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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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쓴다 고로 성장하고 존재한다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입력2009-11-04 1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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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글을 쓴다 고로 성장하고 존재한다

    <B>1</B> 그동안 우리 식구가 낸 책들.

    지금은 새벽 5시. ‘글쓰기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한다. ‘주간동아’에 자급자족이라는 주제로 연재를 한 지 어느덧 9개월째. 이제는 글쓰기가 내 삶의 일부가 된 듯하다. 글 한 꼭지 마감하고 나면 곧바로 다음 글을 구상하고 또 써야 한다.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 돌아보는 계기

    내게 글쓰기는 자급자족 삶과 직접 닿아 있다. 말하자면 ‘삶을 가꾸는 글쓰기’다. 글은 삶에서 나오지만, 글을 쓰고 다듬는 과정에서 다시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며 가꾸게 된다.

    안 해보던 산골살이를 하다 보니 처음 겪는 일이 많았다. 농사도 처음, 집짓기도 처음, 메주 쑤기도 처음, 술빚기도 처음…. 뭐든 처음엔 설레는 마음과 두려움이 함께한다.

    그런데 막상 몸으로 부딪치면 대부분의 두려움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설렘은 뿌듯함으로 바뀌곤 했다. 어느 순간 이 경험을 글로 쓰고 싶었고, 그럴 때면 아내가 내게 용기를 주었다. 글쓰기는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게 무엇인지 늘 돌아보게 해줬고, 나 자신을 바로세우는 데 큰 힘이 됐다. 써야 하는 글쓰기가 아닌 쓰고 싶은 글쓰기라 그런가.



    점차 실력이 늘어 이런저런 매체에 다양한 주제로 연재도 했다. 시로 쓰는 농사일기, 몸 공부, 사람 공부, 자녀교육, 치유와 자아발견, 끌리는 맛과 당기는 요리…. 나는 주로 새벽에 글을 쓴다. 잠이 깨고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어떤 영감이 떠오르면 컴퓨터를 켠다. 부팅되는 동안 온몸을 깨우기 위해 기지개를 크게 켠다.

    그런 뒤 떠오르는 대로 한달음에 글을 쓴다. 몰입하는 순간이다. 누에가 실을 토해내듯 내 몸에서 글이 풀려나온다. 다 쓰고 나서 한 번 죽 읽어보면 중간에 엉킨 부분도 있고, 옆길로 샌 흔적도 나타난다. 우선 보이는 대로 글을 고친다. 그런 다음 컴퓨터를 끈다. 이렇게 쓴 초고는 나만의 글쓰기가 된다.

    그러니까 글 자체로는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글에서 나누고자 하는 느낌이 가장 잘 살아 있다고 할까.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어떤 느낌을 받는다면 바로 초고가 갖는 분위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 다음 시간이 날 때면 초고를 꺼내 다듬는다. 주제와 관련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나? 관련 책을 읽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검색도 한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는다. 꼭 필요한 부분은 인용을 하고, 때로는 간단히 인터뷰도 한다. 내가 글쓰기에 가장 많이 참고하는 책은 도감이다. 처음에는 농사 관련 도감만 갖고 있었는데 관심 분야가 늘다 보니 이제는 도감도 많이 늘어났다. 식물, 동물, 나무, 곤충, 거미, 인체…. 심지어 ‘개념어 사전’이란 것도 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여러 번 다듬다 보면 저절로 공부를 하게 된다. 글이란 그런 거 같다. 글쓴이가 새롭게 배운 게 많다면 누군가에게는 정보의 가치가 생기고, 영감을 받고 쓴 글이라면 읽는 이도 어떤 영감을 받게 마련이다. 또 쓰는 과정이 즐거웠다면 읽을 때도 즐겁다. 한달음에 글을 쓰면 읽는 것도 한달음에 읽힌다. 글도 글쓴이에 따라 나름의 리듬과 호흡이 있는 셈이다.

    나는 글을 쓴다 고로 성장하고 존재한다

    <B>2</B> 그동안 내 글을 연재한 ‘주간동아’. 차곡차곡 모아놓고 이따금 이전 글과 겹치는지 점검한다. <B>3</B> 군(郡)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B>4</B> 글쓰기에 도움을 받는 여러 도감.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정신적 보약’

    여기까지가 나만의 글쓰기다. 이제 나를 넘어 우리만의 글쓰기를 거친다. 그건 아내, 아이들과 함께 하는 글쓰기다. 내 선에서 글이 완성되면 이제 이 글을 아내가 본다. 아내가 쓴 글 역시 내가 먼저 본다. 그 과정에서 부부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글에서 고칠 점, 덧붙일 곳, 뺄 곳을 알려준다. 때로는 글 전체를 다시 쓰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글쓰기는 부부 사이의 소통에서 아주 큰 몫을 차지한다. 다음은 아이들과의 소통이다. 글 내용이 아이들과 관련 있으면 다시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아이 자신과 관련된 부분은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 모호하거나 잘못된 내용을 아이들이 고쳐준다. 그럼, 한결 글에 생동감이 생긴다. 이 대목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소득이 있다. 바로 부모가 쓴 글을 아이들이 읽는 것!

    부모 생각을 자녀가 읽어주니 교육에 큰 보탬이 된다. 이런 경험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이제는 책읽기도 가족이 함께 할 때가 있다. 쓰기와 읽기는 동전의 양면이 아닌가. 우리 식구 중 누군가가 책을 사거나 빌리면 나머지 식구도 그 책에 흥미를 갖는다. 가끔 책 한 권을 사서 네 사람이 볼 때면 꽤나 남는 장사구나 싶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동안 우리 식구가 낸 책이 5권. 이 역시 넓게 보면 자급자족 삶에 따른 생산물의 하나다. 청소년인 아들이 읽고 모니터링한 글이라 그런지, 다른 청소년들도 우리 글을 읽는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식구가 함께 소통하면서 글을 쓰면 읽는 이들도 식구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글쓰기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연재가 길어지거나 또 다른 책을 기획하다 보면 생각이 엉키기도 하고, 이전에 쓴 내용과 중복되는 것은 아닌지 헷갈려 이전 글을 다시 훑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글 한 편 마감하면서 끙끙 앓기도 한다.

    그럴 때는 다시 삶을 돌아본다. 글이 내 삶을, 부부 사이를, 가족 소통을, 나아가 사회를 더 낫게 하는가. 아니면 내 성장에 걸림이 되거나, 누군가와 갈등의 씨앗이 되는 건 아닌지를 돌아본다. 이렇게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다시 내 뇌와 만난다.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뇌의 작용. 글을 다듬으면서 내 뇌도 고치고 바꿔간다. 이럴 때 글쓰기는 자신을 치유하는 ‘정신적인 보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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