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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시골의사’의 책장

흐릿한 주제의식 … 현실 ‘응시’가 없다

김훈 ‘공무도하’

흐릿한 주제의식 … 현실 ‘응시’가 없다

흐릿한 주제의식 … 현실 ‘응시’가 없다
이 책의 제목인 ‘공무도하’(公無渡河, 문학동네 펴냄)는 옛 고조선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사건이다. 봉두난발의 ‘백수광부’는 걸어서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었고, 나루터 사공의 아내 ‘여옥(麗玉)’은 그 미치광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불렀다.

“님아 강을 건너지 말랬어도 / 기어이 건너려다 빠져 죽으니 / 어찌하랴 님을 어찌하랴.”

이 책의 모티프는 여기에서 가져왔다. ‘백수광부는 대체 무엇 때문에 강을 건넜을까. 강의 이편이 혹독한 현실세계라면 저편은 피안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미치광이였을 뿐인가. 강을 건너다 빠져 죽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래, 강의 저 너머가 아닌 이편에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 아니던가?’ 책에는 대개 이런 맥락이 숨어 있음이 느껴진다. 이야기와 주제를 연결 짓는다면, 좋은 모티프와 훌륭한 제목이다.이 책은 사회부 기자 ‘문정수’라는 인물이 지금의 ‘매향리 사격장’ 주변 정도로 생각되는 가상의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취재하는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물론 사회부 기자의 취재파일은 온갖 번다한 사건으로 가득하다. 강에서 실족사한 변사체, 똥물에 빠진 노인, 홍수로 떠내려간 인마(人馬)의 이야기, 미군 사격 연습장 부근의 소음을 문제 삼은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이야기, 그 밖에 작은 절도와 폭행사건까지 다양한 사건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많은 이야기는 정작 신문 지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작중 ‘차장’이라 불리는 ‘데스크’는 이른바 ‘사건’이 될 만한 일에만 관심 있다. 똑같은 죽음도, 강에서 실족한 자의 죽음은 한 줄짜리 기삿거리도 안 되지만 농성 중 옥상에서 실족한 노동자의 죽음은 큰 이슈가 된다. 아니, 이슈로 키운다. 이렇듯 문정수의 취재수첩에는 지면에 실린 이야기, 버려진 이야기, 스스로 실은 이야기 혹은 뺀 이야기가 모두 담긴다.

그런 이야기에는 각각의 곡절과 사연이 있다. 매일 같은 길을 리어카를 끌고 가는 남녀가 있고 그 동기를 파헤치면 구절양장의 곡절이 드러나지만, 그 역시 그냥 간과하면 일상 속으로 숨어버린다. 문정수는 이런 이야기들을 노목희와 나눈다. 아니, 나눈다기보다는 읊조린다. 때로는 휴대전화로, 때로는 그녀의 가슴에 머리를 묻은 채 기사에 실리지 못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목희는 문정수의 애인도 아니고 동거녀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도 아니다. 어쩌면 이 모두를 합한 관계일 수도, 모두가 아닐 수도 있다. 취재차 우연히 만난 노목희와의 관계 역시 진지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경원하는 수준도 아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는 독자의 기대와 달리 이 책의 구성에서 별로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저 흩어진 사건들을 하나의 고리로 묶는 매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대단한 서사적 구성이나 명료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진 않은 듯하다. ‘현대사회의 건조한 관계나 기계적으로 물화된 일상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라면 적당할 듯하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이 책이 현대사회의 병리적 현상들을 정면으로 드러내고자 했다면 서사가 많이 부족하고, 그것들을 비틀었다면 김영하나 박민규 같은 젊은 작가들의 문제의식에 미치지 못한다.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작가 김훈의 작품에 이런 평가를 매기는 것은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독자로서는 실망하게 되는 책이다. 좋은 작가란 한 번쯤은 자신의 경험과 트라우마가 응축돼 마치 발효돼 터져 나오는 듯한 작품을 쓰게 된다. 작가의 내면이 문학의 제1 소재이기 때문이다. 한데 김훈의 작품에서는 그런 내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그는 늘 기사만 쓴다. 주어진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쓴 기사, 마치 데스크에서 현장기자가 쓴 기사를 손보듯 건조하고 딱딱하게 기사를 쓴다. 물론 이런 기사체의 문장이 전작들에서는 이야기의 상상력을 보태는 데 장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작가 자신의 경험, 특히 기자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 이 책이라면 독자의 기대에 많이 부족하다.

흐릿한 주제의식 … 현실 ‘응시’가 없다

박경철 의사

특히 이 책은 그의 전작들과 달리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직접적인 시선이 드러난다. 안타깝게도 그 시선엔 ‘응시’가 없다. 사건기자처럼 판단하고, 보수신문 데스크의 시각처럼 획일적이다. 작가가 다루는 서사는 어디에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김훈의 작품 가운데서 가장 낮은 평점을 매기는 작품이다. 물론 다른 독자들의 평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래도 김훈의 작품이니까.

http://blog.naver.com/donodonsu



주간동아 2009.11.17 711호 (p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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