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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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경비정 단독 행동? 사전 의도한 도발?

3차 서해교전, 오바마 방한 앞두고 세계 이목 집중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09-11-18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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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10일 또 서해교전이 일어났다. 1999년 서해교전 이후 세 번째다. 1, 2차 서해교전은 연평도 근해에서 일어났기에 1, 2차 ‘연평해전’으로 불린다. 그렇다면 대청도 수역에서 일어난 이번 교전은 ‘대청해전’이라고 불러야 할까. ‘욱’하는 감정에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싸움이라면, 작전은 의도를 갖고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 펼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3차 서해교전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싸움일까, 의도된 작전일까. 정보가 충분히 확보되진 않았지만 조심스럽게 분석해보자.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교전이 벌어질 경우 우리 군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북한 무기는 지대함 미사일인 ‘실크웜’(‘비단벌레’라는 뜻)이 아니라, 구경이 100mm로 알려진 ‘해안포’다. 실크웜은 ‘지대함’이라는 분류명에서 알 수 있듯, 함정을 목표물로 삼는 무기다. 이 미사일을 조준사격하려면 북한군은 표적의 좌표를 비롯해 상당히 많은 양의 정보를 무선으로 주고받아야 한다.

    서해의 우리 해군 함정과 섬에는 다양한 레이더 및 전자장비가 설치돼 있다. 실크웜이 발사 준비에 들어가면 이 장비들은 일제히 징후를 포착한 뒤 우리 해군의 유무선 네트워크인 KNTDS(해군전술 통제장치)를 통해 해군 작전사령부와 2함대사령부, 그리고 서해에 있는 전 함정에 동시에 그 사실을 알린다. 그럼 실크웜의 사정권 안에 있다고 판단되는 우리 함정들은 실크웜의 사정거리 밖으로 나가거나 섬 뒤로 숨는 ‘회피기동’에 들어간다.

    北, 미사일 부대 등 내부 통신 조용

    회피기동이 여의치 않은 함정은 회피작전을 준비한다. 북한이 안전수역으로 빠지지 못한 우리 함정을 향해 실크웜을 발사하는 순간 우리 레이더는 중첩해서 이를 포착한 뒤 표적이 된 아군 함정에 그 사실을 알린다. 자신의 레이더와 KNTDS로 이 정보를 입수한 아군 함정이 실크웜이 근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중으로 채프(chaff)를 발사하는 것이 회피작전이다. 작은 금속 파편들인 채프는 실크웜의 유도 레이더파를 반사시켜 그곳에 함정이 있는 것처럼 유인해 바다로 떨어지도록 하는 방어무기다.



    채프가 있기에 우리 함정은 실크웜의 위협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해안포는 유도 없이 그냥 날아오는 ‘화약덩어리’다. 채프로도 피할 수 없다. 실크웜은 조준사격을 하지만 해안포는 ‘지역사격’을 한다. 우리 함정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수역 전체에 화망(火網)을 만들듯 포탄을 집중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1000발을 쏴서 999발이 바다에 떨어지고 1발만 명중해도 된다는 식이기에, 북한 해안포는 우리 군에게 가장 큰 위협으로 꼽힌다.

    물론 이러한 해안포도 사격 준비에 들어가면 부대 간 교신이 크게 늘어나는데, 우리 군의 장비로 이 사실을 포착할 수 있다. 3차 서해교전의 가장 큰 특이점은 북한의 지대함 미사일 부대나 해안포 부대에서 평소와 다르게 정보를 주고받은 사실이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하이(上海)급 경비정을 NLL 남쪽 2.2km 수역까지 집어넣은 것이 의도된 작전이었다면, 북한은 지대함 미사일 부대와 해안포 부대를 가동시켰어야 한다.

    실제 사격은 하지 않더라도 사격할 것 같은 움직임을 보였어야 정상이다. 경비정도 1척만 내보낼 것이 아니라 두어 척을 더 딸려 보냈어야 하는데, 그렇게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오는 분석이 ‘단순 월선’ 가능성이다. 북한 경비정이 단순 월선을 했다면 궁금해지는 것은 그 이유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NLL상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에 대한 단속과 사실상 북한 해군이 운영하는 북한 어선에 대한 관리 때문이 아니겠냐는 것.

    그런데 교전이 일어난 그 시각, NLL 인근에 중국 어선은 많지 않았고, 북한 어선은 전부 NLL 북쪽에 있었다. 따라서 중국 어선 단속이나 북한 어선 관리를 위한 월선 가능성은 희박하다. 두 번째 이유로는 북한 경비정 정장(艇長)의 오판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정장도 사람인지라 자기 과시를 위해 과욕을 부렸을 수 있다. 부하들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해 기압 차원에서 중국 어선을 단속한다는 이유로 NLL 남쪽으로 내려가게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서해 NLL에서 북한 경비정이 중국 어선을 단속하는 모양새를 보이며 NLL을 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런데도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 군이 경고를 하면 즉시 북쪽으로 올라가기 때문인데, 이번에 교전을 일으킨 경비정은 우리 군의 거듭된 경고방송과 통신에도 바로 올라가지 않았다. NLL 남쪽 수역 깊숙이 들어온 북한 경비정이 5차례의 경고에도 함수를 돌리지 않았기에 대기하고 있던 우리 고속정은 교전수칙에 따라 한 차례 경고사격을 했다.

    이날 서해의 파고는 2~3m로 높은 편이었다. 북한 경비정 함포는 이런 바다에서는 조준이 어려운 수동포인 데다, 두 차례 교전에서 ‘깨진 적’도 있으니 경비정 내 북한군의 긴장도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이런 공포가 우리 고속정을 향해 조준 격파사격을 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우리 함정은 북한의 격파사격에 대비해 3km라는 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기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곧바로 대응 격파사격을 가해 북한 경비정을 반파시켰다.

    美 측에 전달하려는 메시지 과연 뭐냐

    북한군은 사소한 작전일지라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승인을 받고 시행하는 것이 관례다. 김 위원장의 승인 없이 일개 경비정 정장이 단독 행동을 하다가 교전이 일어났다면 이 경비정을 지휘 통제하는 북한 서해함대 8전대 본부에 ‘불똥’이 떨어질 게 당연하다. 가까운 장래에 정보력이 뛰어난 한국군 정보부대의 안테나에 북한 8전대 본부의 문책성 인사나 징계 징후가 포착된다면 3차 서해교전은 북한 경비정 정장의 과욕이 부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 8전대 본부에 별다른 변화가 포착되지 않는다면 총참모장을 하다 4군단장으로 이동한 강경파 김격식 대장 등이 사전에 김 위원장의 승인을 받고 이 경비정을 ‘미끼’로 집어넣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올겨울 북한의 형편은 최악이다. 식량난이 심각한 가운데,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등 주변 국가들로부터 끊임없이 핵 포기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마당에 NLL에서 교전이 일어나면 북한은 다시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북한 처지에서는 주목받아야 협상을 할 수 있고, 협상을 해야 뭔가를 얻어낼 수 있다.

    3차 서해교전은 11월18일로 예정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일주일 앞두고 발생했다. 북한으로서는 이 시점에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오바마 대통령 방한 이후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진 보스워스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얘깃거리가 생겼다. 물론 한국과도 대화할 소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에서 보듯, 무력을 써서 만든 협상자리에서 북한이 챙겨갈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화도, 도발도 여의치 않은 양곤마(兩困馬)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 작금의 북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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