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0

2009.11.10

과학고 입시 개선안 믿어도 되나

선행학습 사교육 조장 또 다른 주범 … 추천과 면접으로 선발 애매모호

  • 김은실 ‘대치동 엄마들의 입학사정관제 전략’ 저자· 김은실7mentor소장 www.7mentor.net

    입력2009-11-04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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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고 입시 개선안 믿어도 되나

    특목고 입시설명회에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

    외국어고등학교(이하 외고) 폐지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사교육을 조장하는 주범으로 낙인찍힌 외고의 입시 전형이 대폭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문과형 특수목적고등학교(이하 특목고)가 외고라면, 이과형 특목고는 과학고등학교(이하 과고)다.

    거센 외고 논란 때문에 살짝 뒤로 비켜서 있는 과고 입시도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외고가 특목고를 대표하다시피 성토 대상에 오른 이유는 학교 수 및 모집학생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외고는 현재 전국에 30개교가 있으며, 한 해 입학정원은 8226명에 이른다. 과고는 영재학교를 포함해 21개교, 한 해 입학정원이 1520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과고 입시의 사교육 의존도는 외고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학부모들 반응은 시큰둥

    현 정부의 사교육 억제책은 강경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진행되고 있다. 과거 감정적으로 대응하던 억제책과 달리, 사교육의 목을 죄는 접점을 꽤 잘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교육 억제책으로 정부에서 가장 먼저 내놓은 것이 ‘과고 입시안 대폭 개선’이다.



    과고는 그동안 특별전형으로 이뤄지던 올림피아드 및 영재원 전형(올림피아드 입상이나 영재원 수료 등에 가산점을 주는 전형)을 2011년 입시부터 전격 폐지하고 정원의 50%는 입학사정관제로, 나머지 50%는 창의성 전형으로 선발할 예정이다. 그동안 올림피아드 및 영재원 전형에 맞춰 수학과 과학에서 엄청난 선행학습 바람이 불었고, 이는 사교육을 확산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교육청, 대학, 과고에서 운영하는 영재원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과정까지 있다. 입학 시험문제 유형이 교과서와 많이 다르고 학교에서 준비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는 거의 사교육 시장에서 담당해왔다. 초등학교 4~6학년 영재원 과정은 아이가 문과 또는 이과에 재능이 있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하고 싶어 하는 대상이 돼버렸다.

    특히 청심, 대원, 영훈 등 국제중학교 입시전형에서 ‘영재원 수료’에 가산점이 주어지면서 그 열풍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중학교 1~2학년 과정은 주로 과고 및 영재학교를 지망하는 학생들로 구성된다. 주말마다 수업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학습량이 많아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적지 않게 들어간다. 하지만 문제는 영재원에 합격하기 위해 대부분의 학생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놀라울 정도의 선행학습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과고가 앞으로는 입학사정관의 면접과 영재담당교사의 추천 등으로 학생을 선발한다고 발표했음에도 학부모들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 K씨는 “영재담당교사나 학교장이 추천한다고 하지만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학교 성적이나 경시대회 수상실적을 볼 것이다. 그러니 다른 학생들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게 하려면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고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어느 정도 선행학습을 했을까. 2년 전 서울과학고에 합격한 어느 학생의 초등학생 때부터 중3 때까지의 공부 이력을 살펴보자.

    △초5 : 수학 9-나(중학교 3학년 2학기 과정)까지 선행학습

    △초6 : 중학교 과정 영재원 시험 준비. 수학 10-가(고등학교 1학년 1학기 과정) 훑기

    △중1 : 수학 10-가·나(고등학교 1학년 과정), ‘실력 수학의 정석’ 수준의 수Ⅰ(고등학교 2학년 과정) 공부

    △중2 : 수학 올림피아드 준비 및 출전. 9월까지 수학 10-가·나 심화학습 및 수Ⅱ(고등학교 이과 과정) 개념정리, 겨울방학 때부터 과학 올림피아드 준비

    △중3 : 5~9월 과학 올림피아드 준비 및 출전

    이처럼 과고를 준비하는 아이는 초교 6학년 때부터 고교 수학을 공부한다. 문제는 이런 학생들을 본 다른 학부모들이 자기 학년 수준의 수학을 공부하는 자녀에 대해 불안해하면서 선행학습을 시킨다는 것. 이런 수학 선행 도미노 현상은 이미 오랜 기간 전국에 걸쳐 확산돼왔다. 이처럼 수학 사교육 역시 영어 사교육에 버금갈 정도다.

    올림피아드와 영재원, 여전히 중요?

    교육부는 사교육 억제책의 일환으로 2011년 입시부터 매우 획기적인 올림피아드 선발 방식과 영재원 및 과고 입시 개혁안을 내놓았다(표 참조). 일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과 다를 수 있다. 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험’ 위주의 평가 기준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치한 것이 서류평가와 학교장 추천이다. 입시 관계자들은 전형 과정에서 독창성, 적성과 잠재력, 정확한 실적, 학습능력 등을 선발 기준으로 삼는다고 강조한다.

    과학고 입시 개선안 믿어도 되나
    언뜻 보면, 시험이 없어졌으니 사교육 바람이 다소 잠잠해지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번 시험제도의 함정에 빠져왔던 학부모들은 이런 의문점을 던진다. 영재담당교사는 무엇을 기준으로 영재를 판별할까. 학교장과 과고 입학사정관들은 어떤 기준으로 합격생을 선발할까. 아마 학부모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잠재된 영재성을 판별할 만한 장치가 당분간은 미흡하다. 따라서 올림피아드나 경시대회 수상경력, 학교 성적이 기초 잣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선행 및 심화학습을 많이 한 학생들이 아무래도 학교 성적이나 경시대회에서 우수성을 보인다. 특별전형에서 올림피아드 및 영재원 우대 제도가 사라진다고 해도 서류 평가에서 그런 실적들은 여전히 우수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러니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대폭 개선되는 과고 입시에 희망을 걸어보고 싶은 게 필자를 비롯한 학부모들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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