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0

2009.11.10

찌든 마음 깨끗하게 세탁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09-11-04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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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든 마음 깨끗하게 세탁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에는 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작고 허름한 세탁소에서 가업을 잇는 세탁소 주인이 등장한다. 그는 금전적으로는 쪼들리지만, 세탁일에 긍지를 갖고 있다.

    옷만 봐도 그 사람의 성격이며 모습까지 알아맞힐 수 있다고 자부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꼼꼼히 적어놓은 세탁 노하우를 존중하며 따르는 주인공. 그러나 세상이 그의 소박한 삶에 끊임없이 태클을 걸어온다.

    엄마 옷을 찾으러 온 어린아이에게 단지 귀여워서 아이스크림 사먹으라고 돈을 쥐어줬다가 성추행범으로 오해받고, 옆에서 묵묵히 고생해온 아내는 세탁소를 그만두고 세탁편의점을 하자며 바가지를 긁는다.

    그러다 임종을 맞이한 어머니가 세탁소에 재산을 숨겨뒀다고 주장하는 부잣집 형제들이 느닷없이 쳐들어와 옷들을 망가뜨린다. 전개되는 상황이 점입가경으로 치닫자 주인은 사람들을 모두 세탁기에 집어넣고 빨래를 한다. 그럼 잔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인가? 아니다.

    ‘톰과 제리’에서 톰이 열린 문과 벽 사이에 납작하게 돼도 죽지 않고 종잇장처럼 얇은 몸으로 걸어가는 것처럼, 사람들은 마음이 깨끗하게 세탁된 채 천사 옷을 입고 세탁기에서 보글보글 거품과 함께 살아 나온다. 이 연극은 건전하고 따뜻한 동화라고 할 수 있다. 만화적인 상상력도 곳곳에 보인다.



    캐릭터나 상황에 비약적인 면이 있는데, 예를 들어 파렴치한 부잣집 자제들의 ‘호래자식’스런 행동거지나 무작정 화를 내는 아이 엄마의 폭력적인 행태는 특정한 상황을 위해 과장된 것이다. 주변 인물들의 행동이 과장되는 것은 무리가 없으나, 디테일한 재미와 감동을 위해 중심인물들은 평면적 캐릭터를 탈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세탁소 주인의 심경 변화가 드러나는 포인트가 좀더 강조되면 좋겠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강도의 소리 지름과 어수선함이 지속되기 때문에 긴장감의 조절이 요구된다. 세상이 현대화하면서 과거 문화의 일부는 ‘추억’으로 남게 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소중하게 지켜온 생활방식과 가치가 소멸하거나 무시되기도 한다.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은 어느 세탁소에서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을 통해 세월이 흘러도 잊지 말아야 하는 윤리와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교육적인 메시지가 강하고 난해하지 않아 학생들과 부모가 함께 관람하기에 좋을 듯하다. 윤당아트홀, 오픈런, 문의 02-512-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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