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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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사적 공간에서 자신을 코딩, 디코딩

일본 현대미술, 순수 감수성 담은 다양한 ‘개인 이야기’

  • 서진석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jinloop@hanmail.net

    입력2009-09-11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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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쇄된 사적 공간에서 자신을 코딩, 디코딩

    <B>1</B> 가네우지 뎃페이 ‘White Discharge’, plastic figure, gesso, wood, 2009. <B>2</B> 스즈키 히라쿠 ‘GENGA 001-1000(10X)’, 2min 49sec, 2009. <B>3</B> 게이스케 곤도 ‘NEW GREEN’, color on paper, 65.2x200cm, 2007. <B>4</B> 아사카이 요코 ‘Home Alone’, Tokyo, c-type print, 453x560cm, 2007.

    일본은 ‘와(和)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본 최초의 고대국가인 야마토의 쇼토쿠 태자가 제정한 헌법 1조가 바로 ‘와를 존중하라’였다. 와는 전체를 위해 개개인이 자기의 소임을 다하는 조화를 뜻한다. 오타쿠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자신만의 관심 영역에 몰입함으로써 일탈을 꿈꾸는 마니아를 지칭하는 것으로 일본 특유의 문화현상이다.

    전후 일본에서 조직 우선의 집단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개인의 특정 관심사 속으로 침착한 것이 바로 오타쿠다. 즉 고도산업사회에서 나타난 일본식 집단주의의 또 다른 얼굴인 셈. 오타쿠들은 지극히 미시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에 집요할 정도로 파고든다는 특징이 있다.

    대상에 솔직하게 반응, 주류사회와 구별짓기

    일본을 비롯한 현대사회에서는 1980년대 이후 고도산업화,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공적 간섭이 축소됐고, 개인의 주체적 영역이 확대됐다. 2000년대 이후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서 표현의 자유가 더욱 활발해졌고, 계층 간 세대 간 문회위계가 해체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개인을 기반으로 생산된 문화들은 ‘다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위계적 차별 없이 대중에게 소비됐다.

    1980년대 이후 일본 현대미술계는 이러한 모든 특성을 담고 있다. 우선 고도산업사회의 징후를 반영한다. 고도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애니메이션, 게임, 비디오 등 이른바 ‘서브컬처’라 불리는 개인의 유희 대상은 넘쳐날 정도로 풍부해졌다. 주체적이고 심지어 자폐적인 경향까지 유발하는 사회 환경은 일본 작가들에게서 독특한 이미지를 끌어냈다. 그들의 독자성과 개성은 현실의 삶에 정제되지 않은 이상적이고 감성적인 순수성을 보존하고, 인위적인 사회화를 거부하며, 주관적 자아 안에서 순수성을 그대로 표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다.



    많은 일본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 대단히 폐쇄된 사적 영역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코딩(coding)’, ‘디코딩(decoding)’하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벼워 보이고 때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이런 작업은 현대사회 구조와 환경, 흐름에 비춰볼 때 그 의미가 뚜렷해진다. 대상에 솔직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주류 사회에 대해 무의식적 구별짓기 등을 하는 유희는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젊은 작가들에게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사회와의 관계성은 작가의 독자적인 해석을 통해 주관적으로 만들어진다. 심지어 매우 가벼운 유희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들은 주류 사회의 거대 담론이나 진지한 주제를 다루기보다 단편적 이야기나 분화된 담론, 개인적인 소소한 이야기 등을 늘어놓으며 자아의 자유로움과 인식의 즐거움을 누린다.‘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정의는 사회조직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오늘날 폐쇄된 자아 영역에서 사회와 최소한의 관계를 유지하며 작업하는 일본의 젊은 작가들은 물론,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는 작가들조차 ‘사회’라는 대상을 직접 대응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본인의 자아를 이야기하며 그 안에 담긴 사회를 끄집어내 보여주는 간접적인 방식을 이용한다. 비판과 정제를 통해 사회의 문제를 도출하고 해결 방향을 제시하며 변화를 유도하는 기존의 사회성 짙은 작업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그냥 사회와 ‘응답적인 메시지’ 교환

    그들은 주관적 기억과 일상들을 연결하며, 자신 안에 생성 혹은 반영된 사회를 독창적인 감성으로 나타낸다. 일본의 젊은 작가들은 객관적, 보편적이라는 상식적인 준거의 틀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사적 영역에 반영된 사회구조를 관찰하고 도출함으로써 좀더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한 그들만의 사회비판적 시각을 사용한다. 즉 사회를 자신의 잣대로 재단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사회가 담긴 거울로 보고 이를 더듬어가는 것이다.

    이런 속성 때문에 일본의 작가들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복잡한 과정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사실 작업의 결과물은 복잡하고 압축된 시간의 단면일 뿐, 결과물 뒤에 감춰진 과정적 행위들이 그들에겐 더욱 중요하다. 작업과정에 대한 그들의 집착은 종종 마지막 결과물인 작품에 사적인 내러티브와 사회적 도큐멘트의 과정을 동시에 심는 행위로 나타난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만나며 자신과의 관계성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아사이 요코, 자기만의 기호문자를 만들어 대중과 소통을 시도하는 스즈키 히라쿠 같은 작가들이 작업에서 보여주려 하는 것은 사회와 자신 간의 일시적이고 주관적인 반응이다. 체계 속에 담긴 진정성은 그들에게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작업은 우리에게 다른 각도로 사회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서구의 팝아트에는 매스미디어와 광고 등 대중문화적 시각 이미지를 미술의 영역에 수용,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구조를 불식하고자 한 예술적 의도가 담겨 있다. 1980년대 일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무라카미 다카시, 나라 요시모토 등 ‘재팬 애니팝’ 작가들은 서구 팝아트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전략에 따라 작품활동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일본 현대미술 작가들은 그런 사회적 전략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단지 산업사회의 서브컬처가 지닌 시각적 가벼움과 키덜트(kid+adult·성인이 된 뒤에도 유년의 취미나 성향을 가진)적 문화의 부박함이 일치할 뿐, 자신만의 순수한 감수성을 예술 언어를 통해 원하는 주제로 표출한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작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역사나 장소에 의해 확보하는 태도에서 벗어났다. 그냥 사회와 ‘응답적인 메시지’를 교환함으로써 사적인 경험의 기억을 표현한다.

    버블경제 세대인 30대 참여작가들은 주체적이고 작위적인 자아의 영역 안에서 사적인 유희를 즐기며, 심지어 사회와의 관계성조차 내면의 주관적 시선 안에서 바라본다. 사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개인적 취향과 의식이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의 결과물에 비칠 때, 이는 일본 현대미술을 읽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즉 일본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일본의 특수한 상황이라는 ‘지붕’ 아래, 사적인 경험이라는 ‘방’에서 이뤄지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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