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2

2009.11.24

TV형 vs 영화형 스타 따로 있나

배우들 ‘무료 미디어’ TV 이미지, 영화에서는 失 … ‘미디어 세대 분리’도 원인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입력2009-11-18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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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형 vs 영화형 스타 따로 있나

    TV 드라마와 영화 중 어느 미디어에 더 자주 등장하느냐에 따라 배우들의 이미지는 한정된다. TV에만 매진하는 김희애가 영화에 약했던 이유다.

    ‘TV용 배우’라는 말이 있다. 물론 좋은 뜻으로 쓰는 말은 아니다. TV 드라마에서는 잘나가는데 이상하게 영화에만 출연하면 실패하는 배우를 일컫는다. 이런 호칭이 일반화한 것에서 알 수 있듯, TV용 배우와 영화용 배우는 이미 어느 정도 구분되고 있다. 언뜻 TV용 배우보다 영화용 배우가 좀더 높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얘기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른바 ‘연기파 배우’는 연극무대에서 곧바로 영화로 가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 스타배우는 TV 드라마를 거쳐 영화로 입성한다. 드라마에서 인기를 얻을 만큼 얻었으니 이를 바탕으로 영화에서도 재미를 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발 사례가 자주 목격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TV에서 승승장구하던 두 여배우, 김희애와 최진실이다. 김희애는 드라마 데뷔부터 스타덤에 오른 신데렐라였다. 1986년 KBS 드라마 ‘여심’에서 19세 나이로 주연을 맡은 뒤 순탄한 커리어를 쌓아갔다.

    1990년대 들어 MBC ‘아들과 딸’ ‘폭풍의 계절’이 대히트했고 연기력도 인정받았다. 이제 영화계로 진출할 일만 남았고, 90년대 스크린 기대주로도 꼽혔다. 그러나 첫 영화 ‘101번째 프로포즈’(1993년)부터 대실패를 겪었다. 연기와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지만 관객이 도무지 극장을 찾지 않았다. 그 충격 탓인지 김희애는 이후 스크린 도전을 완전히 접었다.

    소비관성과 이미지

    최진실은 조금 다른 경우지만 결과는 같았다. 1980년대 후반 CF 스타로 인기를 모은 뒤 영화와 TV 모든 영역에서 고르게 활동했다. TV에서는 MBC ‘우리들의 천국’ ‘질투’ ‘폭풍의 계절’ 등을, 영화에선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미스터 맘마’ 등을 히트시켰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영화 쪽에서 흥행 실패가 계속됐다. 최진실은 영화 출연을 줄이다 결국 ‘안방극장’에만 주력했다.



    당시에는 이런 현상이 의아하게 여겨졌다. ‘스타산업’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던 상황이라 더욱 그랬다. 하지만 비슷한 사례가 계속 포착되면서 결론이 내려졌다. 바로 ‘소비관성’의 문제라는 것. 다시 말해 아무리 뛰어난 스타성을 지녔더라도 ‘무료 미디어’인 TV에 지나치게 오래 남아 있는 경우, 그 배우를 무료로 소비하던 대중심리에 관성이 생겨 유료 소비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이 5~6년에 걸친 초반 커리어 전체를 TV에 쏟아부은 김희애가 영화에 약했던 이유다. 최진실도 영화 진출 초기 ‘아이돌 약발’이 다하자 유료적 매력이 떨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결국 1990년대 대표 영화 여배우 자리는 심혜진에게 돌아갔다. 콜라 CF로 얼굴을 알린 뒤 바로 영화계에 입성, TV 출연을 극단적으로 자제한 결과다.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 ‘결혼이야기’ ‘세상 밖으로’ ‘손톱’ ‘은행나무 침대’ ‘박봉곤 가출사건’ ‘초록물고기’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남긴 뒤 심혜진은 30대 중반부터 TV 드라마 활동을 시작했고, 안방극장에서도 안정적 위상을 확립했다. 심혜진뿐 아니라 성공한 영화배우는 대개 TV 드라마를 접는 타이밍이 빨랐다. 1993년 MBC ‘아들과 딸’로 얼굴을 알리고, 이듬해 MBC ‘서울의 달’로 스타가 된 한석규는 바로 다음 해인 1995년 ‘닥터 봉’을 시작으로 영화에만 매진했다.

    송강호, 안성기, 설경구 등은 드라마 출연 자체가 없었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이미지 차원의 문제다. 영화에서 팔리는 이미지와 TV에서 팔리는 이미지가 따로 있다는 것. 요즘 영화계에서 최고의 흥행을 보증하는 여배우로는 손예진이 꼽힌다. 영화 ‘외출’을 제외하곤 모두 관객 수 150만명을 넘겼다. 하지만 그는 특이하게도 TV 드라마에선 약한 면모를 보였다. 데뷔작 MBC ‘맛있는 청혼’에서만 두각을 나타냈을 뿐, 이후엔 성공작이 없다.

    MBC ‘선희 진희’, SBS ‘대망’, KBS ‘여름향기’, SBS ‘연애시대’, MBC ‘스포트라이트’ 등에서 줄줄이 고배를 들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손예진은 드라마와 영화 속 이미지가 비슷했다. 즉 영화에서만 팔리는 이미지를 드라마에서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TV 이미지와 영화 이미지 차이는 도대체 뭘까. 이는 이미지를 주도적으로 소비하는 미디어의 계층을 함께 놓고 생각해봐야 한다.

    TV형 vs 영화형 스타 따로 있나

    똑같이 ‘학생’과의 사랑을 다뤘지만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드라마 ‘로망스’의 김하늘은 전혀 다르다.

