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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루저’에게 ‘계란 후라이’는 없다

철없는 사내들 찌질한 트라우마 폭발 … ‘저항수단 없음’ 반증 유치한 행동

  •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루저’에게 ‘계란 후라이’는 없다

나는 아직도 군대 가는 꿈을 가끔 꾼다. 내 나이 낼모레 오십이다. 고등학교 다니는 큰아들도 몇 년 후면 군대에 가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군대 가는 꿈을 꾸는 것이다. 예비역 병장이고 예비군훈련, 민방위훈련까지 다 마쳤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없다. 아내도 울고, 아이들도 운다. 나도 울다가 깨어난다. 가수 싸이가 군대에 두 번 갔다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더 그렇다. 군대는 남자들에게 트라우마다. 쉽게 덧나는 아주 깊은 상처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젊은 날을 산골에 처박혀, 여자라고는 구경도 못하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고통은 어떤 이유를 들이대도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멀쩡한 젊은이들이 2~3년씩 총 쏘고, 수류탄 던지는 훈련만 해야 하는 군대의 존재 이유를 논리적으로 피부에 와 닿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합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일들은 평생 상처로 남는다. 아주 깊이 박혀 빼내려야 뺄 수 없는 대못처럼. 병역특례에 관한 논쟁을 보며 여자들은 투덜댄다. 대한민국 남자와 군대 문제에 관해서는 어떠한 합리적인 토론도 불가능하다고….

당연하다. 누구든 상처를 건들면 발끈한다.

술자리, 철없는 아저씨들의 군대 이야기는 호주제 폐지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호주제에 관해서도 다들 정말 할 말이 많다. 도대체 성씨를 마음대로 바꾸면 앞으로 어쩌자는 거냐며 핏대를 높인다. 그러나 대충 지식인 언저리에 발을 걸쳐놓은 사람치고 이 주제에 관해 자신 있게 이야기할 용기를 가진 이는 별로 없다. 공공의 담론에서는 여성주의에 반하는 어떠한 말도 꺼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

밤마다 남자들끼리 모여 호기롭게 하는 이야기를 공공의 장에서 잘못 꺼냈다가 정말 ‘한방에 훅 가는’ 철없이 용감한 남자들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마초적 이미지의 최민수가 ‘죄민수’로 희화화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어깨에 힘 들어간 ‘싸나이’들이 설 자리는 이제 더 이상 없다.

경제적으로 그렇게 어려웠어도 우리 아버지들은 집에서 가장으로, 어른으로, 남자로 대접받았다. 어머니는 늦게 오시는 아버지를 위해 반찬도 따로 챙겨놓으셨다. 특히 그 귀한 ‘계란 후라이’는 아버지만 드셨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아내가 남편을 위해 반찬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내들은 아이들을 위해서만 음식을 만든다.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아이들의 젓가락질은 거침이 없다. 아, 그 맛있는 게장의 게 껍데기. 그 게 껍데기에 밥 비벼 먹는 것도 이젠 아이들 차지다. 그런데 키가 180cm가 안 된다고 ‘루저(loser)’란다. 이런!

흥분한 사내들이 잇따라 고소를 하고 악플을 달고, 모여앉아 흥분하며 성토한다. 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루저’라는 단어에 이처럼 발끈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한마디로 울고 싶은데 뺨 때렸기 때문이다. 그보다 심한 이야기는 이전에도 많았다. 그러나 군복무에 대한 어떤 사회적·심리적 보상도 없고, 내 아들이 내 성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여자를 바라보는 눈빛만 야릇해도 고소당하는 상황에서 180cm가 안 되면 남자도 아니라고 무시한 상황은 쇼킹했다. 그것도 아주 예쁜 여자가, 그 키 크고 아름다운 외국 여인들 앞에서 대놓고 한국 남자들의 자존심을 밟아버린 것이다.

외국에서 좀 살아본 한국 남자들은 다 안다. 동양 여자와 사랑하는 서양 남자들은 그렇게 많은데, 서양 여자와 사랑하는 동양 남자는 왜 그리 희귀한지를. 서양 영화에 묘사되는 동양 남자란 한결같이 키 작고, 못되고, 비겁하다. 게다가 그 착한 동양 여인들을 하녀처럼 막 다룬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동양 남자의 ‘글로벌한 편견’은 반복해서 재생산된다. 동양 남자에 대한 서양인들의 이런 편견에 기죽지 않을 동양 남자들은 별로 없다.

‘루저’에게 ‘계란 후라이’는 없다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여대생 이모 씨의 ‘키 180cm 이하는 루저’ 발언은 대한민국 남자들의 ‘트라우마’가 폭발하는 뇌관이 됐다.

엄청난 문화변동의 소용돌이

그렇지 않아도 서양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움츠러드는 한국 남자들에게 그 철없는 처자는 내놓고 인종적 열등감까지 건드린 것이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루저’라는 정체불명의 말 한마디에 수천만원, 수억원의 위자료를 요구하는 이 한심한 해프닝에는 남북분단의 민족 모순, 시대변화에 따른 성역할 모순, 나아가 인종 모순까지 함께 녹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토록 유치한 반응 외에는 이 땅의 사내들에게 남겨진 저항수단이란 없다는 사실이다.

자업자득이다. 온갖 역사, 문화적 변동에 아무 성찰 없이 투덜댄 결과다. 어, 어 하다 보니 결국 몰릴 대로 몰린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여인들의 눈길에 맞춰 배에 식스팩 근육 만드는 수술을 하고, 여인들이 사랑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교태를 부리며 살아남을 일뿐이다. 어쩔 수 없다. 팬 가슴골에 고개가 돌아가는 남자들의 눈길에 맞춰 수술대에 누워 소금물 주머니를 삽입하고, 엄지발가락이 휘도록 높은 하이힐을 신어 엉덩이를 치켜세워야 했던 여인들이 이제 하고 싶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아,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이 엄청난 문화변동의 소용돌이 앞에서 철없는 사내들은 그저 ‘루저’라는 단어에 씩씩댈 뿐이다. 이젠 더 이상 ‘계란 후라이’ 안 해준다고, 게 껍데기에 밥 비벼 먹지 못한다고 투덜대는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는데도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른다. 에이, 이런 ‘루저’들 같으니라고….



주간동아 2009.12.01 713호 (p56~57)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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