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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하얀전쟁’ 우유 열국지 06

우린 베낀다, 고로 존재한다?

유제품시장 ‘원조’와 ‘미투’ 해묵은 앙금 시장 포화로 또 전운(戰雲)

우린 베낀다, 고로 존재한다?

우린 베낀다, 고로 존재한다?

‘프렌치카페’ 모델 강동원이 ‘카페라테’를 들고 있는 합성사진. 원래 그의 손에는 ‘프렌치카페’가 들려 있었다.

“자기, 애가 먹는 우유 브랜드도 몰랐어?”
“아니, 난 그냥 ‘바나나’라는 말만 보고 냉큼 집어왔지 뭐.”
“초코파이도 한 회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잖아. 신경 좀 써. 아이가 안 먹잖아.”

“….” 회사원 김철민(41) 씨는 얼마 전 퇴근길에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바나나우유를 몇 개 샀다가 아내에게 면박을 당했다. ‘바나나우유는 다 그게 그것’이라고 생각한 ‘부주의’가 화를 불렀다.

여섯 살 딸아이는 평소 먹던 것과 다른 제품임을 확인하자 아빠가 사온 우유에 손도 대지 않았다. 김씨의 패착은 과자나 제과류처럼 유제품에도 유사제품이 적잖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 유제품 중에도 브랜드를 자세히 보지 않으면 겉모양만으로는 쉽게 구분하기 어려운 유사제품이 적지 않다. 맛도 구분하기 힘들 만큼 똑같다. 김씨가 산 제품은 원조제품의 독주를 막기 위한 유사제품, 이른바 ‘미투제품(me too product)’이었다.

‘나도 역시’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지만, 유가공업계 등에선 경쟁사의 주력 브랜드를 의식한 모방 제품이란 뜻으로 통한다. 원조제품 생산업체에선 이런 제품을 내놓는 상대 업체를 향해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슬쩍 숟가락만 놓는다”고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다른 업계에서도 그렇듯 경쟁업체들은 잘나가는 원조제품을 넋 놓고 쳐다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원조제품의 시장 점유율을 끌어내리고, 원조제품에 고정된 이미지와 소비자들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으면 다른 제품 경쟁에까지 여파가 미치기 때문이다.

카페라테, 바나나맛우유, 요플레…



유제품 가운데 원조제품과 미투제품은 너무 많아서 헤아리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 대표적인 사례만 꼽아도 다섯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먼저 국내 컵커피는 매일유업의 ‘카페라테’가 원조다. 1997년 국내 최초의 컵커피로 출시된 이 제품은 기존의 커피우유나 캔커피가 아닌 컵 모양의 용기에 원두커피의 맛과 향까지 담은 제품으로 시장에 크게 어필했다. 그러자 남양유업이 ‘프렌치카페’를 경쟁제품으로 출시했고, 두 제품이 지금까지 컵커피 시장에서 점유율 대결을 벌이고 있다.

액상(주로 마시는) 발효유 제품은 한국야쿠르트가 원조다. 30대 이상은 어린 시절 조그만 플라스틱 병(65㎖)에 담긴 ‘야쿠르트’를 얼린 다음 병에 구멍을 내고 조금씩 빨아먹던 생각이 날 것이다. 일명 ‘꼬마 요구르트’라 불리던 제품. 베이지색 유니폼을 입고 수레를 끌며 가정집을 방문하던 ‘야쿠르트 아줌마’도 떠오른다. 모두 1971년 8월 국내 최초의 유산균 발효유로 출시된 ‘야쿠르트’가 만든 추억.

하지만 야쿠르트의 독주는 채 5년을 가지 못했다. 1976년 해태유업(현 동원데어리푸드)이 요구르트 공정시설을 완비하고 발효유 시장에 뛰어들어 유사제품을 출시한 것. 부랴부랴 롯데햄우유(우유 부문을 분리해 ‘푸르밀’로 법인명 변경)도 비슷한 제품을 내놓았다.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에서도 ‘남양요구르트’와 ‘매일요구르트’라는 단순한 고유 브랜드로 65㎖ ‘꼬마 요구르트’ 상품을 내놓았다. 한국야쿠르트는 2001년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을 출시하면서 이후 수많은 기능성 요구르트 제품 등장의 물꼬를 텄다.