    영화는 20, 30대 젊은 층, 특히 여성이 주로 소비하는 미디어다. 하지만 TV는 기본적으로 40, 50대 중장년층 여성이 주도한다. 젊은 층도 TV를 안 보는 건 아니지만, 대개 VOD나 DMB 등 시청률조사 범주에서 벗어난 방식이나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소비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손예진 미스터리’가 풀린다.

    영화와 TV를 넘나들며 손예진의 초반 커리어를 장식하던 병약한 미소녀 이미지는 중장년 여성층이 호응할 만한 게 아니다. 당찬 열혈 여기자 역할도 마찬가지. 자신들의 삶이나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영화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병약 미소녀’는 20, 30대 여성층의 영원한 동경이고, 남성층에겐 ‘죽이는’ 이미지다.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 보여준 ‘작업녀’ 이미지도 20, 30대 남녀 모두 좋아할 만한 것이다. 이 같은 ‘미디어의 세대분리’ 논리를 완성해준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와 TV에서 모두 성공한 김하늘의 경우다. 김하늘은 영화와 TV 드라마 모두에서 히트작을 많이 냈다. 영화에서는 ‘동갑내기 과외하기’ ‘청춘만화’ ‘7급 공무원’ 등을, TV 드라마에선 MBC ‘햇빛 속으로’ ‘로망스’, SBS ‘해피투게더’ ‘피아노’ ‘온에어’ 등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영화 속 김하늘과 TV 속 김하늘은 전혀 달랐다.

    김하늘은 영화에서 ‘엽기녀’ 콘셉트로 성공했다. 털털하고 드세며 수더분하다. 몸개그를 펼치며 망가지기도 한다. 젊은 여성층이 경계를 풀고 동조할 만한 이미지다. 반면 TV에서는 성숙한 남성에게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받는 여성이나 연하남과의 사랑에 불안해하는 ‘연상녀’로 등장했다. 중장년층 여성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이미지다. 김하늘은 TV 드라마에서 단 한 번도 영화에서처럼 ‘망가진’ 적이 없다.

    이러면 ‘시장분리’가 이뤄진다. 유료로 사서 보는 김하늘과 무료로 보는 김하늘이 완전히 다르다. 그에 따른 기대치와 신뢰도가 크게 달라져, 영화 스타와 TV 스타를 가르는 요건인 소비관성의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210만명 동원, 김명민의 현주소

    이 같은 공식에서 벗어나 성공하는 경우는 영화 톱스타의 TV 나들이 정도밖에는 없다. 영화 속 코믹한 이미지를 KBS ‘보디가드’와 SBS ‘시티홀’에서 그대로 적용한 차승원, 영화 스타로 자리잡은 뒤 SBS ‘별을 쏘다’와 ‘프라하의 연인’ 단 2편의 드라마에만 출연한 전도연이 이런 경우다. 돈 주고 사보는 스타는 이벤트처럼 출연하는 무료 미디어 한두 편 히트시킬 위력은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자주 병행하면 무료 미디어 스타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11월6일 열린 제46회 대종상영화제에서 ‘내 사랑 내 곁에’의 김명민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어마어마한 감량까지 시도하며 투신한 결과로 흥행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추석영화치곤 저조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시즌 1위를 기록하며 210만명 이상을 모았다. 김명민은 드라마 히트작이 꽤 있다. 2004년 KBS ‘불멸의 이순신’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래 2007년 MBC ‘하얀 거탑’, 2008년 MBC ‘베토벤 바이러스’가 연속 히트했다. 하지만 영화 커리어는 순탄치 않다.

    ‘리턴’은 크게 실패했고, ‘무방비 도시’의 성과도 그에게 공이 돌아가지 않았다. 상당 부분 ‘손예진 효과’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하얀 거탑’의 히트도 100% 김명민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긴 어렵다. 양질의 소재와 내용의 승리였다. 김명민 자체가 히트시킨 작품은 ‘베토벤 바이러스’다. 그의 연기가 세간의 화제로 떠올랐다. 이를 영화에 적용해보면 ‘리턴’ ‘무방비 도시’와 달리 ‘내 사랑 내 곁에’에는 김명민 효과가 있었다.

    210만명대 동원력이 바로 김명민의 현주소다. 김명민에겐 지금이 ‘결정의 순간’일 것이다. 영화배우로 일정한 티켓파워를 지니고 활약하려면 ‘영화냐, TV냐’를 놓고 명확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미적대며 미디어를 오가다간 반드시 낭패를 본다. 극의 중심에 서게 되는 남자배우는 여배우보다 소비관성이 심해 김하늘처럼 양립하기 어렵다. 물론 고민되는 일이긴 하다. 대종상까지 받은 그가 TV 스타로 안주하긴 힘들다.

    그렇다고 영화만 추구하자니 그간의 TV 스타덤을 버리고 ‘새내기’ 심정으로 도전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부담만은 줄여볼 수 있다. ‘내가 TV에 맞는 배우냐, 영화에 맞는 배우냐’에 대한 고민이다. 답을 하자면 그런 구분은 사실상 없다. ‘영화에선 이렇게 생겨야 한다’거나 ‘TV에선 이런 목소리여야 한다’ 등의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자신의 커리어를 어디에 놓고, 어떤 식으로 이끄느냐만 존재할 뿐.

    그 다음은 배우로서의 자질과 본인이 선택한 콘텐츠(영화, 드라마 모두)의 상품적 매력 문제만 남는다. 아무리 한쪽 미디어에서 잘나가더라도 다른 미디어에서 실패가 쌓이면 실패 이미지는 전염되기 쉽다. 승부는 선명하고 출발점은 평등하다. ‘TV 드라마, 영화 중 어디에 서 있느냐’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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