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5

2009.12.15

학력위조·대학중퇴 ‘진실’ 권력형 비리·성상납 ‘거짓’

‘신정아 가정교사’ 지낸 주간동아 기자의 최종판결 재해석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9-12-10 09: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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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력위조·대학중퇴 ‘진실’ 권력형 비리·성상납 ‘거짓’


    11월26일 서울서부지법 1층 로비. 2007년 7월 이후 ‘학력위조’와 ‘권력형 비리’(또는 ‘성 로비’), ‘누드사진 파동’으로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군 신정아(38) 씨가 파기환송 2심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었다. 지난 4월10일, 1년6개월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보석으로 풀려난 뒤 첫 세상 나들이.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 때문인지 신씨의 입은 굳게 닫힌 채 열릴 줄 몰랐다. 신씨가 중학생일 때 가정교사였던 기자도 그와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이날 재판은 단일 사건으로는 드물게 5심째였다. 1년6월의 형량엔 변함없었지만, 판결 내용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3심인 대법원 상고심은 변양균 전 대통령 정책실장과의 ‘권력형 비리’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 성곡미술관에서의 개인적 횡령에 대해서는 유죄를 확정했다.

    또한 학력위조와 관련된 혐의 중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되, 항소심(2심)이 검찰의 공소 사실을 기각한 예일대 박사학위기 위조(2007년 4월), 위조 예일대 박사학위기 동국대 제출(2007년 5월20일), 위조 예일대 박사학위기의 광주비엔날레 제출(2007년 7월4일) 혐의에 대해선 “다시 판단하라”며 1심으로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즉, 2심에서 “혐의를 특정할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은 부분을 상고심인 대법원이 “죄가 있는 것 같으니 다시 판단하라”며 1심 재판으로 넘긴 것.

    5심은 최종심 … 학위조작 모두 인정



    지난 4월23일의 파기환송 원심은 대법원의 주문대로 예일대 박사학위기 위조혐의와 이의 행사 부분 모두에 유죄를 확정했다. 다만 이화여대 강사를 하려고 대학 측에 캔자스대 학위증과 졸업증명서를 허위로 제출한 혐의에 대해선 “이화여대 측이 학위증이나 졸업증명서를 따로 요구하지 않는 등 불충분한 심사에 따른 책임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1월26일의 파기환송 2심은 원심 판결을 재확인했다. 예일대 박사학위기 위조, 동국대와 광주비엔날레 측에 대한 위조 박사학위기 행사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것. 또한 신씨가 성곡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재임할 당시 2억2000여 만원을 횡령한 부분도 유죄임을 확인했다.

    검찰 측은 파기환송 원심 판결이 나자 항소하지 않았고 신씨만 이에 불복해 2심을 청구했다. 파기환송 3심에 대해서도 검찰은 상고를 포기할 계획. 결국 3심 재개 여부는 신씨에게 달려 있는 셈인데, 취재 결과 신씨 측도 상고를 포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동국대가 신씨에 대한 박사학위기 확인 과정에서 빚어진 예일대의 ‘실수’(2005년 9월22일 예일대가 동국대에 신씨의 박사학위를 확인하는 팩스를 보낸 사건)에 대해 예일대를 상대로 낸 600억원(5000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이 동국대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씨로선 재판을 더 해봐야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로써 5심이 이른바 ‘신정아 게이트’를 둘러싼 마지막 재판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신씨 사건에 대한 법원의 최종 법적 판단이 있었음에도 언론은 ‘신정아 교수 학위위조 사건’이란 단순 사건이 ‘신정아 게이트’로 불리게 된 결정적 이유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그들이 사건을 부풀린 장본인이어서 그럴까. 2007년 7월 예일대 박사학위 논문표절 논란으로 불거진 신씨 사건은 동국대 총장 선임을 둘러싼 알력 속에서 학위조작 사건으로 확대됐고, 변씨와의 ‘연애담’과 그를 이용한 각종 이권개입 의혹, 정권 실세와 원로 화가들에 대한 성 상납 의혹 등 선정적인 미확인 보도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됐다.

