감독은 이러한 기행들을 일컬어 ‘도술’이라고 한다.

    사실 이런 장면들은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할리우드 스타일의 글로벌 슈퍼히어로에 길들여져 잊고 있었던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케케묵은 서사로 잊혀간 한국의 전통적 판타지를 현대적 문법으로 복원해냈다는 말이다.

    최 감독은 전통적 정서 안에 잠재한 초월적인 상상력을 현대 영화의 기술적 도움으로 현실화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전우치라는 독특한 캐릭터와 그의 행적을 기억해낸다. 최 감독의 ‘전우치’가 거둔 가장 큰 수확이라면 바로 이렇듯 고유한 영웅의 발굴이다.



    ‘전우치’는 글로벌 스탠더드로서 우세종이 된 할리우드의 장르영화적 규칙에 우리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실어낸다. 이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야기를 캐릭터 위주로 풀어나가는 감각적 스타일이다. 본디 개인데 사람으로 둔갑한 초랭이(유해진 분), 세상의 도덕을 자임하며 권력에 기생하는 악의 축 화담(김윤석 분), 자신이 세상의 구원인 줄도 모른 채 살아가는 서인경(임수정 분) 등은 전우치만큼 흥미로운 캐릭터로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어느새 ‘최동훈 사단’이라 불릴 만한 배우들의 호연도 볼만하다. 3명의 신선을 연기하는 주진모 송영창 김상호, 그리고 ‘타짜’의 아귀에 이어 ‘전우치’에서도 악역을 맡은 김윤석은 그들만이 할 수 있을 독특한 화법과 포즈로 캐릭터에 매력을 심는다. 반전이라 할 만한 몇몇 장치 역시 관객과의 두뇌싸움을 염두에 둔 듯 꼼꼼한 계산 끝에 자리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배역은 ‘개’로 열연한 유해진이다. 술병을 핥고 촐랑맞게 걸어다니거나 밥상머리에서 주책을 떠는 모습까지, 유해진은 ‘개’의 캐릭터를 인간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만하다. ‘슈렉’의 당나귀에 비견될 만한 초랭이는 도사 전우치의 면면을 입체화하는 데 한몫한다.

    영화 ‘전우치’는 최동훈 스타일의 결정판이자 위험성 높은 모험이다. 영화적 이입을 방해하는 판타지 구조나 후시녹음처럼 들리는 낯설고 빠른 대사톤은 편안한 웰메이드 상업영화에 익숙해진 관객에게 이질감을 줄 만하다. 번번이 등장하는 도술, 둔갑 장면과 요괴 출몰 장면이 할리우드산 컴퓨터그래픽에 비해 투박해 보일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최 감독의 이 모험은 귀추를 주목한다. 새로운 상상력으로서의 전통적 정서, 어쩌면 최 감독은 한국적 장르영화에 새로운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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