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의 정과 보살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어울리면서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타향살이의 외로움도,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도 풀어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남아 등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다문화 가정의 아내들은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리는 경우가 적다고 합니다. 객지에서 같은 베트남 출신, 필리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친하게 지낼 것 같은데 말이죠.
‘다문화 부부를 위한 집단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한 한 교수는 “비슷한 지역에 사는 베트남 아내들끼리 만났는데, 서로 대화하는 걸 어색해하고 전혀 교류를 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유인즉슨 한국인 남편들이 아내가 집 밖에 나가는 것도, 같은 나라에서 온 여성들과 어울리는 것도 무척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돈 주고 ‘사온’ 아내가 친구들과 어울리다 혹시 도망이라도 갈까봐 집 안에 꼭꼭 가둔다는 겁니다.
언뜻 생각해봐도 어린 나이에 타향으로 시집온 아내들이 집에서 아이 키우고 살림만 한다면 외로움을 느끼고 우울증에 빠질 것 같아요. 하지만 아내의 불안정한 정서가 금쪽같은 자녀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대단한’ 한국인 남편들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바깥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가 차단된 아내들은 한국어가 서툴 수밖에 없죠. 따라서 아이에게 제대로 된 언어자극을 주지 못하니 아이의 언어발달은 늦어지게 됩니다.

물론 모든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요.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연예·스포츠 분야에서 이국적인 인상과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혼혈’들이 증가하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죠.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순종보다 강한 잡종’이 되려면, 아내를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한국인 남편들의 시각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주간동아 710호 (p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