우린 베낀다, 고로 존재한다?

‘미투제품’은 ‘원조제품’의 시장 점유율은 내리고 소비자들의 시선은 분산시킨다.

법정으로 간 원조-미투 논쟁

떠먹는 요구르트의 원조는 빙그레 ‘요플레’다. 1983년 100g 용기에 딸기, 복숭아, 사과, 파인애플 네 가지 맛의 요구르트를 담아 출시한 이 제품은 마시는 게 아니라 숟가락으로 떠먹는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빙그레는 이후 요플레에 이은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바이오플레’ ‘네이처’를 내놓았으며, 매일유업 ‘바이오거트’, 한국야쿠르트 ‘슈퍼100’, 서울우유 ‘요델리 퀸’ 등의 유사제품이 잇따라 등장했다.

우유는 서울우유 제품이 사실상 원조격이다. 업계에선 1937년 설립된 경성우유조합이 생산한 180㎖짜리 흰 우유가 멸균우유의 ‘오리지널’로 꼽힌다. 1945년 9월 서울우유로 이름을 바꾼 뒤 병과 팩에 ‘서울우유’라고 찍은 제품을 지금까지 출시하고 있다. 서울우유에 이어 1965년 건국우유, 1971년 연세우유가 등장했고, 이어 매일·남양·파스퇴르가 흰 우유를 속속 내놓았다.

가공우유 중 소비자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바나나우유는 빙그레가 자신 있게 원조라 주장한다. 그야말로 간판 브랜드다. 아예 홈페이지에 ‘바나나맛 우유’ 페이지를 마련해놓고 소개할 정도. 1974년 첫 출시한 이 제품은 당시엔 구경하기도 힘들던 바나나라는 ‘희귀 과일’의 맛을 냈을 뿐 아니라 그 무렵 이농현상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점에 착안, 고향을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항아리 모양으로 용기를 제작해 큰 인기를 얻었다. ‘단지우유’ ‘항아리우유’ ‘수류탄우유’라는 재미있는 이름까지 붙으면서 최정상 인기 가공유로 자리매김했다.

워낙 시장반응이 좋아 거의 모든 유가공업체가 바나나우유 관련 미투제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2006년 12월 바나나우유는 노랗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라는 제품을 낸 매일유업 측은 할 말이 많다. 그들은 자사 제품에 대해 “절대 미투제품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미투제품은 원조제품의 모든 콘셉트를 본떠 만든 것을 의미하지만, 이 제품은 바나나 맛을 내는 노란 치자황색소를 빼고 대신 천연 바나나 과즙함량을 높여 완전히 새로운 제품으로 개발했다는 것이다.

바나나우유와 딴판으로 커피우유는 미투제품이 나오지 않은 거의 유일한 제품이다. 서울우유의 커피우유(제품명 ‘커피 포리 200’)는 비닐팩에 담긴 가공 우유로 유일한 제품이자 원조. 30, 40대라면 한 번쯤 빨대를 꽂아 마셔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서울우유가 초·중·고 우유급식 시장을 장악하던 시절 매일 흰 우유 박스에 한두 개씩 커피우유가 섞여 들어왔는데, 이를 차지하기 위한 학생들의 쟁탈전은 실전을 방불케 했다. 희소성 때문에 커피우유는 흰 우유 2, 3개와도 바꾸지 않던 ‘금싸라기 우유’였다.

이들 제품뿐 아니라 분유, 치즈 등의 유제품목에서도 원조와 미투제품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온 가운데 업계에선 대체로 미투제품을 서로 용인하는 분위기였다. 업체들이 유제품 시장의 전체적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몸집 키우기 차원이 아니더라도 미투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로선 불필요한 개발비용을 줄일 수 있고 소비자의 요구에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래서 타 업체에 크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원조제품이 인기를 끌 때마다 미투제품 출시를 적극 고려했고, 원조제품 생산업체 또한 상대가 원조 유사제품을 내놓아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업체들이 경기침체에 따른 내수 감소에 직면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원조제품 생산업체가 신생 미투제품이 나타날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선 것.

