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3

2009.09.15

금융위기 예측 넘어 희망을 말하다

삼성경제연구소 곽수종 박사의 ‘경제독법’

  • 입력2009-09-11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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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위기 예측 넘어 희망을 말하다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미국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스타덤에 올랐다. 금융위기를 예측한 선지자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그 못지않게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경고한 이가 몇 명 있고, 그중 두 사람은 필자와도 교유가 있다. 즉 필자가 당시 그들의 ‘불길한 예언’을 증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데 우리나라에서 이분들은 루비니 교수처럼 ‘구루(guru)’로 추앙받기는커녕 최소한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는 우리 정서에 깔려 있는 금기와도 무관치 않다. 길조(吉兆)에 대한 예측은 결과가 어떻든 환영하고, 흉조(凶兆)에 대한 언급은 외면하려는 행태가 그것이다.그 결과일까.

    우리는 과거 역사 속에서 환난을 앞두고 터무니없는 낙관만이 지배하던 장면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아마 임진왜란이 대표적인 사례일 터.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금융위기를 예측한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필자는 그중에 한 사람이 한 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거대한 거품이다. 내재가치를 벗어난 가격에 형성된 허구적 가치가 자본화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실제라고 믿는다.”

    그는 당시 자신이 몸담은 기업의 자산운용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그가 모든 운용자산을 국고채 등 안전자산으로 돌려버리자 수익의 기회를 잃을 것을 두려워한 해당 기업 가신(家臣)들의 압박이 엄청났다. 기업 내부에서 갈등이 빚어진 것은 물론. 몇 달 후 그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됐지만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필자가 아는 또 다른 ‘예지자’는 삼성경제연구소 곽수종 박사다. 그는 2006년부터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감지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 출신이지만 파생금융상품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금융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포착했다. 그것에는 계수화할 수 없는 모순이 존재했고(그의 표현대로라면 ‘선형화한 자료로 분석이 불가능한 비선형적 모순들이 누적된’), 냉정한 시선으로 시장을 바라보던 그는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자본시장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곽 박사는 그때부터 이런 우려를 담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글들은 금융위기 이전에 출간되지 못했다. 결국 적기(適期)를 놓친 원고를 서랍에 넣어버린 그는 이후 금융시장 회복에 전력하는 미국 정부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이번 금융위기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에는 그가 미국에 있을 당시 주(캔자스)정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공무원으로 일한 경험과 미국 조야의 경제학자, 행정가, 은행가들과의 교류가 큰 힘이 된 듯하다. 그의 진단은 정말 냉정하다. 그는 최근 출판된 ‘경제독법’(원앤원북스 펴냄)에서 과거 위기의 핵심 이유들을 먼저 짚어나간다. 우리는 과거의 불황이나 공황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 때론 장황하고 난해해서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의 얘기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바로 정곡을 찌른다. 과거 위기의 원인을 짚고 이번 위기와 비교한다. 그리고 과거의 해법과 이번에 접근해야 할 해법의 유사점과 차이를 집어낸다. 그런 다음 ‘우리는 경기회복에 대해 너무 섣부른 기대를 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결과만 놓고 보면 둘 중 하나다. 다수의, 아니 대부분의 전문가가 추세적 회복을 예상했다. 하지만 일부 ‘닥터 둠’(Dr. Doom·1987년 블랙먼데이를 예측한 마크 파버의 별명)들은 여전히 이중침체와 장기침체를 경고한다. 결론만 보면 곽 박사도 또 한 명의 ‘닥터 둠’이다. 하지만 다른 ‘둠’들과 다른 점이 있다. 그는 늘 대안을 이야기한다는 것. 그는 의외로 ‘희망’을 즐겨 말한다.

    절대적 어둠 다음에는 결국 빛이 올 것이라는 한없는 기다림을 전제로 한 희망이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고 헤쳐나가는 적극적인 의지와 방향을 제시한다. 이는 필자가 평소에도 느끼던 그만의 강점이다. 특히 책의 후반에서 펼쳐지는,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국제경제 질서의 재편과 미래 세계에 대한 견해, 그리고 ‘위기 너머로 떠오를 기회’에 대한 정교한 이야기들은 하나의 서사시처럼 독자들을 흥분시킬 만하다.

    금융위기 예측 넘어 희망을 말하다

    <B>박경철</B><BR>의사

    필자는 매주 목요일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그를 초대해 미국과 세계 경제 이야기를 들어왔다. 1년이 다 돼가지만 그의 이야기는 전혀 식상하지 않다. 늘 흥미롭고 새롭다. 특히 사회와 시스템에 대해 그가 가진 건전한 가치관과 경제적 정의에 대한 독특한 시각들을 듣고 있노라면, 그와 같은 이들이 우리 경제정책을 설계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물론 본인의 의사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http://blog.naver.com/donod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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