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2

2009.11.24

1%대 지지율 언제 넘을까

정세균, 두 번의 재보선 승리 불구 낮은 지지도 … 4대강·세종시 대응 일차 시험대

  •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컨설팅본부장

    입력2009-11-18 13: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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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대 지지율 언제 넘을까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발언이 달라졌다. 평소처럼 자신을 낮추고 자기 이름을 주어로 사용하지 않던 화법이 아니다. 이젠 자신이 어떻게 하겠다는 식의 말투다. 강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지난 10·28 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에서 사실상 승리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동안 리더십 부족이라는 비판에 얼마나 시달렸나. 4·29 재보선에 이은 선전이 그를 용감하게 했다면 수긍 가는 면도 없지 않다.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울지 않는 새’ 얘기가 있다. 일본 통일이란 대업을 위해 전국을 휘저어 장군 중에 으뜸이란 뜻의 ‘패장(覇將)’으로 불린 오다 노부나가, 그 뒤를 이어 천하를 움켜쥔 ‘지장(智將)’ 도요토미 히데요시, 35년간 참고 기다린 끝에 천하를 장악한 ‘덕장(德將)’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세 사람이 ‘울지 않는 새’를 보고 보인 반응이 각기 달랐다는 것.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필요 없으니 죽이라”고 했고, 히데요시는 “새라면 울 것이니 어떻게 해서든 울게 하라”고 명했으며, 이에야스는 “언젠가는 울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국시대 마지막 승자는 이에야스였기에 결국 덕장의 선택을 최고로 쳤다. 이는 동양의 지도자관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순조로운 행보, ‘덕장’인가 ‘운장’인가



    이 얘기에 덧붙여진 속담이 있다. ‘패장 위에 지장, 지장 위에 덕장이라고 하지만 사실 운장이 가장 낫다.’ 여기서 ‘운장(運將)’이란 운이 좋은 사람을 뜻한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데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등바등 애면글면 노심초사해도 일의 성과를 따 먹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뜻이다. 세상살이를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당사자 처지에서야 억울하겠지만, 속사정을 알 필요 없는 관전자에게는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 대표가 비슷한 경우다. 덕장이란 평가가 주류지만, 일부에선 그를 운장이라고 부른다. 정 대표에게 폄훼 뉘앙스의 이런 ‘비공식’ 별명이 붙은 이유는 이렇다. 대선과 총선 패배 이후 당 자체가 지리멸렬할 때 촛불시위로 회생의 틈이 생겼다. 그때부터 형성된 반(反)MB 정서 덕에 당 지지율이 12~13%에 허덕이면서도 4·29 재보선에서 예상 밖의 승리를 거뒀다.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당 지지율을 수직 상승시켰다.

    한때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앞서기도 했다. 연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국면을 거치면서 민주당의 지지율은 20%대 초·중반에 안착했다. 그리고 10·28 재보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를 넘고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민주당보다 10%포인트 정도 앞서는 상황에서도 정 대표는 3대 2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운장이란 말이 주위의 시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기울인 노력에 비해 성과가 좋다는 평가가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닌 듯싶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앞으로는 어떨까. 가장 가까운 시험대는 내년 예산안 문제다. 4대강 사업을 결사반대하는 상황에서 여당과의 한바탕 격돌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예산안에 대한 찬반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이 제시한 예산안의 문제점을 얼마나 잘 파악해 자신의 어젠다를 뒷받침하는 예산으로 전용해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또한 예산 싸움에서 합리적 행태와 납득할 만한 수위를 얼마나 잘 지켜내면서 여론의 호응을 이끌어내느냐 하는 점도 관건이다.

    미디어 관련법 재논의 문제도 여전히 정 대표의 어깨에 걸려 있다. 시민사회의 태도를 감안할 때 정 대표가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형태가 됐든 재논의를 관철하기만 한다면 이는 정 대표에게 대단히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기력하게 물러선다면 엄청난 내상(內傷)이 불가피해 보인다. 당장 세종특별자치시(이하 세종시) 문제 때문에 미디어 관련법 문제가 시야에서 사라진 현상, 이른바 ‘환치효과’를 어떻게 돌파할지가 관심사다.

    1%대 지지율 언제 넘을까

    수원 장안 10·28 재보선에 출마한 민주당 이찬열 후보(가운데)의 선거유세를 돕는 정세균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 정 대표는 두 번의 재보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정 대표의 명운에 영향을 미칠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세종시다. 여권의 수정 드라이브를 어떻게 저지하느냐가 일차적 과제다. 다음은 내년 지방선거과 관련해 세종시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직까지는 세종시 문제에 대해 지역 간 이해대결의 측면보다 과거의 약속을 뒤집는 신뢰 측면이 더 부각돼 있다. 그러나 친이(親李)를 중심으로 한 여권의 수도권 세력과 정부까지 총동원돼 수도권 지역정서를 부추긴다면 지방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지역 간 이해대립의 측면이 더 부각될 수도 있다.

    이런 프레임이라면 정 대표의 셈법도 골치 아파진다. 수도권 여론이 ‘수정론’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다면 당장 수도권에 출마할 민주당 소속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이 가만있긴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여권의 기세를 보면, 박근혜 전 대표나 정 대표나 할 것 없이 극한까지 압박할 태세다. 이런 마당에서 정 대표가 제로섬의 양자택일 상황에 내몰리고, 여권이 미디어 관련법처럼 내부 갈등을 봉합해버린다면 그에겐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존재감 보여줄 시간 얼마 없어

    정 대표에게는 이른바 ‘연합 정치’도 피할 수 없는 숙제다. 먼저 당내 상황부터 수습해야 한다. 이번 10·28 재보선에서 기세를 올린 손학규 전 대표와의 연대, 출마 논란이 있었던 김근태 전 대표, 당내 친노세력, 386, 정동영 전 장관 그룹 등 다양다기한 세력을 잘 통합해야 하지만 이 일이 만만치가 않다. 지방선거 공천권이 걸려 있어 세력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 전 장관의 입당 문제도 풀어야 한다.

    당 밖도 어지럽다. ‘희망과 대안’을 비롯해 시민단체들이 이미 정치 개입을 선언한 상태다. 여기에 친노세력의 국민참여신당 결성, 김 전 대통령 서거 후 결집 움직임을 보이는 동교동계의 세력화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또 민주노동당 및 진보신당과의 연대 문제도 있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경기 안산을 재보선에서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이후 서로 감정이 상해 있는 상태다.

    가장 예민한 것이 후보 문제다. 예를 들어 서울시장 선거에 민주당 후보, 친노신당 후보, 진보신당 후보, 시민단체 후보가 출마한다면 여야 간 ‘1대 다(多)’ 구도가 형성된다. 유시민, 노회찬, 박원순 등 이미 구체적인 이름까지 세력별로 거론되는 상황이므로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이런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지고 ‘양패구상’(兩敗俱傷·양쪽이 다 패하고 상처를 입음)한다면 정 대표로서는 심각한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대권 도전의 꿈을 접어야 하는 극한 상황으로까지 내몰릴 수 있다.

    운장이든, 덕장이든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이 1%대에 머물러 있는 야당 대표라면 결코 오래갈 수 없다. 특히 관리자이기를 거부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정 대표의 장수는 사실 지난 두 번의 재보선이 그에게 시간을 벌어준 덕이다. 그러나 그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 동안 정 대표는 대권주자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 보이거나, 당의 기반을 크게 확충하는 성과를 이뤄내야 한다. 그의 성공 여부를 떠나, 그가 얼마나 ‘진인사(盡人事)’하는지 지켜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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