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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男만 아는 고통 전립선 08

“막연한 두려움 절대 금물 병을 알면 무조건 이겨요!”

지옥에서 천당으로 … 전립선 질환 이겨낸 ‘의지男’들

“막연한 두려움 절대 금물 병을 알면 무조건 이겨요!”

  • 세상만사 다 그렇지만,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질병은 더욱 그러하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고통을 호소해도 당사자가 아니면 그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립선 질환도 예외가 아니다.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뿐, 대부분의 남성은 전립선 질환이 얼마나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고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 고통을 딛고 일어선 의지의 남성들이 있다.
  • 그들은 과연 어떻게 전립선 질환과의 힘겹고도 고독한 싸움에서 승리했을까. 전립선염, 전립선암, 전립선비대증을 앓다가 치료에 성공한 환자 4명을 만났다. 개인 병력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의 신원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완치 향한 ‘희망의 끈’ 놓지 않아야

“막연한 두려움 절대 금물 병을 알면 무조건 이겨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죠.”

전립선염으로 고통받던 지난날이 떠올랐는지 김모(47) 씨는 질끈 눈을 감았다. 5년 전만 해도 그는 회음부 통증으로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다. 소변이 자꾸 마려웠지만 볼일을 보고 난 뒤에도 개운치가 않았다.

“밤에 화장실에 가려고 서너 번씩 깨니 숙면을 못해 늘 만성피로 상태였어요. 피부도 나빠지고, 성관계 때 사정을 하면 통증도 느껴졌죠. 시간이 흐르자 발기부전 증상도 나타났어요.”

그는 10년 전 요도염 치료를 받다가 우연히 전립선염에 걸린 사실을 알았다. ‘문란한 성생활로 인한 질병’이라는 막연한 오해 탓에 홀로 속앓이만 했다. 참을수록 고통이 더 커지자 결국 병원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의사는 “완치는 힘들고, 꾸준한 치료로 증상을 완화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완치가 안 된다고 하는 것부터가 의사 스스로 치료에 자신 없다는 뜻 아닙니까. 환자의 희망을 꺾는 병원에서 왜 치료를 받겠습니까?”

병원 문을 박차고 나온 그는 곧장 서점으로 향했다. 전립선염과 관련된 책이란 책은 닥치는 대로 사서 읽었다. 긍정적인 내용은 얼마 되지 않았다. ‘무좀처럼 여기면서 평생 전립선염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 대부분. 책은 도움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산으로 들고 가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 대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을 뒤져가며 전립선 관련 병원, 약, 의사 등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안 해본 게 없습니다. 양방, 한방 치료에 검은콩 생식 등 식이요법까지…. 지금은 두주불사도 마다하지 않지만 전립선염이 낫기까지는 맥주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완치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죠.”

어느 날 TV에서 한 의사의 전립선염 치료법 강의를 보고 감명받았고, 주저 없이 그 의사를 찾아가 시술을 받았다. 치료의 기본원리는 약물을 요도로 주입해 피고름을 터뜨리고 이를 다시 요도를 통해 배출하는 것. 약물치료는 큰 효과를 보였다. 치료 후 5년이 지났지만, 그는 더 이상 전립선염으로 고통받고 있지 않기에 완치됐다고 자평한다.

“저는 완치 기준을 세 가지로 봐요. 먼저 직장수지검사를 해서 의학적으로 이상이 없어야 해요. 그리고 어떤 통증도 없어야 하죠. 끝으로 재발이 안 돼야 완치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립선염 치료과정에서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사이트(다음)에 ‘만성 전립선염 완치자들의 모임’이라는 카페도 만들었다. 회원 수가 1만명이 넘는다. 전립선염으로 고통받는 남편들을 대신해 아내들이 가입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무분별한 성관계를 주의하라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카페 회원들을 보면 무분별한 성관계로 인한 20대 전립선염 환자가 늘고 있어요. 의사들은 성관계로 인한 전립선염 비율이 낮다고 말하지만, 카페 회원들을 조사해보면 상당 부분 성관계에서 기인합니다. 인과관계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는 만큼 한순간의 실수로 평생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죠.”

변의(便意), 고관절 통증, 목마름의 대공습

“막연한 두려움 절대 금물 병을 알면 무조건 이겨요!”
담담했다. 전립선암 통보를 받았을 때의 첫 느낌을 호모(66) 씨는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가족도 호들갑을 떨기보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신속하게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암이라는 게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 아닙니까. 평소 전립선이 불편했기 때문에 전립선암에 대해 웬만큼은 알고 있었습니다.”

