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0

2009.11.10

10억짜리 욕망의 바벨탑

대한민국 아파트, 거주공간 아닌 금전적 이익의 결정체

  •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cspark@uos.ac.kr

    입력2009-11-05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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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억짜리 욕망의 바벨탑
    해산토굴의 작가 한승원이 최근 펴낸 소설집 ‘희망 사진관’ 중 단편 ‘고추밭에 서 있는 여자’에서는 몸살로 몇 날을 일어나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한약을 지어다 건네는 남편의 걱정과 아내의 퉁이 편안한 투로 오간다.

    “당신, 죽기에는 너무 늦었어. 죽을라면은 삼십대에, 아니 늦어도 사십대 후반쯤에는 죽어줘야 새파란 각시를 얻어서 살지. 당신, 나 이렇게 주름살 생기고 저승꽃 다 피게 해놓은 다음에 죽으면 누가 송장 치우겠다고 들어와 살 것이여? 이 악물고 일어나서 나 홀아비 면하게 해주어야 해. 알겄어요?”

    “아이고, 요즘 나이 예순다섯 살이면 제2청춘 시작이라는데, 당신 벌어놓은 돈 통장에 가득 들어 있겄다, 날찍한 아파트 있겄다, 새끼들 다 키워 시집보내놨겄다… 나 없어지기 기다리는 속창아지 빠진 년들 줄을 서 있을 거라는데, 내가 어느 년 좋으라고 지금 죽어줘? 꿈 깨시오. 고르랑 팔십에다가 귀신같은 구십에다가 신선 같은 백 살까지 살다가 죽을 터인께 두고 보시오.”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현장l

    마치 따뜻한 봄날 툇마루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노부부가 주고받는 얘기처럼 읽힌다. 예순다섯이라면 이제는 세상 사는 일에 이력이 생겨 어느 정도는 포기하거나 달관할 연륜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에서 ‘아파트’는 여전히 삶을 지탱하는 주요한 수단처럼 여겨져 왠지 가슴 한구석이 아리다.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란 과연 무엇인가. 글쟁이 강준만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한마디로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현장, 바로 그곳이다.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이나 다툼, 혹은 깜짝깜짝 우리를 놀라게 하는 비도덕적·비윤리적 상황은 대부분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라는 틀에 넣어보면 여지없이 들어맞는다. 어느 누구도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나서지 않는 바람에 법적 기구인 입주자 대표회의가 구성되지 않는 중대형 아파트 입주자들의 불평과 불만, 재건축아파트 조합 결성을 아이의 대학 합격 소식보다 더 반기는 부모들, 아파트가 구조적으로 튼실하지 못해 곧 무너지게 생겼다는 구조안전진단 평가결과에 경축 현수막을 서둘러 붙이는 건설업체와 이름도 다양한 추진위원회, 남에게 뒤질세라 목청 돋우며 아파트 문제를 비난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에 끼여 들어오는 아파트 매매가격 동향에 일희일비하는 아침 식탁 풍경 등등.

    모두가 얼마나 아파트에 목매고 있으면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가 신흥종교라는 말까지 생겼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아파트는 ‘한국문학의 공간탐사’에서 저자 최재봉이 정의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분명 ‘낯설고도 친숙한’ 풍경이자 일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아파트’라는, 주택의 한 유형을 일컫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다. 당시 우리나라의 전체 주택 수는 443만3000여 가구였는데, 이 가운데 아파트는 3만4000여 가구로 백분율로 보면 0.77%에 불과했다.

    1970년 4월8일 새벽 6시, 5층짜리 시민아파트 한 동이 무너져내려 2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중경상을 입은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에서 엿볼 수 있듯, 당시 아파트는 저소득층을 위한 질 낮은 주택이었다.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들은 아파트라 불리는 주택을 소유하게 돼 기쁘기는 하지만 여전히 마당을 가진 단독주택으로의 이주를 희망했다. 이랬던 상황이 급격하게 바뀐 계기는 이른바 한강맨션아파트와 여의도 시범아파트로 대표되는,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의 공급이었다.

