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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하얀전쟁’ 우유 열국지 04

‘초유함량’은 유죄, ‘초유성분’은 무죄?

공정위, 다른 잣대로 광고 심사 ‘특정 업체 봐주기’ 논란

‘초유함량’은 유죄, ‘초유성분’은 무죄?

‘초유함량’은 유죄, ‘초유성분’은 무죄?
“같은 사안에 대해 조사 잣대가 다르다.”(업체 관계자 A씨)
“업체별로 상당히 민감한 사안인데 마치 ‘거래’하는 듯한 양상이다.”(업체 관계자 B씨)
“공정위가 의심받을 행동을 하고 있다.”(국회의원 보좌관 C씨)

우리는 ‘괜한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말라’는 교훈을 전할 때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이란 말을 인용한다. 문선(文選) ‘군자행(君子行)’ 첫머리에 나오는 말로 ‘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군자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 미연에 방지하며, 의심받을 상황에 처하지 않는다.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에서 유래했다.

요즘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분유제조업체 허위·과장광고 조사를 놓고 국회와 공정위, 분유제조업체 안팎에서 ‘과전불납리’ 고사가 흘러나온다. 업체 관계자들은 ‘참을 만큼 참았다’는 분위기지만 ‘준사법기관’인 공정위에 ‘미운털’이 박힐까 쉬쉬하는 분위기다.

업체들, “말 못한다, 이해해달라”

“(주간동아) 취재가 시작되자 공정위의 담당 조사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가 흘렸느냐(제보했느냐)는 건데, 진행 중인 사안이라며 입조심을 당부했다. (그래서) 더 이상 말하기 어렵다. 관(官)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 처지를 이해해달라.”



과연 공정위와 분유제조업체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얘기는 2008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초 매일유업은 자사 분유 ‘앱솔루트 궁’을 내놓으며 ‘초유함량 국내 최대 앱솔루트 궁’이라는 광고 문구를 사용했다. 그리고 작은 글씨로 ‘2008년 2월 표기기준’이라고 써놓았다. 이후 4월15일 공정위 인터넷 사이트에 ‘초유함량 최대’라는 매일유업의 광고 문구가 부당하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6월 공정위 서울사무소는 ‘허위·과장 표시 광고행위로 보여진다’는 의견을 매일유업 측에 전달했다.

매일유업은 잡지광고 중 일부에서 표기기준을 표시하지 않은 점, 그리고 각 업체의 초유함량을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자사 제품보다 초유함량이 높은 다른 업체 제품이 나온 점을 뒤늦게 확인한 후 해당 광고 문구를 삭제하고, 제품 해설서와 리플릿 문구도 바꿨다. 당시 사건을 조사한 공정위 서울사무소 조사관의 설명이다.

“매일유업과 한 업체를 빼고는 ‘초유함량’과 관련된 광고를 하지 않았다. 매일유업 측이 먼저 ‘초유’에 관심을 갖고 마케팅을 했지만 정확한 확인 작업이 미흡했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경쟁사의 모든 제품을 비교, 분석했다.”

각사가 제출한 초유함량 수치를 살펴보면 일동후디스 제품의 초유함량(2.419%)이 가장 높고 파스퇴르(0.531%)와 매일유업(0.52%)이 비슷하게 조사됐다. 남양은 0.28%였다. 결국 타사 제품의 초유함량보다 적은 점, ‘초유함량 국내 최대’라는 광고 문구를 크게 쓰고 ‘2008년 2월 표기기준’이라는 표시를 작게 쓴 점, 초유함량과 성분을 구체적으로 명기하지 않은 점은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허위·과장 표시 광고행위’라는 결론이 나왔다.

9월 공정위 서울사무소는 심사관의 조치의견(시정명령)을 받아들일지를 묻는 ‘수락 여부’ 조회를 공문으로 보냈고, 매일유업은 소명자료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잘못을 인정하는 수락 공문을 보냈다. 공정위 공문에는 수락하지 않을 경우 ‘정식절차’에 회부된다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보통 심사관의 검토 의견을 해당 업체가 수락하면 위원회에서 수용 판결을 내리지만, 이 건은 공정위 본청 위원회에 정식 회부됐고 올해 2월 초 비슷한 결론이 났다.

‘초유함량’은 유죄, ‘초유성분’은 무죄?

공정거래위원회의 매일유업 광고심사 의결서 및 보도자료.

그 후 공정위는 “‘우리 제품의 초유함량이 가장 높다’고 광고… 사실과 달랐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보냈으며, 이것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매일유업의 이미지는 추락했다.

“보통은 업체가 시정명령을 수락하고 조치 결과를 알려주면 절차가 완료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정식절차에 회부됐고, 게다가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도 알렸습니다. 정확히 검토하지 않은 매일유업 직원 3명은 해임 및 감봉 조치됐고요.”

여기까지만 보면 매일유업 측으로선 억울한 점이 없지 않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따져 정식절차에 회부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알린 공정위의 행동은 고유업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얼마 있지 않아 발생한 ‘초유 광고 2라운드’에서 생겼다. 조사 기준이 1라운드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엔 남양유업이 올해 1월 분유 리뉴얼 제품(초유함량 0.6%)을 내놓으면서 ‘국내 최대 초유함량(2008년 12월 표기기준)’이라는 제품광고를 낸 것.

