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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김지은의 Art & the City

인간의 광기는 기록으로 남는다

레이첼 화이트리드 ‘홀로코스트 추모비’

인간의 광기는 기록으로 남는다

인간의 광기는 기록으로 남는다

홀로코스트 추모비, 1995

여류작가 레이첼 화이트리드(46)는 주변의 익숙한 사물을 석고나 고무, 합성수지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데 탁월합니다. 그는 대학시절 자신의 귀에 석고를 발라 떠낸 ‘귀’라는 작품을 제작했는데요.

이렇게 시작된 화이트리드의 작품은 책상 밑이나 옷장 속, 신발 밑창 등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사물들의 사이 혹은 위아래 공간을 주조해내는 작업으로 발전했죠.

급기야는 런던의 대표적 빈민가인 이스트엔드의 허름한 집 내부를 석고로 떠내기에 이릅니다. 그는 모든 벽에 석고를 발라 굳힌 후 일정한 크기로 잘라냈고, 벽에 닿았던 부분을 바깥으로 향하게 한 뒤 다시 붙여 집 내부를 외부화했는데요.

즉 장갑을 뒤집어놓듯 집을 통째로 뒤집어놓은 거죠. 이렇게 완성한 작품 ‘집(house)’은 연일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프라이버시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영국인들에게 개인의 집을 고스란히 만인에게 보여준 이 작품은 마치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쇠락한 영국을 보여주는 것 같아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죠. ‘예술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도 살 수 없는 집을 만들 돈 있으면 차라리 빈민들을 위한 집을 지으라는 항의가 빗발쳤고, 결국 작품은 태어난 지 1년 만에 철거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늘 이슈를 만들어냈는데요.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광장에 세워진 기념비도 마찬가지였죠.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잊지 않으려고 만든 이 기념비는 기존 기념비 형식을 완전히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도서관 내부의 책이 꽂힌 선반을 석고로 주조한 후 역시 바깥을 향하게 해 다시 접합한 거죠. 책에 낀 곰팡이, 찢어진 모서리, 책 사이의 공간, 선반 뒤쪽이 그대로 드러난 ‘거꾸로 된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대학살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기념비로 왜 그는 도서관을 택했을까요? 1948년 이스라엘에서는 홀로코스트 당시 실종되거나 죽임을 당한 유대인들을 기리는 추모비를 건립하자는 의견과 그와 관련된 책을 발간해 도서관을 건립하자는 의견이 팽팽했는데요. 당시 벤 구리온 총리는 도서관을 건립하자는 쪽의 손을 들어줬죠.

그가 도서관을 선택한 배경에도 비슷한 이유가 있었는데, 즉 지식이 물질화한 공간, 도서관에서 역사와 인류의 경험이 축적된 책을 보여주고자 한 거죠. 하지만 이 도서관의 책은 한 페이지도 열어볼 수 없습니다. 유대인 광장의 ‘홀로코스트 추모비’(1995)는 광기 어린 홀로코스트가 자행되도록 묵인한 역사,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누락된 기록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New Exhibition

인간의 광기는 기록으로 남는다

2009 재외한국청년미술제 U·S·B

2009 재외한국청년미술제 U·S·B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지만 정작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출신 작가들이 모였다. 국내외 큐레이터, 미술평론가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24명의 작가는 각기 다른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을 펼치고 있다. 전시 제목 ‘U·S·B’는 유동성을 지닌 컴퓨터 정보저장 장치처럼, 유목민처럼 사는 그들의 삶을 빗댄 것이다. 11월5일~12월2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02-580-1603
권경환展 신진 작가 권경환의 첫 번째 개인전으로 죽음을 다뤘다. 전쟁, 테러, 자살, 사고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이미지를 선보이면서 관객들에게 죽음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11월5일~12월5일/ 원앤제이갤러리/ 02-745-1644
유근택展 사물과 경험, 일상을 소재로 작업하는 유근택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봐야 할 작품은 ‘어떤 만찬’.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5m인 대형작품으로 작가 특유의 먹선과 붓질을 느낄 수 있다. 11월4~29일/ 사비나미술관/ 02-736-4371




주간동아 2009.11.10 710호 (p89~89)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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