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4

2009.09.22

I ♡ 사립 초등학교

학교마다 다양한 특성화 교육 선택의 폭 넓어 인기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9-09-16 15: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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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 사립 초등학교
    외국계 은행에 근무하는 김미정(36) 씨는 초등학교 4학년 딸을 얼마 전 서울의 한 사립초등학교(이하 사립초교)로 편입시키는 데 어렵사리 성공했다. 최근 결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편입신청을 했는데 운 좋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동안 아이를 공립초등학교(이하 공립초교)에 보내면서 마음고생 한 일을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공립초교에 보낼 때는 아침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렀어요. 출근 준비하랴, 아이 준비물 챙기랴….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준비물은 왜 그리 많은지. 한번은 학교에서 초파리를 가져오라는 거예요. 음식물을 며칠 방치해둬야 초파리가 꾈 텐데, 하루 만에 무슨 수로 그걸 구하나요. 또 급식이나 청소 때문에 학교에서 엄마들을 오라고 할 때마다 빠질 수밖에 없으니 그것도 여간 불편하고 눈치 보이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젠 그럴 일이 없어졌죠. 사립초교로 옮긴 뒤에는 아이가 필통 하나만 들고 학교에 가요. 학교에서 다 준비해주거든요. 학부모더러 오라 가라 하지도 않고요.”

    사립초교는 이제 더 이상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녀수가 줄고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다양한 선택 대상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김씨도 맞벌이 부부다. 남편은 같은 은행에서 근무한다. 아이도 무남독녀. 김씨가 아이를 사립초교에 보내기로 마음먹은 것은 초등학교 입학 1년 전쯤.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있던 김씨는 맞벌이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공립초교에 보낼 경우 아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게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일제히 치러진 사립초교 입학전형 때 H초교에 신청했다가 추첨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집 근처의 공립초교에 아이를 입학시켜야 했다.

    그 후 김씨가 방과 후 아이 관리를 위해 쏟아부은 사교육비는 영어학원 40만원, 보습학원 30만원, 수학학원 30만원, 미술학원 15만원, 피아노학원 15만원 등 월 130만원에 달했다. 여기에다 집안일과 아이를 돌봐줄 가사도우미 월급 50만원도 추가비용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아이의 영어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불안하던 김씨는 3학년 때 5000만원을 들여 미국으로 1년간 어학연수를 보냈다.



    아이가 사립초교에 편입한 지금 김씨가 부담하는 교육비는 학교 수업료 60만원(급식비, 통학비 포함)과 영어, 수학, 피아노 등 사교육비 50만원을 합해 월 110만원 정도. 오히려 공립초교에 보낼 때보다 줄었다. 각종 특기적성교육은 물론 미술, 바이올린, 골프, 농구, 성악, 영어 및 수학심화학습 등 방과후 교육을 받다 보니 아이가 오후 6시를 넘겨 집에 오기 일쑤이기 때문에 학원에 다닐 시간이 부족한 데다, 굳이 가사도우미를 둘 필요도 없어졌다. 지금 다니는 영어와 수학학원도 일주일에 두 번밖에 가지 못한다.

    물론 김씨의 경우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녀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 규모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와 비슷한 이유로 자녀를 사립초교에 보내거나, 공립초교에 보내고 있으면서도 사립초교 편입을 기다리는 학부모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당장 김씨 주변에서도 그런 경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김씨의 아이와 같은 영어유치원에 다니던 아이의 부모들도 대부분 사립초교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또 김씨와 같은 은행에 근무하는 직원 대부분이 공립초교보다 사립초교를 선호한다.

    일부 위화감과 상대적 박탈감 여전

    서울 강북지역 영어유치원 이모 원장은 “취학 전 아동이 30명 정도인데, 부모들이 대부분 사립초교를 희망한다. 사립초교 추첨에서 붙는 아이가 5~6명꼴이니, 진학성공률은 15%쯤 된다. 떨어진 아이의 부모는 공립초교 입학 후에도 끊임없이 사립초교 편입을 시도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편입의 경우 1명을 뽑는데 대기자가 수십명씩 몰려 입학 때보다 들어가기가 더 힘들다”고 덧붙였다.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 1.4대 1까지 떨어졌던 사립초교 평균 입학경쟁률이 2006년 2대 1을 넘어섰고, 그 후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최근 3년 연속 2.2대 1을 유지하는 이유도 이런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영훈초등학교(6.6:1→6.9:1→7.6:1), 이대부속초등학교(4.6:1→4.6:1→4.8:1), 리라초등학교(1.2:1→2.0:1→2.7:1) 등 이른바 명문 사립초교 중 일부는 최근 3년간 입학경쟁률이 더 높아졌다.

    한국초등교육학회 학술이사 정혜영 교수(이화여대 초등영어교육과)는 “경제적으로 뒷받침되는 학부모가 사립초교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최근에는 자신의 교육철학에 맞는 학교를 찾으려는 의식 있는 학부모가 늘면서 사립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학습능력 향상에 최우선 목표를 둔 학교, 스포츠를 중시하는 학교, 공부보다 인성이나 창의성을 강조하는 학교, 종교교육을 강조하는 학교 등 학교마다 다양한 특성화교육을 내세우면서 학부모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준 것이 인기를 끄는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요즘 취학 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아이에게 적합한 사립초교를 고르기 위해 정보를 취합하느라 바쁘다.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고, 전문가의 조언도 구한다. 한 인터넷 카페에서 ‘쑥쑥’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는 황모(40) 씨는 7세 아들과 4세 딸을 둔 맞벌이 엄마. 황씨는 정부산하 연구원에서 근무하고, 남편은 외국계 회사에 다닌다. 그는 카페 회원들에게서 각종 초등학교 정보를 취합한 뒤 초등교육 전문가에게 맞춤형 상담을 받았다.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죠. 저는 맞벌이인 데다 아이를 세심하게 챙겨주는 편이 아니에요. 아이의 인생 못지않게 제 인생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사립초교를 찾았어요. 공부보다 인성교육을 중시하고 학부모를 아예 학교에 못 오게 하는 곳도 있더라고요. 그런 학교 중 한두 곳을 선택해 교과과정을 꼼꼼히 따져보고 있어요.”

    황씨는 학교를 선택할 때 교장의 철학, 교사의 질, 교과과정에 대한 검증 등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명문 사립초교는 아직까지 재벌, 고위공직자,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 등 상류층 자녀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상류층 자녀는 추첨에서 떨어져도 기부금을 내고 들어가고, 입학한 뒤에는 그들만의 사교육 무한경쟁을 벌인다”는 것이 강남지역 유명 영어강사 김모 씨의 전언이다.

    일부 사립초교가 여전히 사회적 위화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있다는 것. 하지만 요즘 상당수 사립초교는 이런 부정적 측면보다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정 교수는 “다만 현재의 사립초교 제도는 사회정의와 분배 차원에서 볼 때 아쉬움이 있다. 기득권층에서 벗어나 있는 아이들도 바우처나 장학금제도 등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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