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7

2009.10.20

잠실 열광 …‘제2의 대치동’인가

올 한 해 집값 상승의 핵 … 교육환경 좋아 젊은 부부 꾸준히 유입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9-10-14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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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실 열광 …‘제2의 대치동’인가

    아파트 단지 안에 모여 있는 학교들과 인근에 대규모로 형성된 학원가 등 잠실은 양질의 교육환경을 자랑한다.

    서울 송파구 잠실 1단지의 40평대 재건축 아파트에 사는 공무원 김모(54) 씨는 최근 자신의 집 매매계약을 담당했던 부동산 중개업자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세가 급등은 학부모들 교육열

    “취학 자녀도 없는데 왜 굳이 복잡하고 시끄러운 잠실에 사느냐고 묻더군요. 전세가를 5억원 이상 잘 받게 해줄 테니 지금 아파트를 전세 놓고, 하남 같은 공기 좋은 곳에서 사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어요. 이사한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전세가를 높게 받아준다니 솔깃했죠. 중개업자는 ‘취학 아동을 자녀로 둔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사하려고 줄을 섰다’고 하더군요. 저희처럼 자녀를 키운 세대들은 비슷한 전화를 한두 통씩 받았어요.”

    2만여 세대의 대규모 재건축 단지가 조성된 잠실은 올 한 해 동안 집값 상승의 ‘핵’이었다. 잠실 지역이 속한 송파구는 지난해 말 대비 9월30일 현재 평균 매매가가 13.74%, 평균 전세가가 25.18% 올랐다. 이는 서울 내 25개 구 가운데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매매가는 강동구에 이어 2위, 전세가는 1위). 잠실은 송파대로를 중심으로 서쪽에 자리한 잠실동(잠실 1, 2, 3, 4, 5단지 및 잠실본동)과 동쪽에 자리한 신천동, 그리고 삼전동과 석촌동을 아우르는 지역.

    이 중 잠실동과 신천동은 평균 매매가가 각각 14.49%, 22.2% 상승했고, 평균 전세가 역시 각각 34.89%와 43.63% 올랐다(자료 제공·부동산써브). 입주 초기 물량이 쏟아지면서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가 다시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상승률이 매우 높은 편. 특히 전세가의 경우 ‘자고 일어나면 몇천만원씩 올랐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무섭게 올랐다.



    이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새 아파트 및 대규모 단지의 프리미엄, 편리한 교통, 다양한 편의시설 등 주거환경이 좋은 데다 개발 호재의 기대감까지 합쳐져 잠실 집값을 끌어올렸다”고 진단한다. 그런데 이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이런 이점들이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무엇보다 좋아진 교육환경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 특히 전세가가 다소 비정상적으로까지 오른 데는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 ‘대전동’(대치동 전세)이란 말을 낳았듯, 잠실 역시 자녀의 학업을 위해 전세 사는 사람이 늘었고 수요가 많아지니 전세가도 올라갔다는 것. 서울 강동구에 살던 주부 이모(38) 씨도 최근 잠실 2단지로 이사했다. 7세 아이 하나를 둔 그가 이사한 집은 12평형 아파트. 방 하나와 거실 하나로 구성된 이 아파트는 아이가 없는 신혼부부나 1인 가구가 살기 적당한 크기지만, 그는 2억300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치르고 2년 전세계약을 했다.

    “당연히 좁죠. 하지만 아직은 아이가 어리니 이곳에서 지내다가 열심히 돈 벌어 이 아파트 단지의 20평형으로 옮길 예정입니다. 물론 전세가가 비싸지만, 이곳에 살면 단지 내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보낼 수 있잖아요. 그 점이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해요. 재건축 이후 이 지역 학부모들의 경제적, 사회적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반면 1억원 가까이 오른 전세가를 감당하지 못해 이사하는 세입자도 적지 않다. 재건축 단지 내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한 교사는 “최근 전학 간 학생들의 사정을 들어보면, 상당수가 전세가가 올라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경우였다”고 전했다.

    학원 우후죽순 사교육 시장도 확대

    잠실, 그중에서도 재건축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학부모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단지 내에 초·중·고교가 오롯이 모여 있어 교육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잠실 2단지에는 잠신초, 잠신중, 잠신고와 강동교육청이 있고, 잠실 1단지엔 잠일초와 신천중이 있으며 2011년엔 고등학교가 신설된다. 잠실 3단지엔 버들초와 영동일고가 있고, 신천동 파크리오 아파트 단지에는 2개의 초등학교(잠실초, 잠현초)와 잠실고가 있다.

    기존 아파트 단지 내에도 초·중·고교가 적절하게 분포돼 있어 이 지역 학생들은 걸어서 10분 내로 등하교할 수 있다. 2005년부터 잠실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해온 ‘박준공인’의 박준 대표는 “특히 20~30평형대 아파트는 전세계약을 맺은 고객 상당수가 취학 자녀가 있는 세대”라며 “초등학교 부설 병설유치원도 수준이 높아 이 지역은 미취학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부에게도 인기”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열의가 뜨거워진 결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도 높아졌다. 지난해 말 각 학교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게시한 특목고 진학 현황을 보면 잠실에 자리한 정신여중과 잠신중은 각각 18명, 17명을 진학시켰다. 이는 서울 어느 지역의 중학교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다. ‘부동산1번지’ 이지연 연구원은 “오랜 역사의 정신여고와 남녀공학 고교인 잠신고, 영동일고(전신 영동여고) 등도 높은 대학 진학률을 기록하면서 명문고로 각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잠실에는 사교육 시장도 크게 형성돼 있다. 2007년 초부터 삼전동 삼전사거리 지역을 중심으로 대성N학원, 장학학원 등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과 소규모 보습학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박준 대표는 “이 지역 학원들은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까지 셔틀버스를 운용해 학생들을 끌어모은다”며 “과거 대치동 학원을 다니던 학생들이 지금은 삼전동으로 발길을 돌렸다”고 귀띔했다.

    ‘상가뉴스레이더’ 서준 팀장도 “삼전동 학원가는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고, 대치동 학원가보다 월세 가격이 30% 정도 저렴해 학원 처지에선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도 이 지역은 학원을 중심으로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지금의 잠실을 ‘제2의 대치동’이나 ‘제2의 목동’으로 부르기엔 아직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부동산1번지’ 리서치팀 김은경 팀장은 “대치동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앞두고 전세가 상승하는 ‘방학 특수’ 등 교육 중심지역의 뚜렷한 특징을 보이지만, 잠실은 그런 현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며 “교육열은 대규모 입주가 진행된 대규모 단지에서 나타나는 집값 상승의 다양한 요인 중 하나일 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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