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4

2009.12.08

‘그린 올림픽’ 성화 세계인 부른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준비 현장 … 친환경·시설 재활용·자연보호 표방

  • 빅토리아·밴쿠버·휘슬러=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09-12-03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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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 올림픽’ 성화 세계인 부른다

    10월30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의사당 앞에서 첫 성화봉송을 축하하는 시민들.

    “올림픽 성화가 뉴브런즈윅을 돌고 있다(Olympic torch makes rounds in New Brunswick).”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성화가 북위 55° 이북의 광대한 동토를 지나 캐나다 동부지역 레이스를 시작하면서 캐나다가 동계올림픽 열기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10월30일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BC) 주 주도(州都) 빅토리아를 출발, 4만5000km의 대장정에 오른 성화가 최근 캐나다 국민 90% 이상이 사는 북위 50° 이남의 인구밀집 지역에 도착하면서 분위기를 ‘업’시키는 것. 11월23일 뉴브런즈윅 주를 달리기 시작한 성화는 퀘벡 주와 온타리오 주를 거쳐 내년 2월12일 올림픽 개최지 밴쿠버로 향하게 된다. 쇼트트랙 스타 전이경 선수는 토피노에서 성화를 옮겼고, ‘피겨 여왕’ 김연아는 12월19일 토론토 인근 해밀턴 도심을 달린다.

    “Go! 캐나다, Go!” 외치며 분위기 고조

    시곗바늘을 돌려 10월30일 오전 10시(현지 시간) 빅토리아의 BC 주 의사당 앞 광장. 이른 아침부터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주민 500여 명은 무대 주변 출입통제선 뒤에서 대형 전광판을 주시했고, 초등학생 200여 명은 무대 앞에서 캐나다 국기와 동계올림픽 깃발을 흔들며 그리스 아테네에서 건너온 성화를 기다렸다.

    동계올림픽 홍보영상이 비친 전광판에는 간간이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쇼트트랙 남자 선수들의 경기와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성화봉송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10분 뒤 캐나다 원주민 10여 명이 카약을 타고 빅토리아항 선착장에서 내리면서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원주민들은 9일 전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된 성화를 존 펄롱 밴쿠버 올림픽 조직위원장에게 건넸고, 첫 번째 봉송주자 2명이 성화봉에 불을 붙이며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럴싸한 볼거리나 현란한 축하공연은 없었다. 캐나다에서의 성화봉송 행사는 마을 잔치처럼 아기자기한 축제 속에 진행됐고, 주민들은 “Go! 캐나다, Go!”를 외치며 동계올림픽 개최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빅토리아는 우리나라에서 태평양 건너로 15°쯤 올려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캐나다 서부의 섬 밴쿠버 아일랜드 남부 도시. 1778년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이 원주민과 최초로 무역을 시작한 이후 가장 먼저 생긴 도시다. 우리나라 어학연수생이 많고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밴쿠버(City of Vancouver)는 밴쿠버 아일랜드 옆에 있는 도시. 기자는 성화봉송 시작에 맞춰 10월29~11월6일 밴쿠버와 휘슬러 등 동계올림픽 준비 현장을 취재했다.

    전체 면적의 4분의 3 이상이 산악지대로 소나무와 전나무가 우거진 숲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BC주. BC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구 120만명)인 밴쿠버는 세련된 도시미와 대자연의 조화를 뽐내며 ‘그린 올림픽’을 표방하고 있다(명칭은 밴쿠버 올림픽이지만 경기는 밴쿠버와 인근 사이프러스 마운틴, 휘슬러 3곳에서 열린다).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 등 빙상경기가 열리는 밴쿠버의 주요 경기장은 대부분 새 단장을 마쳤고, 선수촌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으며, 경기장 곳곳에선 ‘친환경’이 묻어났다.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펼쳐지는 리치먼드 오벌(Richmond Olympic Oval)은 버려진 목재를 잘라 건물 천장을 엮었고, 경기장 바깥 기둥에는 홈을 파 빗물을 한데 모을 수 있도록 했다. 모은 빗물은 빙판의 냉각수와 생활용수 등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2006년 2월 공사를 시작한 밴쿠버 올림픽 빌리지(2730명 수용) 16개 동은 재활용 소재 유리와 카펫을 마감재로 썼고, 옥상 건물 지붕에는 태양광 패널 시설과 빗물을 모아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시설을 갖췄다. 선수촌 내 쓰레기통에도 태양열 패널이 설치돼 쓰레기가 어느 정도 차면 자동으로 수거업체에 신호가 전달돼 쓰레기를 치우게 된다. 올림픽 이후에는 어린이 보육원과 지역 커뮤니티센터, 일반 주택 등으로 활용될 예정인데, 선수촌 옥상에 마련된 작은 공원도 어린이를 위한 놀이공간이라는 게 밴쿠버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VANOC) 관계자의 설명이다.