2007년 9월 전립선 검사에서 전립선특이항원(PSA)은 2.7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15개월 뒤, 두 번째 검사에서 PSA는 5.24로 치솟았고 마침내 전립선암 2기 진단을 받았다. “죽는 건 두렵지 않지만 아픈 건 정말 겁났다”는 그는 1000만원 넘는 비용이 들지만, 덜 고통스럽고 더 안전한 다빈치 로봇수술(40쪽 기사 참조)을 선택했다. 4시간의 수술 끝에 마취에서 깼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온몸을 짓누르는 고통과 심한 오한, 그리고 다급한 변의(便意)였다.

“길 가다가 갑작스레 똥이 마려운 기분 아시죠? 그런데 간호사가 대변을 보라며 변기와 기저귀를 갖다줬는데도 변이 나오지 않아 더 괴로웠습니다. 카테타를 삽입했기 때문에 배변 욕구를 느끼게 된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는 그냥 체념했죠.”

변의의 고통이 잦아들자 이번엔 고관절 통증이 찾아왔다. 수술대에서 고관절에 체중을 실은 자세로 오랫동안 몸을 고정하고 있어서 생긴 아픔이었다. 변의 때문에 미처 느끼지 못하던 고통을 그제야 몸이 인지한 것이다. 다행히 회복은 빨랐다. 고통스러운 첫날이 지나면서 수술 부위 통증은 말끔히 사라졌고 가벼운 운동도 가능해졌다. 그 다음부터는 목마름과의 싸움. 병실이 건조한 탓에 입과 목이 자꾸만 메말라갔다. 하지만 물을 마시는 건 절대 금물. 가스가 나오기까지는 물을 마시지 말라는 의사의 지시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거즈에 물을 적셔 갈증을 해결했어요. 수술 다음 날 밤에 가스가 나와 물을 마시게 됐을 때의 기쁨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다음 날 밤에는 대변까지 봤는데, 그제야 ‘내가 살았구나’ 실감했습니다.”

수술받은 지 사흘 뒤 퇴원했다. 7일 후에는 외래에서 배뇨관과 수술 봉합사를 제거했다. 배뇨관을 제거한 뒤에도 한동안 기저귀를 차고 생활했지만, 심신은 한결 가벼웠다.

“전립선을 들어냈는데도 다리 움직임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게 신기했어요. 로봇수술이 비싼 값을 하는구나 싶더군요.”

죽음의 공포는 벗어났지만 발기가 잘 안 되는 문제점이 생겼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눈앞에서 여자가 옷을 벗고 있어도 전혀 반응이 없다”. 물론 전립선암 수술을 받는다고 모두 발기부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로봇수술은 신경보존이 용이하기 때문에 발기능력을 해치지 않아 성생활에 별 문제가 없다. 다만 호씨처럼 고령인 경우에는 로봇수술과 별도로 발기에 문제가 올 수 있다.

“비아그라를 먹을까도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괜히 독한 약을 먹어 몸에 이상이 생길까봐 결국 먹지 못했죠. 그래도 살아났다는 데 감사하며 고통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잖아요?”

소리 없는 불청객, 조기 발견으로 완치

“막연한 두려움 절대 금물 병을 알면 무조건 이겨요!”
“괜히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라니깐….”

2005년 겨울, 대구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지모(66) 씨는 설을 앞두고 난생처음 건강검진을 받았다. 평생을 공장에서 일한 그에게 수십만원의 비용이 드는 건강검진은 ‘사치’인 듯했다.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건강검진을 받긴 했지만 영 못마땅했다. 사흘 뒤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립선 쪽에 이상이 있으니 빨리 병원에 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하더군요. 그때만 해도 제가 암에 걸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가끔 소변 줄기가 시원하지 않았을 뿐 별다른 징후를 느끼지 못했다. ‘며칠 병원에 다니고 약 먹으면 괜찮겠지’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상황은 심각했다.

“전립선암 2기라고 하더군요. 평소 술을 좋아했기 때문에 위나 간을 걱정했는데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진 겁니다. 그전까지는 전립선이 무엇인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어요.”

암에 걸리면 죽는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주위에서는 다른 암보다 완치율이 높아 수술만 받으면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암인데…”라는 생각에 통 위로가 되질 않았다.

