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8

2010.01.05

귀를 사로잡는 ‘fun fun 입담’

라디오 MC 전성시대 … 한바탕 재미있는 수다의 시간

  • 박길숙 라디오 작가 park-gil@hanmail.net

    입력2009-12-29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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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를 사로잡는 ‘fun fun 입담’

    청각매체인 라디오에서 MC의 입담은 청취율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힘이다. (시계방향으로)‘두시 탈출 컬투쇼’의 정찬우·김태균,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의 강석·김혜영,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조영남·최유라.

    #방송사고 경계수위 넘나드는 솔직함

    오후 2시 무렵, 서울역에서 삼청동으로 향하는 버스 안. 점심을 많이 먹은 탓인지 배도 부르고 잠도 솔솔 온다. 둘러보니 열댓 명 되는 다른 승객들도 식곤증에 눌려 무료한 시선을 창밖에 두고 있다. 기사 아저씨도 졸렸던 모양이다. 라디오 볼륨을 높인다. ‘두시 탈출 컬투쇼’(SBS 라디오) 정찬우, 김태균 두 MC의 입담이 버스 안을 가득 채운다.

    청취자들에게서 온 문자를 소개하는데 ‘헤어진 지 18시간 됐어요’ ‘신입사원이 회사에서 놀고 있어요’ ‘양다리 걸치다가 남친한테 들켰어요’ 같은 내용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는 컬투의 코멘트는 포복절도할 만한 수준이다.

    한번은 헌혈을 많이 한다는 간호사와 전화 연결이 된 적이 있다. 보통 MC 같으면 “좋은 일 하시네요” 하겠지만 컬투는 달랐다. 그들은 “헌혈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굴이 예쁜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소 뜬금없는 비교지만 지루해질 수 있는 상황을 웃음으로 ‘반전’시킨 센스가 돋보인다.

    라디오 작가로서 승객들의 반응을 놓칠 수 없었다. 승객들 중 서넛은 ‘저런 것도 방송이라고…’ 하는 얼굴로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감고 있었고, 나머지 승객은 컬투의 입담에 이미 빠져든 상태다. 기사 아저씨는 ‘중독 상태’인 듯했다.



    그는 오후 2시가 되면 습관적으로 ‘두시 탈출 컬투쇼’의 볼륨을 높인다고 했다. “진행자가 감추는 것 없이 솔직하고 시원시원해서 좋아요. 청취자들의 사연도 재미있고요. MC나 청취자나 왜들 그렇게 정신이 없는지… 그 맛에 들어요.”

    동시간대 청취율 1위를 자랑하는 ‘두시 탈출 컬투쇼’의 두 MC에게는 그들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다. 나긋나긋해야 한다는 라디오 진행자의 틀을 완전히 깨고 육탄전하듯 지지고 볶으면서 난리법석을 떤다.

    그럼에도 코너마다 전하는 메시지가 확실하다. 그리고 편안하다. 이 프로그램이 청취자를 사로잡는 힘은 두 MC의 오랜 우정에 있다. 여기에 순발력과 애드리브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탁월하다. 사연을 보내온 청취자에게 ‘사연 좀 재밌게 보내! 이럴 거면 보내지 마’라며 종이를 구기는 소리까지 리얼하게 전파로 내보내니, 사람들은 참을 수 없는 솔직함에 중독되고 만다.

    그래서 ‘두시 탈출 컬투쇼’는 대본이 없다. 방송 시작을 알리는 ‘온에어’등(燈)에 불이 켜지는 순간까지 정해진 것은 진행 순서뿐이다. 즉석 대사가 생동감 있고 더 재미있다는 청취자의 반응 덕에 철저히 두 MC의 입담에 기대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와 PD는 이런 MC를 만날 때 더 많은 공력을 들인다. 그리고 방송사고 경계수위를 넘을까 봐 늘 조바심친다.

    #돌발상황 대처하는 순발력은 기본

    최근 들어 라디오 MC에 개그맨들이 대거 포진하게 됐다. 개그맨은 말로 상대방을 웃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입담과 애드리브는 기본이고,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청취자들의 방송 참여가 적극적일수록 MC의 순발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데다가 요즘 청취자들은 ‘내숭’을 모른다. “모텔에서 나오다 남친한테 걸렸어요”라는 말을 거침없이 한다. 부부 문제로 이혼을 고민 중이라는 여성 청취자와 전화 연결을 한 MC는 “그럼 이혼하세요”라는 조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코멘트가 나오면 담당PD와 작가는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청취자는 후련해한다.