    북미 최대 레포츠 도시 휘슬러

    각국 기자들이 올림픽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미디어센터도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바다 위에 떠 있는 ‘플로트 빌딩’으로 지었다. 냉난방은 바닷물의 온도차를 이용하고 빗물은 역시 재활용한다. 개·폐회식이 열리는 BC 플레이스도 1983년 지어진 건물을 리모델링해 최대 5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게 했다. 개회식장으로는 보기 드문 옛 건물이지만, VANOC 관계자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밴쿠버에서 1시간 반가량 ‘시 투 스카이(Sea to Sky)’ 고속도로를 달리면 나오는 휘슬러(Whistler)는 그 명성답게 마주보는 해발 2000m급 휘슬러 마운틴과 블랙콤 마운틴이 웅장한 자태를 뽐냈다. 밴쿠버 북쪽 120km 지점에 있는 휘슬러는 북미 최고의 스키 리조트로 꼽히는 레포츠 천국. 마을(휘슬러 빌리지) 전체가 앙증맞은 레고 블록을 연상시켰다. 200여 개의 슬로프(최장 11km)와 1500m 이상의 수직고도, 풍부한 강설량은 연간 20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이곳에선 알파인 스키가 열리는 크릭사이드(Creekside), 루지와 봅슬레이 등이 열리는 슬라이딩 센터(Sliding Centre), 바이애슬론 등 노르딕 경기가 열리는 올림픽 파크(Olympic Park)가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다.

    휘슬러 마운틴과 블랙콤 마운틴 정상을 잇는 ‘피크 투 피크(PEAK 2 PEAK)’ 곤돌라는 400m 위 하늘을 나는 듯 이동한다. 4.4km 구간의 철선을 기둥 4개만으로 떠받치는데 기둥이 없는 구간만 3km에 이른다고 한다. 슬로프 중간 중간 10여m 높이의 큰 나무가 눈에 띈다. 휘슬러 관광청 브레튼 머피 씨의 설명이다.

    “보통은 슬로프를 만들 때 나무를 모두 베어내지만 휘슬러는 오히려 나무를 활용했다. 나무는 지열을 흡수해 눈이 잘 녹지 않게 하고, 관광객에게는 색다른 스키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한국 관광객도 이곳에서 새로운 스키장을 체험하면 좋겠다.”

    휘슬러는 ‘올림픽을 위해 태어난 도시(Born for the Games)’라는 닉네임처럼 올림픽과는 인연이 깊은 도시. 리조트 개발은 1968년 동계올림픽 개최를 목표로 시작됐고, 몬트리올 하계올림픽(1976년)과 캘거리 동계올림픽(1988년)에 밀려 개최지 선정에서 쓴잔을 마셨다. 결국 20년간 절치부심한 끝에 인근 도시 밴쿠버와 손잡고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하나의 도시명을 써야 하는 올림픽위원회(IOC) 방침 때문에 휘슬러 명칭은 빠졌지만, 공동 개최에 대한 지역민들의 자부심은 밴쿠버보다 더 컸다. 물론 우리에겐 평창 동계올림픽 도전사에서 첫 패배를 안겨준 도시이기도 하다.

    레포츠 도시답게 휘슬러는 스키 외에도 골프와 산악자전거, 집트렉(Ziptrek) 등 4계절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케이블에 매달려 시속 80km로 계곡을 가로지르는 집트렉은 아찔하지만 대자연을 하늘 위에서 조망할 수 있는 ‘강추’ 액티비티.

    “밴쿠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캐나다와 BC주 관광청은 태평양 건너 9시간 거리에 있고 최근 레포츠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한국 관광객을 주요 유치 타깃으로 삼고 있다. 캐나다에 도착하면 비교적 이동거리가 짧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관광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BC주 관광청 한국사무소 정세경 대리의 말처럼 캐나다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과 한층 가까워진 듯했다. 영국풍의 고풍스러운 도시 빅토리아와 현대적 세련미를 뽐내는 밴쿠버, 자연과 레포츠의 메카 휘슬러는 ‘친환경’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동계올림픽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린 올림픽’ 성화 세계인 부른다

    휘슬러의 스키 곤돌라(왼쪽)와 밴쿠버 올림픽 선수촌. 선수촌은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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