심리적 고통은 그렇듯 컸지만, 육체적 고통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수술을 받으러 가기 직전까지 성관계가 가능했을 정도. 암 판정을 받고 2개월 뒤 서울로 올라와 암 부위를 도려내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잘됐다’는 말을 듣는 순간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일흔이 가까워졌는데도 막상 암 판정을 받으니 살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군요. 주책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게 사람의 본능 아니겠습니까.”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의사의 지적에 수십 년간 동고동락하던 술과 담배, 커피를 미련 없이 끊었다. 고기는 삶은 것만 먹을 뿐 회 같은 날것은 피한다. 수술 뒤 건강을 회복하는 데는 부인의 헌신적인 간호가 큰 힘이 됐다. 약 먹는 시간을 꼬박꼬박 챙기는 것은 물론, 모임에서 술을 권하는 사람들을 만류하는 것도 부인의 몫이었다.

“부부모임에 가면 제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이 자꾸만 술을 권하거든요. 그럼 사양하다 못해 ‘한 잔 정도야…’라며 마시려고 하죠. 그때 아내가 나서서 ‘계속 술을 권하면 이제 모임에 안 나올 거다’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는 단 한 번의 건강검진으로 암을 발견한 것을 하늘이 준 선물로 여긴다. 그때 만일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을까. 설령 검사를 받았더라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면 1년 뒤 또다시 건강검진을 받았을까.

“전립선암은 소리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에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전립선암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조기 발견의 중요성을 느낍니다. 그분이 돈이 없어서 완치를 못하겠습니까. 때를 놓쳐서 그런 거죠. 전립선암을 예방하기 어렵다면 조기 발견이 최선입니다.”

성불구 됐다는 자괴감으로 고통

“막연한 두려움 절대 금물 병을 알면 무조건 이겨요!”
11월10일 최모(71) 씨는 전립선비대증 치료를 위해 KTP 레이저 시술(28쪽 기사 참조)을 받았다. 수술부터 퇴원까지 모든 일정이 사흘 만에 끝났지만, 그가 전립선비대증으로 고통받은 것은 자그마치 10년이다. 10년 전 초음파검사로 처음 전립선비대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당시엔 레이저 시술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칼로 비대 부위를 잘라내야 하는데, 몸에 칼을 댄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죠. 더욱이 주변 사람들에게 ‘수술을 받으면 소변 조절이 안 돼 기저귀를 차야 한다’는 말을 들어서 수술은 엄두도 내지 않았습니다.”

수술을 받는 대신 오래도록 약을 복용했지만 뚜렷한 차도는 없었다. 약을 먹으면 순간적으로 증상이 완화되긴 했지만 그때뿐. 오히려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그를 괴롭혔다. 자리에서 앉았다가 일어설 때면 현기증으로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는 것 아니야’라는 걱정에 하루하루가 피 말림의 연속이었다. 최근에는 젖꼭지 부위의 유선 조직이 딱딱해졌다. 유방암이 아닐까 싶어 기겁하고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혹시 전립선 약을 먹냐’고 묻더군요. 그렇다고 하니 당뇨로 인한 저혈당이라면서 약물 부작용이라고 했습니다. 당장 약 복용을 중단하라더군요.”

새로운 레이저 시술기가 국내에 도입돼 몸에 칼을 대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의 설명에 시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기본적으로 레이저 시술도 요도 안으로 기구를 넣어 전립선 조직을 태우는 원리라, 수술받기 전에는 엄청 고통스러울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마취가 깬 순간 성기 끝이 저리고 쓰라렸죠. 하지만 하루가 지나니 통증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최씨 또한 전립선비대증으로 고생하면서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컸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성불구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었다.

“10년 전에 수술받지 않고 약을 먹겠다고 하자 의사가 ‘약을 먹어서 전립선비대를 축소시킬 수는 있지만 성감대가 나빠져 성생활이 부자연스러워질 수 있다’고 했어요. 성행위 가능 여부는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인데, 성적인 반응을 못할 수도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 자체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어려운 결정 끝에 수술을 결심했지만, 지금은 그 결과에 매우 만족한다.

“양동이에 오줌을 누면 콸콸 넘치는데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지긋지긋한 약도 끊었어요. 처음부터 수술했다면 이렇게 몸도 마음도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무엇보다 남자의 마지막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어 기쁩니다.”



주간동아 2009.12.08 714호 (p42~45)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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