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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로스쿨 서바이벌01

로스쿨 학생들이 살아가는 법

출범 1년 로스쿨 강의실 열기 가득
사시준비생과는 ‘한랭전선’ … 학원서 보충수업도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로스쿨 학생들이 살아가는 법

  • “예전에는 서울 강남의 부모들이 자녀를 데려와 ‘사시 1차 과외를 해줄 수 있느냐’며 매달리곤 했다.
  • 1차에 합격하면 5000만원을 선수금으로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자녀가 어느 정도 똑똑해야 가능한 일. 요즘 강남 학부모들은 ‘얘는 머리가 안 되니 로스쿨로 보내야겠다’고 말한다.”
로스쿨 학생들이 살아가는 법
11월12일 오후 서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강의실. 40여 명의 학생이 빼곡히 강의실을 메운 가운데 책상마다 놓인 독서대와 판례집, 법전, 노트북 컴퓨터가 강의 열기를 짐작게 했다.

김홍엽(55) 교수가 화이트보드에 갑(甲)-을(乙)-병(丙)을 꼭짓점으로 한 트라이앵글을 그리며 설명한다. 김 교수는 사법시험 20회 출신 변호사로, 전국법학전문대학원 실무가교수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원고 갑이 을에게 명의신탁을 했고… 을은 갑에게 부동산 허위보증서… 병은 갑에게 대위소송을….”

설명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질문이 이어졌다.

“홍○○! 이 경우 민법 187조 규정상 진정명의 회복을 위한 이전 청구는 어떻게 되나?”



질문은 2, 3분 단위로 계속됐고, 대부분의 학생은 미리 사례를 연구한 듯 김 교수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했다. 한 학생이 말꼬리를 흐리자 김 교수는 “대충 얘기하지 말고!”라고 한 뒤 거듭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명료한 답변을 요구했다.

한 수강생은 “교수님이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외우고 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반드시 한 번은 질문을 받게 된다”고 귀띔했다(법률 지식이 미천한 데다, 수업이 취재수첩에 받아 적을 수 없을 만큼 ‘스피디’하게 진행돼 결국 기자는 수업 후 추가 인터뷰로 내용을 파악해야 했다).

이날 수업의 핵심은 석명권 중 법적 관점 지적의무. 법률 당사자가 법률상의 무지나 오해로 법률상 주장을 못한 경우 ‘불의타’(자신이 모르는 사항에 대해 진술 한번 못 해보고 패소판결이 나는 것)를 방지하기 위해 법원이 법적 관점을 지적해주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김 교수는 각 조항마다 관련 판례를 제시했고, 학생들은 예습한 내용을 참고자료로 활용했다.

또 다른 수강생은 “수업 중 순간적으로 딴생각을 하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예습 과제는 엄청나지만 모두 철저히 준비해오기 때문에 수업이 압축적으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45년간 이어져온 사법시험(이하 사시) 체제를 깨고 ‘교수가 길러내는 법조인’을 표방하며 다변화 사회에 걸맞은 법조인을 배출한다는 목표로 문을 연 로스쿨. ‘돈스쿨’이라는 비판에, 법대 출신과 비(非)법대 출신 간 수준 차이로 수업이 파행을 겪을 것이란 우려는 적어도 이날 수업현장에서만큼은 거리가 있어 보였다.

4년에 걸친 사회적 논의 끝에 전국 25개 대학에서 문을 연 로스쿨이 이제 2기 신입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주간동아’는 11월9~17일 로스쿨 학생 20여 명과 교수, 학원 관계자를 만나 로스쿨 1년을 짚어봤다. 지난 1년간 로스쿨 현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로스쿨생 vs 사시준비생

학생들은 로스쿨이 생기면서 가장 큰 전선(戰線)을 형성한 것은 로스쿨생과 사시준비생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시준비생은 “3년 과정의 로스쿨생이 변호사가 된들 뭘 알겠냐”는 비아냥거림과 “(비싼 학비를 지적하면서) 돈으로 변호사가 되려 한다”는 비난을 쏟아낸다. 최근에는 2017년부터 로스쿨을 졸업한 학생에게만 변호사시험을 치르게 한 것(변호사시험법 제5조)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을 펴는 등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실제로 지난 10월28일 방송통신대 법학과 학생 7명은 변호사시험법이 경제적 약자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예비 법조인이 많이 찾는 인터넷 사이트 ‘법률저널’에 한 로스쿨에서 농어촌 법률봉사를 간다는 기사가 뜨자 “로스쿨 합격 전까지 민총(민법총칙) 1페이지도 안 읽고 평균 법학 실력이 학부 법대 2학년생 수준도 안 되는 ‘로빠’들이 무슨 법률봉사냐”(ID 충격) “상담은 실무 출신 교수들이 하고 학생들은 잡일이나 거드는 따까리 하겠지”(ID ㅋㅋ) 등 비난 댓글이 붙었다.

