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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記·충·천

당뇨와 一病息災

당뇨와 一病息災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버지 안부를 묻자 목이 잠기더니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20대 초반 목련꽃처럼 짧지만 애틋하게 만났던 그녀가 미국 유학길에 오를 때 기자는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공항에서 배웅했습니다. 웃는 얼굴과 중절모가 멋있는, 풍채 좋고 후덕한 인상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통화를 하고 며칠 뒤,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10년 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여전히 생머리일까, 장난기 가득한 눈은 어떠할까’ 하며 기분 좋게 카페 계단을 올랐지만 두근두근한 상상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수필 ‘인연(因緣)’에서 중년의 피천득이 아사코와 세 번째 만났을 때의 그 느낌처럼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그녀의 얼굴’을 봤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의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의 세월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십수 년 전부터 당뇨병으로 고생했고, 당뇨합병증으로 족부궤양이 와 다리 절단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대목에선 자그마한 어깨가 들썩였습니다. 이슬 머금은 초롱꽃처럼 생기발랄하던 ‘막내딸’ 그녀도 아버지의 당뇨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고, 기자는 지난 2주간 당뇨병 취재에 매달렸습니다. 옛 ‘여친’을 힘들게 한 당뇨는 어느새 해마다 50만명씩 새로 환자가 생기는 ‘국민병’이 돼 있었습니다. 2030년에는 세계 당뇨병 환자 인구 1위 나라가 되는 것은 ‘떼어 놓은 당상’이더군요.

먹고살 만해진 1980년대 들어 우리나라 비만인구가 증가한 만큼 당뇨병 환자도 늘었습니다. 유전적으로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베타세포 기능이 떨어져 서양인보다 당뇨에 더욱 취약하다는 동양인의 약점도 환자수 증가에 일조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합병증이 나타나자 병원을 찾는 환자는 폭증했고, 그동안 ‘사실상 방치’를 하던 국가나 의학계가 이때부터 적극적인 예방과 홍보에 나서게 됩니다.



당뇨병 연구와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예방과 관리입니다. 당뇨는 ‘죽음으로 가는 병’이 아니라고 합니다. 평생 따라다니는 ‘고약한 친구’라고 여기고 식이요법 등으로 ‘타이트하게 컨트롤’하면 천수(天壽)를 누릴 수 있는 만큼 관리가 중요하다는 거죠. 문제는 ‘타이트하게’입니다. 합병증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잊어버렸다가는 더욱 ‘업그레이드된’ 고약한 친구로 반드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당뇨와 一病息災
‘일병식재(一病息災)’라고, 병을 가진 사람이 그 병을 다스리려고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 더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경우는 많습니다. 한국인은 베타세포 기능이 약하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지금부터라도 ‘배둘레 햄’을 빼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너무 절제하지 않고 살다가 ‘일병초재(一病招災)’의 우를 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기자도 오늘 점심은 소시지와 자장밥이었네요. 반성합니다.



주간동아 2009.09.08 702호 (p14~14)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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