2월2일 공정위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남양유업의 ‘아이엠마더’가 ‘국내 최대 초유함량’이라며 광고를 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당시 남양유업의 제품광고에는 매일유업의 광고처럼 ‘국내 최대 초유함량’은 크게 ‘2008년 12월 표기기준’은 작게 적혀 있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남양유업 측은 이후 ‘초유함량’을 ‘초유성분’으로 바꿨다. 동시에 ‘뮤신’과 ‘시알산’ 등 일반 우유성분에 표기된 영양소를 초유성분으로 표기했고, 초유성분도 높아졌다. 남양유업 측은 “성분 표시를 명확히 하려는 조치”라고 말한다.

서울사무소 · 소비자정책국

올해 1월이면 공정위가 한창 매일유업의 부당 광고행위를 심사하던 무렵. 따라서 ‘남양유업도 매일유업과 비슷한 광고를 했는데 공정위는 왜 매일유업의 부당 광고행위만 심사 의결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매일유업 측은 제품광고에 대한 공정위의 최종 의결이 나기 이틀 전 남양유업의 광고 관련 자료를 해당 조사관에게 e메일로 보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정위 서울사무소 담당 조사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 이 건(남양유업 광고)까지 새롭게 조사할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매일유업 광고 조사가 많이 진행됐고 또 별개의 건이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매일유업의 제품광고를 조사할 당시 업체 관계자들은 자사 제품의 초유함량 자료를 공정위에 제출한 바 있다. 또한 일동의 분유 TV광고에선 국내 분유 중 가장 높은 초유함량이 자막처리 됐다.

따라서 단순 비교 시 ‘초유함량’은 일동후디스 제품이 가장 높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고, 유가공업계에선 남양유업도 매일유업과 비슷한 처분을 받으리라는 예상이 나왔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매일유업 사례와 달리 남양유업 제품광고는 공정위 소비자정책국이 조사를 맡았는데, 소비자정책국 조사관은 각 분유제조업체의 관계자를 불러 조사하면서 ‘일동후디스 제품은 초유함량은 높지만 영양성분표에서 초유성분 함량이 낮으니 비교 대상이 아니다’라며 다른 기준을 제시했다.

남양유업 측의 주장도 공정위의 의견과 비슷하다. “일동후디스 제품은 초유분말 함량이 높다고 하는데 성분은 오히려 낮다. 성분이 높아야지, 양이 많아야 좋다고 하는 것은 14K금이 많다고 순금보다 낫다는 주장과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공정위 관계자는 “(위원회에 안건 상정 당시) 매일유업이 적극 대처했다면 시정명령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공정위 의결 내용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도 이어졌다는 게 복수 관계자의 증언이다.

‘초유함량’은 유죄, ‘초유성분’은 무죄?

‘국내 최대 초유함량’이라고 표기한 매일유업(왼쪽)과 남양유업 광고.

공정위 “알아서 했으면 결과 달라졌을 것”

경쟁 업체들은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매일유업의 경우 경쟁사 제품과 초유함량 수치를 단순 비교해 제재했지만 남양유업은 그렇지 않은 점 △신고가 접수된 ‘초유함량’ 광고에 대해 조사하지 않고 남양 측 주장대로 ‘초유성분’으로 조사 기준을 바꾼 점 △초유성분은 초유에서 유래된 성분만을 말하는 것인데, 일반 분유의 원료인 우유에도 들어 있는 성분까지 종합해 알리면 소비자들은 마치 ‘초유함량’으로 혼동한다는 등의 의견을 냈다. 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분유는 여느 식품과 달리 안전성과 성분 표기에 민감하다. 균이 검출되거나 과장광고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 아기 엄마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매일유업 제품광고에 대한 공정위 의결서에는 초유함량을 단순 비교하면서 허위·과장광고 행위를 인정했는데 이번에는 잣대가 다르다’고 반박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초유함량 표기도 업체마다 달라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다.”

유가공업체 관계자의 말처럼 ‘초유함량’ 표기에 있어 논란은 또 있다. 고온 살균 공정에서의 초유성분 활성잔존율 문제가 바로 그것. 70℃ 이상의 고온에서 이뤄지는 분유 제조 및 살균 공정에서 초유의 기능성 성분(IgG, IgF 등) 활성잔존율은 30~50%대로 떨어진다고 한다. 그만큼 실제 분유 캔에 담기는 초유성분이 표기와 같은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

초유함량이 가장 높게 나온 일동후디스 측은 “초유함량으로 광고하다가 성분으로 바꾼 것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다. (분유 원료인) 일반 우유에 포함된 초유성분까지 종합해 최대 성분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 담당 조사관은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면 조사가 길어질 수 있다”는 다소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업체 간 민감한 사안이라 정확히 조사하려다 보니 시간이 걸린다. 초유함량과 초유성분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건데… 연구기관에 의뢰할 수도 있고… 특정업체를 봐주기 위해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정위 의결 당시 적극적 대처를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발언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에 두 차례 질의서를 보낸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은 “허위·과장광고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다. 특히 분유는 엄마와 아기에게 큰 상처를 준다.

각 분유제조업체를 형평에 맞게 조사하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를 따져보겠다”고 말했다. 사실 국내 분유에서 ‘초유성분’은 50mg이 넘지 않는 극미량이다. 업체들은 ‘최대 함량 최대 성분’으로 광고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엔 광고마케팅을 위한 숫자놀음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소비자의 혼란을 가중시킨 초유논쟁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 나올 때까지 광고를 제한하거나 ‘최대’라는 표현을 쓰지 않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어쨌든 공정위로선 업체와 소비자들의 괜한 오해를 사지 않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명확한 조사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업체마다 조사 기준이 다르다’는 불만과 ‘특정업체에 유리한 조사’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군자방미연 불처혐의간(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대목이 떠오르는 이유다.



주간동아 2009.09.29 705호 (p28~29)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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