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0

2009.11.10

나만의 공간 욕구, 성냥갑 퇴출

거주자 배려로 아파트 구조 진화 소통 위한 주거문화 지원은 여전히 미흡

  • 강순주 건국대 주거환경전공 교수 sjkang@konkuk.ac.kr

    입력2009-11-05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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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의 공간 욕구, 성냥갑 퇴출

    혁신적인 공간 활용을 통해 새롭게 변신한 고급 아파트. ‘편리한 주거공간’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부작용도 적잖다.

    갖가지 아이디어와 디자인, 혁신적인 공간 구성으로 무장한 고급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주거문화의 대변혁이 예고되고 있다. 편리한 주거공간 제공이라는 측면에선 매우 긍정적인 변화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가져다주는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 긍정적 효과라 하면 획일화한 구조에서 탈피한 아파트들이 거주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세분화하면서 거주 만족도를 계속 높이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최근 신축된 아파트들은 ‘각양각색’이다.

    거주자 층의 각기 다른 생활 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공간활용 면에서도 단순한 직선구조라는 획일적인 선택에서 벗어나 곡선, 사선을 도입하는 등 융통성 있는 구성 조건을 적용하는 추세다. 방이나 주방, 거실 등을 분리하는 고정 개념을 탈피해 공간 전체, 혹은 두세 공간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예다. 공간의 개수를 늘리기보다는 소요 공간을 넓게 사용하고자 하는 거주자들의 욕구가 강하다는 얘기다.

    부부와 자녀의 동선(動線)도 나누는 추세다. 이미 2000년 이후 급증한 주문형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서 공용 공간인 거실을 중심으로 부부 공간과 자녀 공간을 분리해 계획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4년 필자가 연구한 ‘주문형 초고층 아파트의 단위 주거공간 분석’ 결과에서도 주상복합아파트 120가구 중 70%의 가구가 공간 배치를 분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건설사들은 작은 부분에서도 거주자를 배려하는 노력을 보인다.

    한 유명 브랜드 아파트는 주부들의 편의를 위해 주방 앞에 긴 탁자와 의자, 소파 등을 배치하는 등 거주자들이 작은 불편도 느끼지 못하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욕실에서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대(洗足臺) 및 욕실 안에 좌욕과 반식욕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는 등 한국인 고유의 생활문화를 담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이렇듯 ‘거주자 친화’라는 확고한 기준 아래 공간을 자유롭게 해석한 아파트들의 공급 및 수요가 증가하면서 거주자들의 사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제 거주자들이 아파트 유형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원하게 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건설업계에서는 거주자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아파트 선호 구조 및 디자인에 관한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건설사들이 브랜드를 전환하면서 아파트 평면공간 개발에 들이는 노력은 늦은 감이 있으나 평가할 만하다.



    ‘친환경’ 거주문화의 새 패러다임

    ‘친환경성’이 새로운 주거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점도 아파트의 내·외부 및 주변 구조의 진화가 낳은 긍정적 효과라 할 수 있다. 아파트 외부환경의 진화만을 놓고 보자. 기존의 오래된 판상형 아파트는 옥외 공간에 회색 주차공간과 어린이 놀이터 정도가 마련된 게 전부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주차장은 지하로 내려가고 옥외는 광장, 테마공원, 실개천, 휴식공간, 운동시설, 녹지로 조성되고 있다.

    강이나 공원,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조망권도 아파트 선택에서 비중 있는 요소로 강조된다. 자연적으로 거주자들의 환경 중시 의식도 높아졌다. 실제로 아파트 유형별 선호도에 대한 여러 연구결과를 보면 친환경 마감재, 자동환기 시스템 등 내부 설비에서부터 녹지, 공동텃밭 등 외부환경까지 친환경 요소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2006년 필자의 ‘친환경 인증 공동주택의 거주 후 평가’ 연구결과에서도 친환경 인증 아파트에 거주한 이후 생각이나 행동이 친환경으로 변했다고 답한 거주자가 88%에 달했다.

    토지와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열린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 초고층 아파트가 선호되는 것도 이런 거주자들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편리와 친환경을 추구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아파트의 구조 진화가 낳은 부정적인 면도 적잖다. 예컨대 도시 경관을 강조하는 흐름에 맞춰 지어진 탑상형 고층 아파트단지들에서 나타나는 에너지 낭비는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맞통풍이 안 되는 구조 때문에 환기를 기계 설비에 의존해야 한다.

    이는 전력 과소비,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공개 자료에서는 타워팰리스를 비롯한 고층 탑상형 아파트가 가구당 전기요금 상위 30위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가 점점 고층화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선진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고층 거주로 인한 고소공포증이나 귀울림 현상, 엘리베이터 스트레스, 유아들의 자립 저하 및 사회생활장애는 우리나라의 노약자나 임신부, 어린아이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가 1996년 서울 초고층 아파트에 입주 후 1년이 지난 주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초고층 아파트 거주자의 주거환경 스트레스와 건강’ 논문에 포함)에선 승강기 사고, 재해 시 피난 경로에 대한 불안감과 스트레스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초고층과 병리현상의 개연성을 단언하기엔 아직 검증할 점이 많다.

    올바른 주거문화 정착 위해선 종합적 관리 필요

    사용자와 소통하는 종합적 관리가 뒤따르지 않는 점도 지속가능한 주거문화를 확립하는 데 커다란 방해요인이다. 건설사들이 겉으론 멋진 개념의 브랜드를 내세우면서도 사용자와 소통하는 종합지원서비스 체제 확립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 관행이 보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가 존재한다는 것은 아파트의 주거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주거문화를 유형과 무형으로 나눠볼 때 유형의 대상은 물리적 공간인 주택이며, 무형은 물리적 공간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인간들의 삶 이야기와 지속적인 커뮤니티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올바른 아파트 주거문화가 뿌리내리려면 종합적인 관리행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파트 건설사(시공사)가 브랜드를 내걸고 공급하면서 고가의 마감재, 가구, 설비 같은 빌트인 시스템 등의 ‘오버 스펙’ 현상이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브랜드의 수명을 끌고 나갈 관리에 대해서는 시공 하자 중심의 애프터서비스에 급급한 실정이다.

    지속적인 관리시스템 구축엔 소홀하다는 것이다. 아파트의 차별화 상품 전략으로 내세우는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도 관리 문제나 시설 내 프로그램 운영은 전적으로 입주자 몫으로 떠넘겨진다. 그러다 보니 입주자들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할지 몰라 시설을 방치해놓는 사례도 허다하다.

    이제 아파트의 장점을 말하는 데 ‘주택’이라는 하드웨어의 질에서 ‘거주성’이라는 소프트웨어의 질이 얼마만큼 충족될 수 있느냐로 초점이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향후 저출산 고령사회로 진입할 한국에서 아파트가 꿋꿋하게 대표 주택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결국 아파트의 진화가 거주자들의 수요를 얼마나 따라가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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