    라디오는 ‘1대 1’의 매체다. 수많은 청취자를 대상으로 방송을 하지만 MC와 청취자가 마주앉아 한바탕 수다를 떠는 것과 비슷하다. 요즘 청취자는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한다. MC가 내숭을 떠는 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펀(fun)한’ 얘기가 없으면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뻔한’ 프로그램이 되기에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청각매체인 라디오에서 MC의 입담은 청취율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힘이다. 때문에 PD와 작가는 MC의 입담이 기운차게 잘 날아올라 청취자 품으로 파고들 수 있도록 하는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꽃’은 MC이지만 작가도 절반은 ‘기생’이 돼야 한다. 매일매일 바뀌는 수많은 출연자, 전화 연결자와도 친밀한 유대감을 가져야 프로그램이 생동감을 얻는다. 이런 기본기가 있어야 매일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꿈에서도 코너를 생각하는 게 작가다.

    #적절한 가벼움, 편안함, 따뜻함

    오후 4시, 버스 안.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MBC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버님(조영남)은 왕입니다요!”라는 멘트에 승객들이 웃음을 참지 못한다.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서 MC 중 한 명은 언제나 편안하고, 또 다른 MC는 때때로 위태롭다. 조영남은 참 수다스러운 사람이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언어가 늙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담아두지 않기 때문이다. 조영남의 ‘적절한 가벼움’이 MC로서의 매력이고 힘이다.

    최유라는 편안함이 매력이다. 2007년 라디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갤럽이 13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라디오 프로그램 MC와 DJ를 물은 결과 최유라는 이문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최유라는 공동진행자가 누구든, 게스트가 누구든 방송 파트너를 편안하게 해준다. 방송을 들으면 그의 편안한 표정이 그려질 정도다. ‘말발’이 센 남자 진행자들이 위태로운 발언으로 앞서가면 얼른 균형감 있게 정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질리지 않는 담백함이 그의 최대 무기다.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MBC 라디오)는 가히 ‘국민방송’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두 사람의 성대모사 호흡은 무릎을 치게 한다. 화려한 애드리브를 보여주는 강석과 부드럽게 중심을 잡는 김혜영이 찰떡궁합을 이룬다. 이 때문인지 두 사람을 부부로 오해하는 청취자도 많다.

    강석, 김혜영 두 MC는 요즘 유행하는 ‘보이는 라디오’를 거부한다. 듣는 사람마다 다양한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것이 라디오의 매력인데, ‘수리수리 마수리’ 주문을 외우는 ‘도사’가 청취자에게 드러나면 상상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석과 김혜영은 철저하게 라디오의 특성을 살리려고 애쓴다. 청취자들이 라디오의 즐거움에 흠뻑 빠지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힘이다.

    필자는 라디오 MC로 김미화를 좋아한다. 방송국에서 오가며 눈인사를 하면 고맙게도 인사를 잘 받아준다. 김미화는 필자를 잘 모른다. 그럼에도 ‘그와 잘 통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 이게 김미화의 매력이다.

    그가 진행하는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MBC 라디오)의 오프닝 멘트를 들어본 사람은 안다. 그가 얼마나 낱말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 또박또박 이야기하는지를. 개그맨으로서의 유머 감각과 천성적으로 지닌 사람을 향한 따뜻한 정이, 시사프로그램을 또 다른 색깔로 빚어내고 있다.

    필자는 198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시조 부문) 후 방송에 입문, ‘안녕하십니까 황인용 강부자입니다’(KBS 라디오), ‘이명숙 변호사의 가정법원’(KBS 라디오 법정드라마), ‘다큐멘터리 인물과 사건’(KBS 라디오), ‘성공시대’(KBS 라디오 드라마), ‘라디오 극장’, ‘보람이네 집’(KBS 라디오 일일드라마) 등을 거쳐 현재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서울입니다’(KBS 라디오) 작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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