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4

2009.09.22

소통과 배려 한 뼘 키우는 수호천사 ‘마니또’ 놀이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입력2009-09-16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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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과 배려 한 뼘 키우는 수호천사 ‘마니또’ 놀이

    <B>1 </B> 마니또 게임을 위해 제비뽑기를 한다.

    아이들에게 또래와의 만남을 자주 이야기한다. 부모나 교사한테 배우는 것도 있겠지만 또래 속에서 어울리며 배우는 게 많기에 이를 강조한다. 내가 자라던 어린 시절에는 도시든 농촌이든 동네마다 또래가 많았고, 늘 또래들과 어울리며 자랐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또래가 많은 도시 아이들은 대부분 공부에 매여, 또 시골 아이들은 또래가 적어, 어울리고 싶어도 환경 자체가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이제는 이 또래 문화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나는 여기 아이들에게서 그 답의 일부를 얻는다. 그건 또래를 뛰어넘는 만남이자 어울림이다. 이를테면 서너 살 차이가 나는 아이들끼리도 곧잘 어울려 논다는 거다.

    아이 스스로 꾸려가는 모임

    상식으로는 잘 납득되지 않는다. 그게 가능하냐고? 또 큰 아이들은 무슨 재미가 있으며, 작은 아이들은 그런 놀이가 벅차지 않겠냐고? 물론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다. 놀이에 열중하다 보면 작은 아이들은 치이고, 큰 아이들은 자신들의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곳 아이들은 나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어울린다. 이를 찬찬히 아이들 눈으로 바라보면 주어진 환경을 능동적으로 풀어간다는 걸 알 수 있다.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배려’를 배운다. 그렇지 않으면 놀이 자체가 안 된다. 작은 아이들은 강한 성취동기를 갖는다.



    소통과 배려 한 뼘 키우는 수호천사 ‘마니또’ 놀이

    <B>2 </B> 롤링 페이퍼에 몰두하는 아이들. <B>3 </B> 왕놀이. 작은 아이도 왕이 될 수 있고, 큰 아이도 신하나 거지가 될 수 있는 놀이. <B>4 </B> 호기심을 갖고 익어가는 벼를 살펴보는 아이들. 삶의 교육은 나이를 뛰어넘는다. <B>5 </B> 아이들 스스로 당번을 정해서 요리를 한다.

    이번에는 이 경험을 발판으로 이웃 가정과 함께 조금 큰 모임을 하나 꾸렸다. 그동안 쌓은 인맥 덕에 전국 여러 곳에서 아이들이 모였다. 경주, 제주도, 그리고 음성에서 왔다. 이곳의 아이들까지 모이니 모두 아홉. 역시나 나이 차이가 많다. 열하나에서 열여섯까지.

    이 모임 역시 아이들이 전체를 주관했다. ‘모임의 자급자족’이다. 스스로 모임을 기획하고, 세부 일정을 짰으며, 조를 나눠 요리도 일정 내내 다 해냈다. 어른들이 한 일은 잠자리와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마련해주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어른에게서 배우고 싶은 세 가지만을 진행하는 정도였다. 세 가지는 빵 만들기와 벼농사, 그리고 불꽃을 집중시키는 로켓 스토브 만들기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3박4일 동안 서로 어울리면서 놀고 배운 것은 아주 다양했다. 토론도 했고, 놀이도 했으며, 영화도 함께 봤다. 이 과정 하나하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 며칠 아이들이 함께한 놀이만 대충 꼽아보면 온갖 마당놀이를 비롯해 마니또 게임, 왕놀이, 롤링페이퍼(Rolling Paper)가 있다. 각 놀이를 결정할 때마다 전체에게 맞는지, 제대로 규칙을 이해했는지, 어떻게 해야 더 재미있는지 아이들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했다.

    소통과 배려 한 뼘 키우는 수호천사 ‘마니또’ 놀이

    <B>6 </B> 올망졸망 모여 있는 아이들 신발. 또대를 뛰어넘는 만남은 또 다른 교육이 된다. <B>7 </B> 아이들이 차린 떡국과 접시밥.

    교과서 틀 벗어나면 배움 풍부

    이 가운데 마니또 게임을 좀 자세히 보자. 첫날 저녁, 서로 친해지기 위한 자기소개 겸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좀더 깊이 알기 위한 놀이로 한 아이가 마니또 게임을 제안했다. 이는 ‘비밀친구 또는 수호천사 놀이’로 요령은 간단하다. 그러니까 모인 사람 전부의 이름을 쪽지에 쓴 다음 한 사람씩 제비뽑기를 한다. 단, 자신을 뽑았을 때는 제비뽑기를 다시 한다.

    이렇게 해서 자기가 뽑은 사람을 모임이 끝날 때까지 ‘몰래’ 도와주는 거다. 이 놀이의 재미는 아주 역동적이다. 자기가 관심 없거나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도와줘야 한다. 어쩌면 그 사람을 뽑은 것이 어떤 무의식의 끌림이 되기도 하니까. 또한 자기 비밀친구만 잘 해줄 필요는 없다. 여러 명에게 잘 해줄수록 게임이 끝날 때까지 누구의 마니또인지 눈치 채지 못하게 되는 거다.

    이렇게 하다 보면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그물망이 형성되고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비밀친구에게 잘 해주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양하다는 것도 이 게임의 매력이다. 일단 관심을 필요로 한다. 다음엔 그 사람이 뭘 필요로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칭찬 한마디일 수 있고, 작은 선물일 수 있다. 아니면 일이나 공부, 놀이를 도와줄 수도 있다. 이렇게 관심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만남이 이뤄지는 게 마니또 게임이다.

    이 놀이를 작은 아이들이 소화할 수 있을까. 어린 친구들에게 물으니 대부분 이해를 했고, 조금 어려워하는 친구에게는 한 번 더 설명해주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해서 제비뽑기를 했다. 자기가 원한 사람이 아니어서 얼굴 표정이 바뀌는 아이도 있었지만 그런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일정이 거의 끝나고 마니또를 발표할 시간. 두근두근 궁금했다. 누가 내 마니또인지. 또 누가 누구의 마니또인지. 막상 뚜껑을 여니, 의외의 결과가 많이 나왔다. 남에게 잘 해준다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남이 내게 잘 해준 것에 대해 고맙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서툴다. 경쟁에 익숙하다 보면 소통과 배려에 대한 교육은 부족할밖에. 그래서인지 이 게임을 회사에서도 활용하는 경우가 있단다. 관심과 배려는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윤활유가 되니까.

    이렇게 놀이 하나에도 많은 지혜가 숨겨져 있다. 어디 놀이만 그런가. 배움도 교과서가 중심이라는 틀만 벗어나면 아주 풍부하다. 삶이 곧 교육이 되는 현장이라면 아이들은 부모에게, 부모는 아이들에게 배우는 것이 얼마나 많나. 그러니 아이들이 원해서 서너 살 차이끼리 어울리는 만남은 또 다른 교육이 된다. 나이를 떠나 배려와 열정이 잘 어울리는 가정, 사회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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