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3

2009.12.01

부지런히 살고 늘 깨어 있으라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 왕상한 서강대 법학부 교수 shwang@sogang.ac.kr

    입력2009-11-30 14: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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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지런히 살고 늘 깨어 있으라

    법정(法頂) 지음/ 문학의숲 펴냄/ 372쪽/ 1만5000원

    법정스님의 두 번째 법문집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이 나왔다. 2009년 봄 출간된 첫 번째 법문집 ‘일기일회(一期一會)’에 이은 법정스님 법문집의 완결편이다. 책 제목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은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즉 ‘하나는 모두이며 모두는 곧 하나’라는 가르침을 담았다.

    2009년 5월 성북동 길상사에서 ‘부처님 오신 날’에 행한 법문을 시작으로 2000년 뉴욕 불광사 초청법회와 1998년 원불교 서울 청운회 초청강연, 1992년 약수암 초청법회에 이르기까지 17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35편의 법문이 두툼한 분량으로 실렸다. 운수납자, 학인, 재가불자, 일반인을 대상으로 펼친 청량한 죽비 소리 같은 법문들이다.

    법정스님은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 ‘산에는 꽃이 피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그리고 지난해에 펴낸 ‘아름다운 마무리’ 등의 산문집을 통해 무소유의 자유로움, 홀로 있음과 침묵의 세계를 말해왔다. 그런데 두 권의 법문집에서는 세상을 깨어 있는 구도자의 자세로 살아갈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스님은 “지구가 잠든 순간에도 깨어 있으라”라고 말한다.

    스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마음이 있음을 지적한다. ‘맑은 마음’과 ‘물든 마음’이 그것이다. 맑은 마음은 우리 본래의 마음이고, 물든 마음은 번뇌로 가려진 마음, 분별로 얼룩진 마음이다. 깨어 있음은 ‘물든 마음’에서 ‘맑은 마음’으로 전환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수행의 목표다. 그 깨어 있음은 ‘나’라는 에고와 관념으로부터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 스님은 “과거로부터, ‘나’의 모든 생각으로부터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 죽기 전에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삶에서 고통과 불만족을 느낀다.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는 사람들도 조금만 내면을 들추면 고통과 불만족에 찬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그들은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고 세상에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모든 것은 변화한다, 어떤 것도 고정돼 있지 않다’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상함의 진리에 대한 자각은 자유를 가져다준다. 이제 어떤 짐도 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집착을 바다에서 소금물을 마시는 것에 비교한다. 많이 마실수록 더 목이 마르다는 것이다. 마음이 어떤 대상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히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기회를 가지고 그 집착을 충족시키든 결코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그것은 곧 괴로움으로 이어진다.”

    우리 본마음에는 지혜와 자비의 요소가 함께 있다. 깨달음은 여기 이 찻잔의 손잡이를 들어 올리는 것과 같다. 손잡이를 들어 올리면 찻잔도 올려진다. 지혜라는 손잡이를 들어 올리면 자비의 마음 역시 세상에 드러난다. 어느 것이 손잡이이고 찻잔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자기 완성과 형성을 위해 피나는 정진을 한 끝에 마침내 눈을 뜬다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그 경지를 존재계 전체와 함께하는 일이다. 그것이 나눔이고 인간 존재에 대한 배려다. 하나의 존재는 생명의 바다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처럼 다른 존재들과 얽히고설켜 있다. 나라는 존재는 남과 관계를 맺고 있기에 내가 행복해지고자 한다면 먼저 남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나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남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과 관계된 존재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여러 불운이나 불행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언젠가 내가 남을 불행하게 만든 과보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다 까닭이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이것이 업의 율동이고 그 메아리다.”

    “우리가 이 몸을 버리고 가는 것만이 죽는 것은 아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면 살았다가 그 생각의 사라짐과 함께 죽고, 다음 생각으로 다시 살아난다.”

    덧없다는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한때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의 실상이다.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은 죽음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한시도,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다. 모든 것은 움직임이다. 이것을 한편으로 허망하고 덧없다고 말하는데,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변화 속에서, 무상함 속에서,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늘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매 계절 눈과 비바람 속에서도 어김없이 설해지던 법문은 지난 5월 부처님 오신 날 법문을 끝으로 중단됐다. 스님이 병중이기도 하지만, 한동안 강원도 오두막에 머물며 세상에 내려오지 않고 침묵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은둔이 깊어지고 있다. 늘어나는 은둔의 시간만큼 스님의 건강 걱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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