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1

2009.11.17

행복한 추억 만들러 갑니다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9-11-09 18: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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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 부서 선배의 부인은 쌍둥이를 임신한 중에 결핵에 걸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합니다. 머리가 희끗한 택시기사는 큰딸이 서른여섯에 첫아이를 가졌는데, 걱정과 달리 무사히 자연분만에 성공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저희 편집장은 아내 뱃속에 있는 딸아이가 발을 쑥 내밀어 손으로 눌렀더니, 반대쪽으로 옮겨가 발을 내미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대요. 출근길 지하철에서 만난 맞벌이 엄마는 “사무실에서 아무리 바빠도 자주 걸어다니라”고 조언해줬습니다. 오래 앉아 있으면 배가 땅기고 다리가 붓는다고요.

    임신 6개월이 지나면서 ‘누가 봐도 임신부’가 되자, 자연스럽게 수많은 ‘임신과 출산 추억담’을 취재하게 됐습니다. 저는 튀어나온 배가 부끄럽기만 한데, 먼저 엄마 아빠가 된 분들은 저를 보며 추억에 빠져드는 겁니다. 고생스러웠고 때론 무섭기까지 했다지만, 그 표정은 전부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자식을 낳는다는 것이 이처럼 평생 잊지 못할 귀한 경험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나의 ‘D라인’이 스쳐지나가는 분들에게도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다니! 왠지 선행(?)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먼저 임신한 친구들에게 많은 얘기를 들어왔습니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을 생각은 접어둬, 할아버지들한테 혼나. 임신했다니까 우리 부장이 사표는 언제 낼 거냐고 하는 거 있지! 산부인과에서 돈 벌려고 시키는 쓸데없는 검사가 한둘이 아냐…. 세상이 임신부를 ‘사회적 약자’로 취급하는 것을 물론 저도 심심찮게 경험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속초 바닷가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이거 먹고 건강한 아이 낳으라”며 잘 익은 먹골배를 깎아주셨고, 지난 몇 달간 주간동아 회식 메뉴 결정권은 제게 주어졌습니다. 심지어 얼마 전 순전히 제 실수로 접촉사고를 냈는데, 피해를 입은 분이 화를 내기는커녕 “애기엄마 놀랐겠다”며 얼른 뛰어가 생수 한 병을 사다주셨습니다.

    행복한 추억 만들러 갑니다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3개월간의 출산휴가에 들어갑니다. 2004년 8월부터 지금까지 5년 넘게 주간동아 기자로 일하며 연애하고 결혼하고 엄마가 됐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처럼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편집장을 비롯한 주간동아 식구들과 독자 여러분께 감사하다 인사드립니다. 저 없는 주간동아도 변함없이 애독해주시고요.^^ 3개월 후부터 가벼워진 몸으로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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