“현재 시스템으로는 법대 4년을 졸업하고 학원이나 스터디를 통해 5년간 사시 준비를 한다. 그리고 합격 후 사법연수원에서 2년을 더 배운다. 개업해도 2년 정도 또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러니 보통 13년은 걸려야 변호사 업무를 제대로 시작하는 현실에서 3년간 공부하고 변호사시험을 치르게 한다는 데 대해 사시준비생의 반발과 우려가 팽배하다.”

11월11일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만난 사시준비생 김모(29) 씨는 현재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여기에다 ‘고학하는 고시생’에게는 1년에 2000만원의 학비를 쏟아붓는 ‘화려한 로스쿨생’은 자신과 출신 성분 자체가 다르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깔려 있다.

사시준비생 최모(31) 씨는 “올해 서울 모 대학 로스쿨 시험장에 갔더니 주차장에 외제차가 70~80%였다. 예전에는 그나마 ‘개천에서 용 나는’ 유일한 기회가 사시였는데, 앞으론 ‘개천은 개천일 뿐’이다. 수십 년 뒤에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고 외친 만적의 난이 재현될 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신림동의 한 학원강사는 “예전에는 서울 강남의 부모 가운데 자녀를 데려와 ‘사시 1차 시험 과외를 해줄 수 있느냐’며 매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1차에 합격하면 5000만원을 선수금으로 받는다. 하지만 그것도 자녀가 어느 정도 똑똑해야 가능하다. 요즘 강남 학부모들은 ‘얘는 머리가 안 되니 로스쿨로 보내야겠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는 “결국 법조인이 되려는데 돈은 있지만 능력이 없다면 로스쿨에 보내는 분위기”라며 로스쿨 폐지 주장을 폈다.

하지만 로스쿨 학생들은 이런 비아냥거림에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지나친 자부심에 명함을 만들어 돌리면서 마치 변호사 행세를 하거나, ‘선진 법조시스템 체험’이라는 명목으로 고가의 해외여행을 하는 로스쿨 학생도 있지만, 이는 ‘일부의 일탈’이지 전체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게 로스쿨 학생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성균관대 로스쿨의 한 학생은 “가끔 사시준비생들과 마주치는데 분위기가 ‘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별로 괘념치 않는다. 시험에 합격해서 들어온 건데 미안해하거나 기죽을 필요가 뭐 있나. 로스쿨 학생 중에도 고학하면서 지하 단칸방에 사는 사람도 있다”며 로스쿨 학생을 이해할 때까지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로스쿨 학생들이 살아가는 법
“후배들 제대로 뽑나…” 걱정도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를 뽑아 법조인으로 양성, 다양한 전문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게 로스쿨 설립 취지지만, 1기 로스쿨 학생들은 이러한 설립 취지가 갈수록 퇴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교 행정실 직원과 로스쿨 교수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앞으로는 대부분 20대 중후반, 그중에서도 법대 졸업생이 로스쿨에 들어올 것”이라는 전망이라고.

서울지역 한 로스쿨 학생은 “지난 4월 변호사시험법이 제정됐는데 5년 내 5회에 한해 응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변호사시험 응시기간 및 횟수가 제한되니, 학교 내에서는 경력보다 시험 합격 가능성이 높은 젊은 학생을 뽑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한 대학에서는 지난 1학기 로스쿨 학생의 시험 성적을 분석, 상위권의 유형을 추려 이들과 비슷한 경력의 학생들을 뽑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학교 내에는 젊은 학생을 선발해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높이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언론에서 로스쿨 학생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등수로 보도할 게 뻔한 상황에서 고육지책인 면도 없지 않다”고 털어놨다.



로스쿨 입시 대비반, 졸업생 대비반으로 체질 전환 중

‘내공’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로스쿨 학생들은 신림동 학원가를 종종 찾는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비법(법대가 아닌 학부)’ 출신들인데, 그나마 자신의 부족한 법률 지식을 보충할 수 있는 곳이 학원가라고 말한다.

