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0

2009.11.10

마술피리 멜로디 느낌 ‘블라우프란키쉬 가거 2005’

  • 조정용 ㈜비노킴즈 대표·고려대 강사

    입력2009-11-04 16: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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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술피리 멜로디 느낌 ‘블라우프란키쉬 가거 2005’
    와인, 이 말에선 흙냄새가 난다. 풍요로운 대지에서 잉태한 와인은 그 풍미 속에 고장의 풍토가 스며 있고,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예컨대 오스트리아 와인을 마시면 오스트리아로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그 나라 와인에는 순수성이 깃든 화이트 외에도 기억할 만한 레드와인이 있다.

    지금이야 츠바이겔트와 피노누아의 비중이 높지만, 뭐니 뭐니 해도 오스트리아 레드와인의 미래는 블라우프란키쉬(Blaufrankisch)에 달려 있다. 껍질이 두껍고 씨알이 대체로 작은 블라우프란키쉬는 프랑크 왕국에서 그 이름이 비롯됐다. 우리의 삼국시대 무렵 서유럽을 석권한 샤를마뉴 대제는 독일 아헨을 수도로 삼고 국경을 확장했다.

    그 시절의 양조는 지금보다 훨씬 체계적이지 못했지만, 귀족적 포도를 프란키쉬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것을 훈니쉬라고 구분할 만큼 품질에 관심이 높았다. 글자 그대로 보면 프란키쉬는 프랑크의 형용사형이기도 하니, 블라우프란키쉬를 풀이하면 ‘푸른빛을 띠는 프랑크 왕국의 포도’가 된다.

    블라우프란키쉬의 주산지는 부르겐란트 지방이다. 하이든의 고장이다. 이곳은 오스트리아의 남서 끝자락에 자리하며 헝가리와 이웃한다. 사실 부르겐란트는 와인 세계에서 일찍이 스위트와인의 천국으로 알려졌다. 국제적 지명도가 높은 양조장 크라허 덕분이다. 일단의 양조장 주인들은 요사이 ‘부르겐란트=스위트’라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으려 한다.

    바로 블라우프란키쉬 양조를 통해서. 바인구트 가거의 블라우프란키쉬 비티쿨트(Vitikult) 2005는 가거 양조장 특유의 라벨로 포장된다. 미국 팝아트 작가 재스퍼 존스의 평면구성을 떠올리는 라벨이다. 칼칼하고 예리한 신맛 가운데 부드러움을 겸비해 익숙하지 않은 맛을 좀 덮어준다.



    친숙한 푸치니의 오페라 가락이 아닌,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멜로디 같은 생소함과 비슷하지만 도전해볼 만하다. 질감이 온화하고 기품이 느껴져 삼키는 묘미가 있으며, 피노누아의 맑은 체리 향에 블랙커런트의 쏘는 맛이 섞인 것 같다. 숙성이 잘 돼가고 있으니 좋은 날 한번 개봉해보시길. 담백하고 정갈한 식탁 위에서 와인을 타고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수입 수미르와인, 가격 6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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