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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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다?

‘심리상식사전’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9-09-16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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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다?

    마테오 모테를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316쪽/ 1만3800원

    최근 제목에 ‘사전’이 들어간 인문사회과학 책이 줄지어 출간되고 있다. ‘서양문화지식사전’ ‘사고의 용어사전’ ‘매혹의 인문학 사전’ ‘통찰력 사전’ ‘광기에 관한 잡학 사전’ ‘죽음에 관한 잡학 사전’ ‘개념어사전’ ‘미신사전’ ‘미래시민개념사전’ ‘생태학 개념어사전’ ‘회의주의자 사전’ ‘즐거움의 가치사전’ 등등. 실용 분야까지 합하면 훨씬 늘어날 것이다.

    잘게 쪼개진 파트워크형 정보는 인터넷이 등장한 뒤 종이책에서 웹으로 장소를 이동할 것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어학사전의 종이책 생산은 전자사전에 밀려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사전형 책의 출간이 늘어나는 것일까. 아마도 인간의 검색습관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인간의 검색습관으로 요즘 사람들은 ‘원 테마형’ 책을 즐긴다. 문학개론의 차례 중 한 항목이던 것이 한 권의 책으로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의 주제를 다루되 수많은 사례를 제시하며 이야기로 풀어내는 책은 이미 거대한 흐름을 이루며 그 내용을 압축, 한 권의 사전으로 출간되고 있다. 앞에 열거한 책들은 그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이즘과 올로지’ ‘선샤인 지식노트’ ‘세상을 보는 17개의 시선’ ‘위대한 생각들’ ‘철학콘서트’ 등 책 제목에 ‘사전’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이와 비슷한 책도 적지 않다. ‘심리상식사전-자아도취에서 군중심리까지 멀쩡한 나를 속이는 37가지 심리 실험’이 이런 류의 전형이라 볼 수 있다.

    이 책은 거울 메커니즘, 거짓 동의 효과, 고집의 심리, 구분짓기, 군중심리, 기본율과 조건부 확률, 당사자/관찰자의 함정, 닻 내리기, 미루기 신경세포, 방심 게임, 뻔뻔스러움, 사후 합리화, 선택적 지각, 소망적 사고, 손실 혐오, 시각적 맹목성, 에스컬레이션 효과, 예언된 과거, 위조된 기억, 자기 불구화 현상, 자기 충족적 예언, 전형성, 질서 찾기, 집단 사고, 초점화, 편견, 현상유지 등 인지심리학의 핵심 키워드 37개를 다룬다.



    책에서 무미건조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예컨대 첫 항목 ‘거울 메커니즘’을 읽어보자. 이야기는 영화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선택의 활주로에 설 수밖에 없는 인간, 그 선택에 따른 인간의 무수한 되새김질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후회이론’(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행동을 피하려는 경향으로, 후회를 최소화하고자 효용이 적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나 ‘거울 신경세포 이론’(동물이 움직일 때나 자신과 같은 행동을 하는 다른 동물을 관찰할 때 활동하는 신경세포로, 마치 관찰자 자신이 스스로 행동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등 이 개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관련 이론을 쉽게 설명한다.

    결국 저자는 “우리가 발견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다면 그것은 낯선 어떤 사람의 운명에 관심 있어서가 아니라 마치 자기가 그 사람이 된 것처럼 그 감정 속에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또한 ‘카사블랑카’의 등장인물이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이라는 가정을 제시, 독자가 영화의 주인공처럼 실험 대상이 되어 자신의 과거 선택행동을 되새겨보면서 가슴 두근거림을 만끽할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37개 개념에 대한 설명을 모두 읽고 나면 멀쩡한 나를 속이는 심리의 함정이 주는 반전을 마음껏 즐길 수 있으며 어느 순간 인간 존재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간략한 설명은 원 테마 책을 최대한 압축해 한 권에 담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각각의 개념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거울 메커니즘의 경우 현상유지, 초점화, 당사자/관찰자의 함정 등 다른 개념과 연결된다는 것을 적시해놓았다. 독자는 이 개념에 대한 설명을 읽다가 바로 연관 개념어로 넘어갈 수도 있다. 마치 인터넷에서 개념어를 설명하다 특정 단어로 넘어가는 웹 트래픽처럼.

    이런 책은 아무나 쓸 수 없다. 그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되 그것을 이야기의 힘으로 이끌어갈 뿐 아니라 다른 개념과 연결하는 능력까지 갖춰야 가능하다. 인류의 지적 유산은 무궁무진하다. 그런 지식에 접근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제 한 단계 진전한 이런 유형의 책을 펴낼 수 있어야 한다.

    사전형 책들을 넘겨보면서 인간의 지혜가 대단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인류는 늘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한 단계 진전한 상품을 내놓았다. 그러니 이런 책의 등장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결국 사전형 책들은 디지털로 정보를 소비하는 독자의 습관에 맞게 새롭게 만들어낸 책이므로, 앞으로 이런 책의 출간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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