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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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구속된 공주 막 내린 ‘부녀 대통령 신화’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17-04-03 14: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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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절대 못 보내요.”
    “우리가 죽더라도 대통령을 살려야 합니다.”

    3월 30일 오전 9시 무렵,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부근은 일종의 고립된 섬이었다. 경찰과 차단막 탓에 구석으로 밀린 지지자 수백 명은 박 전 대통령이 가는 ‘고난의 길’을 배웅하고자 태극기를 들고 모여들었다. 자신들을 막아선 경찰을 향해 거친 말도 서슴지 않았다.

    9시 30분쯤 자유한국당 김태흠, 최경환, 조원진 등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먼저 자택으로 들어갔고 잠시 뒤 인근에 거주하는 박지만-서향희 부부가 윤상현 의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초인종을 누르지 않은 것으로 봐서 사전에 약속한 방문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지만 씨 부부가 6년 만에 누나 집을 찾은 셈. 오누이의 만남 자체가 대통령 취임식 직후 처음이었다.



    법원으로 가는 짧고도 먼 길

    2004년 12월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한 지만 씨는 누나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한 해 전인 2011년 육영재단 사태가 있기까지는 삼성동 자택에 들러 회포를 풀곤 했다. 이후 “친인척과 멀리하겠다”는 누나의 엄포에 삼성동은 물론, 청와대 한 번 제대로 찾지 못했다. 아주 먼 길을 떠난다는 직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 한 친박계 의원은 “지만 씨 부부의 눈시울이 붉었다”고 전했다.



    전직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은 역사상 세 번째다. 1995년 11월과 12월의 일이었다. 비교적 순순히 사법부의 영장을 수용한 노태우 전 대통령과 달리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구속영장을 거부하고 자택이 있는 연희동에서 ‘골목길 성명’을 발표한 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고향 경남 합천으로 향했다.

    세 번째인 이번이 20년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1997년 도입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친다는 것이다. 물론 피의자 박 전 대통령은 이를 거부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구속 확률만 높아진다.   

    오전 10시 10분 자택 앞에 모습을 드러낸 박 전 대통령은 주위 경호관과 변호인들에게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작별인사를 건넸다. 일주일 전 검찰 소환 때와 비교해 훨씬 어두운 표정이었다.

    검은색 리무진 차량에 올라타고 골목길을 빠져나가려 하자 지지자들이 경찰의 차단막을 뚫고 진입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삼성동 자택에서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까지는 직선거리로 4km. 경찰의 사전 교통 통제 덕에 차량은 10분 남짓 걸려 법원에 도착했다.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법원 서관 앞에 리무진이 도착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당초 박 전 대통령 측은 법원에 “직원들이 드나드는 지하 출입구를 허가해달라”고 제안했다. 기자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여론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 쉽게 들어줄 수 없는 일.

    예상대로 박 전 대통령은 취재진의 질문을 무시한 채 곧장 3층 법정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321호 법정에서 역사적인 박 전 대통령 영장실질심사가 시작됐다.



     “대통령님 호칭 아닌, 피의자”

    박 전 대통령은 범죄 혐의가 13개로 복잡하고 다양하다. 검찰이 법원에 넘긴 기록물만 12만여 쪽에 달할 정도다. 그 때문에 구속영장 신청 이후 실질심사까지 꼬박 사흘이 걸렸다. 판사가 검토할 시간이 그만큼 필요했다는 얘기다.

    이번 재판에서는 호칭이 ‘피의자’로 바뀐다. 전직 대통령에게 제공되는 경호도 법정부터 중단된다. 전임 대통령의 사상 첫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이는 2월에 부임한 강부영(43) 판사.

    탄핵 판결문을 읽은 헌법재판소 이정미 전 재판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한정석 판사에 이어 이번에도 고려대 법대 출신이라는 사실과 서향희 변호사의 대학 동기라는 점이 화제를 모았다.

    검찰 측 대표는 3월 21일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이원석 특수1부장과 한웅재 형사8부장.
    검찰은 27일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막강한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는 등 사안이 매우 중대하고 △대부분의 범죄혐의를 부인해 증거 인멸 우려가 있으며 △공범인 최순실은 물론 뇌물공여자까지 구속된 점에 비춰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반한다고 밝혔다.

    삼성으로부터 받은 뇌물 298억 원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든 혐의도 포함됐다. 당초 구속영장 청구가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을 깨고 사실상 검찰의 마지막 자존심 회복을 위해 승부수를 던짐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기각되면 재청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수비를 맡은 측은 탄핵심판 때 함께했던 유영하, 채명성 변호사다. 하지만 영장실질심사는 변호인의 조력이 큰 의미는 없다. 판사가 묻는 말에 피의자가 직접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가장 총력을 기울인 대목은 유죄 판결 시 형량이 가장 무거운 뇌물 혐의. 삼성으로부터 직접 자금을 받은 사람은 최순실이고 박 전 대통령이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에도 검찰이 무리하게 뇌물죄로 엮었다는 반론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도 보고받거나 지시한 바가 전혀 없다고 방어막을 쳤다.

