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3

..

1유로에 집 줄게 복원해다오!

伊 시칠리아 살레미市 파격 이벤트 … 빌 게이츠 등 유명인사들 높은 관심

  • 살레미=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입력2009-09-11 11:1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1유로에 집 줄게 복원해다오!

    살레미시 창조국이 사무실로 쓰는 노르만노성과 살레미시 전경.

    “집 한 채를 1유로에 팝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도시 살레미가 최근 파격 ‘이벤트’를 시작했다. 40년 전 발생한 강진으로 폐허가 된 도심 주택 재건 차원에서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주택 1000여 채를 단돈 1유로(약 1800원)씩에 팔기로 한 것.

    단, 구매자에게는 2년 내에 자비를 들여 시칠리아 전통 건축양식에 따라 주택을 완전 복구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다. 살레미시가 특별 조직한 위원회가 구매자 선정에서부터 주택 복구까지 전 과정을 모니터링한다.

    이런 희한한 프로젝트에 세계 각국의 명사들이 환호하고 나섰다. 이탈리아 프로축구단 인터밀란의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를 필두로 영국 출신 가수 피터 가브리엘, 이탈리아 유명가수 루치오 달라, 이탈리아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 디에고 달라 팔마, 미국 ‘보그(Vogue)’ 편집장 안나 윈투어 등이 구매 의사를 밝혔다. 최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도 관심을 표명, 8월 중 측근을 살레미로 보낼 예정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1유로에 집 줄게 복원해다오!

    살레미시에 파격을 가져온 두 주역, 빅토리오 즈가르비 시장(왼쪽)과 올리비에로 토스카니 창조국장.

    베네통 광고 사진작가가 ‘창조국’ 수장



    이러한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은 장본인은 살레미의 시장 빅토리오 즈가르비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튀는’ 예술평론가로 평가받는 유명인사. TV 카메라 앞에서 직선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아 1990년대에 이미 스타가 됐다. 문화부 차관, 밀라노시 문화국장을 역임한 그는 지난해 돌연 살레미라는,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의 시장에 출마해 화제를 모았다.

    당선 후에는 세계적 의류 브랜드 ‘베네통’의 광고 사진작가로 유명한 올리비에로 토스카니를 이 도시의 ‘창조(creativita?`)국장’으로 영입해 또 한 번 정계와 문화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살레미는 고풍스러운 시칠리아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름다운 도시다. 그러나 그동안 재정 등의 여력이 없어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심 재건 사업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즈가르비 시장이 1유로에 집을 팔기로 한 건 살레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능력 있는 구매자들을 끌어들여 도심 재건을 이룰 뿐 아니라, 살레미를 문화관광 명소로까지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시청에서 만난 즈가르비 시장은 “이미 세계 각지에서 1만여 명이 구매 의사를 밝혔다”며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다. ‘1유로 집’ 정책은 벌써부터 세계적 관심사로 등극했다.

    영국의 BBC가 이 정책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독일 등의 언론매체에서도 취재를 해갔다. 이탈리아 북부에서도 이 정책을 벤치마킹해 지역 살리기에 활용하고 있다. 즈가르비 시장은 “시칠리아 문화 보존에 한몫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구매 의욕을 충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유로에 집 줄게 복원해다오!

    한 채당 1유로에 팔릴 예정인, 폐허가 된 구도심의 주택가.

    즈가르비 시장이 도심 재건을 통해 문화관광도시 육성을 시도한다면, 그의 오른팔 토스카니 국장은 다양한 문화이벤트 기획으로 이 목표에 부응하고 있다 하겠다. 토스카니 국장의 이런 노력은 묘하게도 한국과 인연이 닿아 있는데, 최근 운영난으로 문을 닫게 된 미국 뉴욕의 명물 ‘킴스 비디오’가 자신의 컬렉션을 살레미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이 한인 비디오 대여점의 김용만 사장은 △소장품 5만5000여 점을 보존할 것 △신작을 계속 보충할 것 △회원들에게 대여 서비스를 할 것 등 세 가지 조건을 지키는 것을 전제로 살레미에 소장 작품을 모두 기증했다.

    시청에서 만난 토스카니 국장은 “킴스 비디오 컬렉션을 기반으로 살레미 국제인디영화제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막 번역과 동시에 비디오를 DVD로 전환하고, 17세기에 건립된 예수회 건물에 야외 영화 상영시설을 설치하겠다는 것. 킴스 컬렉션을 통한 영화사 연구사업도 계획 중이다.

    필자와 만났을 때 토스카니 국장은 곧 개최될 살레미 문학페스티벌 로고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살레미 연극제는 이미 시작됐고, 내년에는 이탈리아 최초로 마피아박물관이 문을 연다”며 창조국장으로서 벌인 사업이 한둘이 아님을 암시했다. 또한 이번 여름이 끝나기 전 도심에서 ‘광장축제’가 열릴 예정인데, 이를 위해 이탈리아 전국에서 선발된 20명의 인턴직원-그래픽, 사진, 패션, 미디어 등을 전공한 26세 미만의 젊은이들이다-이 6개월간 무보수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열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유명인사 토스카니 국장과 함께 일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었다. 토스카니 국장은 틈만 나면 “뉴욕이 과거라면 살레미는 미래다”라고 강조한다. 이 말은 살레미를 상징하는 슬로건이 됐다.

    “뉴욕이 과거라면 살레미는 미래”

    즈가르비가 몰고 온 이런 변화를 살레미 시민은 마냥 반가워하고 있을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최근 시 당국이 도심 내 일반차량 주차를 금지하고 전기 셔틀버스 도입을 추진하자 상인들은 “손님이 줄었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카페테리아 주인 엠마누엘레는 “국내외 언론에 살레미라는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낀다”고 반겼다.

    즈가르비 시장을 만난 다음 날 아침, 어제 그의 집 앞에서 동물의 사체가 발견됐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이탈리아 마피아들은 ‘살인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때 살해 대상의 집 앞에 사체를 놓아두곤 한다. 살해 협박을 당한 직후라고는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열정적으로, 자신감 넘치게 살레미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던 즈가르비 시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정도 배짱을 지닌 이가 있으니 살레미의 내일은 밝지 않을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