    약 132㎡ 규모에 복층구조일 뿐 아니라 수영장까지 갖춘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아파트는 꿈의 궁전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으며, 아파트에 산다는 것 자체가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전화의 응대말까지 달라졌다. “반폽니다” 하는 말은 곧 “우리는 반포아파트에 살아요”와 동의어가 됐고, “가회동입니다”라는 말은 “비록 세상이 아파트로 바뀌고 있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품격 있는 주택에 산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이런 양태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적어도 아파트와 품격 있는 단독주택이 한 번쯤 겨뤄볼 만한 상황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파트 보유 여부로 성공한 인생 판단

    아파트가 별리(別離)적 증후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다. 70년대 후반부터 불붙기 시작한 부동산 폭등은 가족의 해체와 한곳에 오래 머물러 사는 행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줬다. 소위 정주성(定住性)의 약화가 빚어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김숙의 단편집 ‘그 여자의 가위’ 중 ‘오래된 붉은 벽돌집’에는 “45평짜리 아파트가 제(아내) 앞으로 떨어진 날부터 집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다”는 대목이 있다.

    이른바 복부인의 등장이 바로 이때부터이며, 사내들 사이에서는 겸연쩍은 ‘처복(妻福)’보다는 앞뒤 글자가 바뀐 ‘복처(福妻)’가 환영받기 시작했다. 소설은 계속된다. “새 집을 손에 넣을 때마다 이제 더는 부유(浮遊)하지 않고 그 집에 닻을 내리리라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집을 짓지 않는다면 모를까, 더 비싼 집, 더 화려한 집에의 유혹은 번번이 제 심신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습니다”라는 고백은 1970~80년대를 집 때문에 고민하면서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1990년대부터 아파트는 욕망과 소비의 대상이 됐다. 어떤 윤리적 잣대보다 앞서는 가치이자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이며, 금전적 기대이익과 모든 욕망의 추구대상을 관통하는 결정체가 바로 아파트인 것이다. 사람들은 아파트를 매개로 너나 할 것 없이 금전적 이익을 좇는 집단적 거주자로 전락했다. 아파트는 이제 새로운 욕망을 찾아 언제나 떠날 태세를 갖춘 “잔뜩 발기한 거대한 난수표”(한수영의 소설 ‘공허의 1/4’)가 됐다.

    이혼을 하면서 “남편은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을 가져가는 대신 아내에게는 강남의 30, 40평짜리 아파트를 넘겨주는”(윤대녕의 ‘올빼미와의 대화’) 세상이 됐다. 그뿐 아니다. 나이 든 부모를 수발하는 것이 싫어 자식들이 모여 “아버지가 죽으면 아파트를 주기로 하고, 낯모르는 사람을 시켜 어르신의 수발을 들도록 하거나”(이혜경의 ‘피아간’),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져도 어렵사리 구입한 아파트를 처분하기보다는 “차라리 몸을 파는 것이 낫다고 운위되는 세상”(김윤영의 ‘얼굴없는 사나이’)이 됐고, 많은 사람은 이에 동조한다.

    젊은이들은 원룸에서의 동거는 가능하지만 “신혼은 물론 아파트에서 시작한다”(박민규의 ‘굿바이 채플린’)는 결의로 연애에 나서고, “맞벌이해서 수도권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는 것이 꿈인”(우영창의 ‘하늘다리’) 여성들이 증권시장에 눈독을 들인다. 그렇게 꾸던 꿈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결혼한 여자들의 머리에는 남편과 육아, 아파트 평수 그리고 가족주의가 8할을 차지”(안은영의 ‘이지연과 이지연’)하고 있다는 글이 이를 적절하게 묘사한다.

    결혼을 앞둔 여성이 교직을 정년퇴임한 시아버지 될 사람에게 무람없이 “연립은 사주셔도 짐”(박민규의 ‘누런 강, 배 한 척’)이라는 말씀을 드리거나 “빚 없이 강남의 50평 아파트에 산다면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서유미의 ‘쿨하게 한 걸음’)이라 생각하는 게 요즘 젊은이들이다. 특히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너나없이 “10억짜리 아파트에 살며 20억이 안 되니까 안심할 수 없다고 엄살떠는 중산층 환자들”(이지민의 ‘타파웨어에 대한 명상’)이 돼버렸다. 이것이 바로 지난 40년 동안 아파트를 통해 그려진 우리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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