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0

2009.11.10

박정희를 만난 것이 ‘역사의 로또’일까

‘박정희 한국의 탄생’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9-11-04 17:1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박정희를 만난 것이 ‘역사의 로또’일까

    조우석 지음/ 살림 펴냄/ 422쪽/ 1만6000원

    필자는 박정희와 얽힌 강렬한 두 가지 추억이 있다. 하나는 그가 설립한 구미의 금오공고에 입학할 뻔했다는 것이다. 금오공고는 성적우수자로 추천받아 입학하면 전액 무료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필자는 키가 148cm로 기준보다 2cm 작아서 입학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부쩍 커버린 터라 그때의 일이 평생 잊히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대학 3학년 때인 1979년. 필자는 다니던 대학 신문사 편집장이었다. 그해 2학기 초에 터진 신문 필화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후 학장의 노력으로 간신히 10월16일에 훈방됐다. 그러나 편집장 직위는 박탈당했다.

    그때 “유신헌법이 우리 시대 최상의 법이라 할지라도 발전적인 비판은 허용돼야 한다”고 썼다. 한데 그것이 징역 3년에 해당하는 긴급조치 9호 위반이라고 했다. 그런 글이 왜 허용될 수 없었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훈방된 지 열흘 후인 10월26일, 박정희는 부하의 총을 맞고 운명했다.

    그리고 필자는 편집장에 복귀했다. 1980년의 봄 대학가는 잠시나마 활력이 있었지만 몇 달 만에 5·18민주화운동이 터지면서 활력은 멎었다. 그로부터 30년, 다시 박정희가 부활하고 있다. 박정희 서거 30년에 때맞춰 두 권의 책이 나왔다. 한 권은 조갑제가 전에 펴냈던 전 13권의 ‘박정희 전기’ 축약판인 ‘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이고, 다른 한 권은 박정희를 둘러싼 논란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나선 조우석의 ‘박정희 한국의 탄생’이다.

    그러니 이번에 새로 나온 것은 조우석의 책뿐이다. 박정희에 대한 수많은 논란에도 그에 관한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말은 많되 연구가 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의 출간은 우선 환영하고 볼 일이다. 조우석의 책은 평전이 아니다. 박정희의 유산, 캐릭터와 스타일, 출생과 성장과정, 18년의 성취, 핵심 쟁점, 사후 재평가 등 주요한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밝힌다. 그는 이참에 박정희에 대해 자유롭게 새로운 논의를 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은 박정희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친일파, 독재자, 지역차별의 원흉이라는 ‘3대 원죄’로부터 박정희를 옹호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저자는 박정희 집권 18년의 시기인 1960~70년대를 ‘6070’으로 표현한다. 6070은 박정희 시대이며 곧 한국의 탄생기다. 금박시대로 불러도 무방하다. 박정희는 정치 9단의 마키아벨리언이기도 하지만, ‘울보’에 ‘낭만시인’에 막걸리나 값싼 양주인 시바스 리걸을 즐기는 인간적인 진면목도 지닌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박정희가 찬양을 받아야 하는 결정적 이유로 영국이 131년, 프랑스가 84년, 독일이 74년, 일본이 72년에 걸쳐 이룩한 근대적 산업화를 우리는 6070시대 20년 만에 이륙했다는 사실을 든다. 베트남 파병과 한일국교 정상화 그리고 중동건설 붐으로 벌어들인 외화로 중화학공업에 투자한 것은 박정희 18년의 최대 도박이자 오늘날 한국의 얼굴을 만든 초대형 승부수라는 것이다.

    1960년은 세계적으로 쿠데타 지진의 해였지만, 그해 쿠데타가 경제적 성과로 이어진 특출한 사례는 5·16이 거의 유일하다. 1963년에 100달러에 불과하던 국민소득은 1979년 1597달러로 16배나 뛰었다. 그러니 5·16은 대한민국이 만난 ‘역사의 로또’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런 경제적 성과를 이뤘으니 나머지 잘못은 ‘면죄부’를 줘야 마땅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인간의 비판의식에 재갈을 물린 유신 체제란 ‘고도성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했던 비용이자 환경정비’일 뿐이라는 것.

    게다가 제조업을 포함한 근대적 산업구조를 갖추려면 그를 뒷받침하는 과학기술과 효율적인 관료시스템이 필요한데 후발국가일수록 국가의 역할, 즉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최고의 이데올로기는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성공이므로 ‘비판자에게 주먹질 좀 한 것은 봐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산업화 성공이 노동자, 농민의 수탈로 가능했다는 비판에는 “6070시대 당시 한국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며 역사적으로 노동자, 농민을 억압하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성공한 나라는 없었다”는 한 학자의 대답을 들어 정당화한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와 개발연대를 최악의 독재이자 파시즘의 정치였다고 비판하는 반(反) 박정희 논리가 ‘지난 30년 넘게 유지돼온 한국 지식사회의 사막화 현상을 재촉했다’는 결론에는 그냥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 학교현장에서 바람직한 인간화 교육이 아니라 우수인력 선발에만 목숨을 거는 행동이나, 공직자들의 무수한 잘못은 능력으로 커버된다는 논리가 모두 이런 기묘한 박정희 우상화와 맥락이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