    오전 심문을 끝마치고 오후 1시 6분 휴정이 선언됐다. 박 전 대통령은 휴정된 약 54분간 경호원이 준비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휴식을 취했다. 김밥 도시락이었다.

    오후 7시 무렵, 9시간에 걸친 심문이 끝났다. 영장 발부 전까지 박 전 대통령은 정해진 유치 장소에서 대기해야 한다. 보통 장소는 ‘교도소’나 ‘구치소’ ‘경찰서(유치장)’이며 검찰 청사도 가능하다. 김기춘, 조윤선, 이재용 등은 서울구치소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서울구치소의 경우 지문 채취는 물론, 알몸 검사까지 받아야 하며 수형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피의자가 받는 수치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은 멀리 이동하지 않고 이웃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검찰청) 10층 임시 유치시설에서 대기했다. 

    법원과 검찰청 바깥에서는 지지자 1000여 명이 밤을 새워 시위를 벌였다. “좌익빨갱이들이 우리 대통령을 잡아갔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검찰청 담을 넘나들었다. 박 전 대통령은 창밖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을까.



    무너진 ‘박 대통령’ 신화

    한편 정치권을 비롯한 각 정당의 주요 대선후보는 박 전 대통령 구속 여부를 놓고 치열한 감정싸움을 벌였다. 가장 목소리를 높인 곳은 여전히 친박계가 주류인 자유한국당이다. 불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서에 국회의원 82명의 서명을 받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김관용, 김진태, 이인제 등 친박계 대선 경선주자는 물론이고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후보까지 ‘전직 대통령 예우’를 들어 불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국격이나 국가적 위신은 물론,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일종의 항의였다.

    박 전 대통령 구속이 미칠 정치적 영향은 워낙 복잡해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표면적으로 70% 넘는 국민이 구속을 지지해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도 이 같은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역풍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탄핵에는 찬성했더라도 “잔인하게 구속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샤이 보수’가 의외로 많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이들이 응집할 경우 대선판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와 기대감 섞인 반응들을 동시에 내놓고 있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나 ‘실형’은 예고된 운명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오히려 구속되는 편이 정치권 갈등 해소나 박 전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유리하리라는 얘기도 나온다. 자신을 보좌하던 거의 모든 인사가 구속돼 법의 심판을 받는 판국에 혼자만 삼성동에 있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

    설령 이번에 구속을 피한다 해도 재판에서 실형이 나와 뒤늦게 구속되면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결국 박 전 대통령 문제도 정치적 해결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유죄가 확정될 경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다음 정부에서 사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3월 31일 새벽 강 판사는 영장실질심사에서 다툰 최소 13개 혐의와 총 12만여 쪽에 달하는 수사기록 및 증거자료, 변호인 측 의견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여부를 최종 판단했다. 결론은 역시 ‘구속영장 발부’였다.

    박 전 대통령은 쓸쓸하게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지지자들은 들어올 때 탔던 검은 리무진이 아닌 호송차를 타고 법원을 떠나는 자신들의 우상을 향해 눈물을 흘렸다. 박정희-근혜 부녀 대통령 신화를 사실상 떠나보내는 셈이었다.

    앞으로 일정은 4월 17일 전 검찰 기소가 이뤄지고 늦어도 10월 중 1심 선고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뇌물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 박 전 대통령의 형량은 징역 15년이 될  수 있다. 
    구치소에서 최순실 만나고, 올림머리 가능할까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는 정관계·재계 고위 인사가 주로 수감돼 ‘범털 전용 교도소’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서울구치소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13가지 혐의 가운데 10개 혐의에서 공범인 최순실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수감돼 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구치소 내에서 만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들은 독방에 수감된 상태에서 철저히 관리되기 때문에 일반 수감인처럼 연관된 범죄 혐의자와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원천 차단된다는 얘기다. 이들은 법정에선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궁금증은 역시 박 전 대통령 특유의 올림머리와 기타 불편한 생활에 관한 내용이다. 이는  어느 정도 배려가 가능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60세가 넘어 첫 구치소 생활로 몸이 불편해진 경우 전속 간호사를 배치하는 식으로 돕는 방법이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런 배려는 전적으로 서울구치소 측의 결정에 달렸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차기 대통령이 적어도 전임 대통령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할 수 없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게다가 매일 변호사가 찾아와 향후 변호 전략을 상의할 수도 있다.

    형사소송법 제34조(피고인, 피의자와의 접견, 교통, 수진)는 ‘변호인 또는 변호인이 되려는 자는 신체구속을 당한 피고인 또는 피의자와 접견하고 서류 또는 물건(의류, 양식, 의료품)을 수수할 수 있으며 의사로 하여금 진료하게 할 수 있다’고 적시해놓았다. 만일 서울구치소가 돕지 않는다면 적어도 헤어스타일은 변호인을 통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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