호남지역의 한 로스쿨 학생은 지난 여름방학 때 이곳에서 하루 2타임(7시간) 강의를 들었으며, 서울의 한 로스쿨 학생은 3타임 기본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로스쿨 학생 신분’은 절대 밝힐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한 로스쿨 학생은 “수업 중 학원강사가 짬짬이 로스쿨 학생들에 대한 조롱과 비난을 쏟아냈다. 내 신분을 밝히면 내쫓길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학원가는 2017년부터 1차 사시가 없어지기 때문에 앞으로는 로스쿨 학생 위주로 포커스를 바꿀 방침이다. 사시 대비반을 운영하면서도 2012년에는 1기 로스쿨 학생들의 변호사시험 대비반을 함께 운영하고, 장기적으로는 로스쿨 학생만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는 것.

하지만 로스쿨 입시 대비반은 ‘재미를 못 봤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1기 선발 때만 해도 직장인이 많은 서울 강남지역에만 20여 개의 로스쿨 준비 학원이 성업 중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대부분 원래 있던 신림동이나 신촌으로 철수했고, 로스쿨 관련 커리큘럼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한림법학원 관계자는 “우리도 처음 강남에 로스쿨 입시학원을 열었지만 8개월간 운영하다 철수했다. 임대료가 비싸고 직장인 학생도 점차 줄었기 때문”이라며 “로스쿨 입시반보다 로스쿨 졸업생의 변호사시험 대비반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 법학적성시험(LEET) 응시자는 지난해 9690명에서 올해는 7411명으로 2279명 줄었고, 젊은 학생 위주의 선발 움직임으로 직장인들의 문의도 많이 줄었다는 게 학원가의 분석이다.

“교수님, 제발 마인드 좀 바꿔주세요”

로스쿨 학생들은 “로스쿨 교수는 한 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인드’를 바꾼 교수와 그렇지 않은 교수. 즉, 짧은 시간에 압축 공부를 해야 하는 로스쿨 커리큘럼에 예전 대학 학부의 강의처럼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는 교수들이 여전히 많다는 하소연이다. 서울 모 대학 로스쿨 학생은 “어떤 교수는 새벽까지 학생들과 토론한 뒤 강의안을 짜는 등 열정적으로 가르치는데, 어떤 교수는 학부 때 하던 수업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예전 학부 때 사용하던 노트를 다시 꺼냈다. 편한 느낌도 있지만 수업이 답답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한 로스쿨 교수는 “교수 1명이 1년에 강의 9학점을 초과하면 페널티를 받지만 12학점 이상 하는 교수가 많다. 법대 교수가 자기 전공과목 강의는 내놓지 않으려고 하니 한 교수가 특정 과목을 몇 개씩 개설해야 할 정도”라면서 “일부 교수는 교재도 미국 교재를 그대로 베껴 사용하는데 노력도, 능력도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교수는 “여기가 로스쿨(Law School)인지, 로칼리지(Law College)인지, 신림동 학원가인지 개념을 잡지 못하는 교수가 허다하다”면서 “합숙훈련이라도 시켰으면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라며 가슴을 쳤다.

서울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지방의 일부 로스쿨에서는 법조인 출신 스타 교수를 계약직으로 채용하려고 월 3000만원을 약속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 교수=학교 커리큘럼의 보증수표’라는 이미지가 형성돼 신입생 모집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스쿨 학생들이 살아가는 법

▶서울 신림동 고시촌.

“우리… 밤새도록 같이 공부할까?”

로스쿨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공부하거나 스터디 모임을 가질 때가 많아 대부분 기숙사나 학교 앞에서 자취생활을 한다. 지방 출신은 물론 서울, 경기지역에 집이 있는 학생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예 ‘생활비를 줄이고 공부도 같이 하며 사랑도 하는’ 파트너를 찾는 학생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동거 학습’의 장단점을 묻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서울지역 한 로스쿨 학생은 “늦게까지 공부하다 보니 서로 좋은 감정이 생기는 데다 외부에서 사람을 소개받는 경우도 드물어 그런 것 같다. 공부 특성상 서로 묻고 답하는 스터디 모임도 필요한 처지라 동거는 ‘1타3피’의 효과를 낸다”며 “2학기부터 동거하면서 함께 공부하는 커플이 생겨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학생은 “동거하다 결혼하면 둘 중 한 명이 ‘고시낭인’이 되더라도 한 명은 생계를 꾸려갈 수 있다는 장기적 안목을 가진 친구도 있다”고 귀띔했다.



주간동아 2009.12.01 713호 (p16~19)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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