결국 이런 갈등이 법정소송으로 비화하는 사례까지 생겨났다. 한 유가공업체 관계자는 “2003년경 검은콩 우유를 처음 출시한 롯데햄우유가 낸 광고를 다른 업체들이 카피한 듯한 광고를 내면서부터 미투 논쟁이 격화됐다. 그 후 이른바 ‘따라 하지도, 흉내 내지도 말라’는 신드롬이 확산됐다”고 전했다.

우린 베낀다, 고로 존재한다?

‘원조 다툼’으로 소송까지 간 ‘바나나맛우유’(빙그레)와 ‘맛있는 우유 GT’(남양).

업체들 ‘미투 전쟁’ 종료선언 얼마나 갈까

남양유업과 빙그레, 빙그레와 해태유업, 매일유업과 서울우유의 원조 다툼이 대표적인 충돌 사례다. 2006년 남양유업은 ‘맛있는 우유 GT’를 출시한 뒤 빙그레가 이름이 유사한 ‘참 맛좋은 우유 NT’를 내놓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부정경쟁행위금지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2007년 8월 남양유업의 주장을 받아들여 빙그레 ‘참 맛좋은 우유 NT’에 대해 제품 판매 금지 및 용기 폐기 명령을 내렸다.

인기 가공유인 바나나우유는 원조 논쟁의 단골손님이다. 원조 ‘바나나맛 우유’를 생산한 빙그레는 2005년 10월 항아리 모양 용기의 ‘생생과즙 바나나우유’를 출시한 해태유업을 상대로 법원에 상표권 등 침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용기 모양, 투명한 외관 등이 자사 제품과 비슷해 소비자가 혼동할 우려가 있다는 것. 재판부는 빙그레의 손을 들어줬다.

매일유업과 서울우유 간에도 2007년 짝퉁 바나나우유 시비가 벌어졌다. 바나나우유 관련 제품으로는 처음으로 무색소 천연과즙을 사용해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를 출시한 매일유업이 서울우유의 ‘내가 좋아하는 하얀 바나나’를 상대로 상표권 위반이라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매일유업은 소송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서울우유 측에 제품 제조, 판매와 광고 행위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경고장을 보냈다.

결국 이 사건은 서울우유 측이 병뚜껑 색깔을 빨간색으로 바꾸고 브랜드 이름을 ‘내가 좋아하는 바나나우유’라고 변경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처럼 미투제품 논란이 불거지면서 유가공업체들의 인식도 많이 변했다. ‘투자 없이 베끼기 위주로 생산, 판매하는 미투제품은 회사 이미지에는 물론 성장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자성에 이른 것이다.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우리가 ‘야쿠르트’를 생산한 후 다양한 미투제품이 출시됐지만 시장 개척과 확대를 위해 대응을 자제해왔다. 지금껏 업체들은 서로 미투제품를 쏟아내며 경쟁적 공존상태를 유지했지만, 이제는 연구개발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는 미투제품 출시는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남양유업 관계자도 “미투제품으로 작은 이익을 보려다 오히려 막대한 재판 비용과 손해배상금, 기존 제품의 폐기와 브랜드 변경 등 커다란 손실을 입을 수 있다. 기업이 오래 투자한 브랜드나 디자인과 유사한 제품을 만드는 행위는 기업의 경쟁력과 투자 의욕, 신제품 개발 의지를 떨어뜨리는 일이기에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매일유업 박경배 홍보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매일유업은 아예 차 제품을 만들지 않고 있다. 어설픈 미투제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바나나우유만 해도 그렇다. 이 시장은 기존 1위 업체가 독주하고 2위는 없는, 꼴찌밖에 없는 시장이다. 그래서 2등이라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 결과 기존 제품과는 다른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결국 ‘진짜 과즙으로 바나나우유를 만들어보자’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바나나의 과즙은 하얀색 아닌가. 단순한 미투제품을 넘어서자는 생각이 기존 관념을 뒤집는 하얀색 바나나우유라는 새로운 제품 개발로 이어진 것이다.”

일단 유가공업체들은 ‘미투 전쟁’의 종료를 선언한 상태다. 그러나 이미 유가공 시장은 웰빙 바람을 타고 과열경쟁 구도에 돌입한 지 오래. 특정 유제품의 인기가 치솟으면 또다시 원조-미투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휴전은 그리 오래갈 것 같지 않다.



주간동아 2009.09.29 705호 (p36~38)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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