    브레이크 없는 전차처럼 달려나가던 언론의 추측성 보도는 법원의 판단이 끝난 지 2년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 최종심을 통해 먼저 확인된 사실은 신씨가 그간 알려졌던 것처럼 ‘고졸자’가 아니라는 점. 재판과정에서 검찰은 ‘예일대 박사, 캔자스대 경영학 석사(MBA)’는 거짓임을 증명했지만, 미국 수사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신씨가 1992년 1월15일부터 96년 12월30일까지 캔자스대 미술학과에 재학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시 말해 신씨의 최종학력은 고졸이 아니라 ‘대학교 중퇴’(3학년 수료)인 셈.

    신씨와 변씨를 ‘은밀한 연인’으로 규정했던 검찰이 제기한 각종 권력형 비리 혐의에 대해서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광주비엔날레 감독직을 두고 신씨의 부탁을 받은 변씨가 감독선임위원회에 압력을 넣은 혐의 △신씨가 변씨를 이용해 10여 개 기업으로부터 8억5325만원을 광고선전비 또는 전시회 협찬금 명목으로 받은 혐의(제3자 뇌물수수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변씨가 동국대 총장에게 대규모 지원을 약속하고 신씨를 교수로 임용하게 했다는 혐의(뇌물수수) △신씨와 변씨가 서로 짜고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집행유예 판결과 사면복권을 이끈 대가로 김씨 부부에게서 변씨는 3억원, 신씨는 2000만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에 대해 “입증이 부족하고 그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性 관련 보도 언론 모두 고소하고 싶다”

    변씨의 사찰 특별교부세 불법지원에 대해서도 언론은 신씨가 이를 부탁한 것으로 보도했지만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재판부는 “신씨가 청와대와 기업을 잇는 고리 구실을 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변씨와 신씨가 메세나 활동의 일환으로 각 기업에 미술관 전시회 협찬을 요청한 행위를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 부당한 행위라거나 이에 응해 (기업들이) 협찬한 행위를 법률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보기 쉽지 않다”고 판시했다. 당시 언론은 이들의 혐의를 모두 두 사람의 부적절한 연애 결과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일부 매체는 이를 신씨의 ‘팜 파탈 유혹의 결과’라거나 심지어 ‘성 로비의 결과’라고 보도했다.

    신씨 사건을 더욱 추잡하게 몰아간 ‘문화일보’의 누드사진 게재사건건도 1심에서 명예훼손이 인정돼 1억5000만원 배상 판결이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사진작가 H씨가 실제 촬영한 것을 그의 지인이 유출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최근 H씨가 신씨의 변호사에게 ‘그 사진은 합성된 것’이라는 편지를 보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만약 H씨의 편지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배상액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신씨 측은 “당시 성 상납과 변씨와의 연애설을 보도한 모든 언론에 대해 배상소송을 하고 싶지만 참고 있다. 언론의 책임 있는 태도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신씨 사건의 재판을 지켜본 한 검찰 관계자는 “신씨 사건은 한 여교수의 사문서 조작과 동 행사 사건, 미술관 큐레이터의 공금횡령 사건이 전부지만, 당시 노무현 정권에 분노한 여론과 권력실세 개입 보도 등의 여론몰이 때문에 왜곡, 확산된 측면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과연 신씨가 그토록 사회적 지탄을 받을 대상이었는지 의문스럽다”라고 털어놨다.

    신씨는 학위조작 논란이 증폭되던 2007년 7월17일과 18일, 중학시절 가정교사이자 친오빠의 친구인 기자에게 2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이번 사건은 동국대의 내부 알력, 그리고 내 능력을 시기하는 서울대 교수들의 거짓말에서 비롯됐다. 나는 학위 브로커들에게 속았을 뿐이고 예일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랬던 신씨가 과연 법률적 판단이 끝난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아니면 여론의 집중공격에 따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을까. 이제 우리 사회는 ‘죗값’을 모두 치른 신씨에게 화해의 악수를 건넬 때가 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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