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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대중의 가슴에 묻히다 08

걷고 또 걸어라! 멈춰서면 곧 죽음

김 전 대통령 병력(病歷)에서 배우는 건강 교훈

걷고 또 걸어라! 멈춰서면 곧 죽음

걷고 또 걸어라! 멈춰서면 곧 죽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직 당시 공식 행사에선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2년 3월 대퇴부에 염증이 생겨 잠깐 지팡이와 휠체어 신세를 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학적 죽음’은 그의 정치 역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를 괴롭힌 여러 병마는 이미 20~30년 전의 민주화 투쟁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반민주 세력과 싸우듯 병마와 대적했다.

체계적이고 원칙적으로 싸웠다. 그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정남식 심장내과 교수는 “평소 의사의 말을 잘 따르셨다. 필요 없는 약, 증명되지 않은 약은 절대 드시지 않았고 투약이나 식사시간도 어기는 법이 없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의 직접 사인은 ‘다발성 장기부전’. 말 그대로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중추가 되는 폐, 간, 신장 중 두 곳 이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不全) 상태다. 암 환자나 만성질환자 대부분의 직접 사인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질병은 투병 말기가 되면 신체 모든 장기에 염증을 만들고 패혈증을 생기게 해 결국 심장을 멎게 한다. 다발성 장기부전은 약물요법을 쓰는데 약이 듣지 않으면 바로 사망에 이르는 게 상례. 이때는 심폐소생술도 무의미하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직전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 의학적으로 소용이 없는 처치술임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다발성 장기부전 불러온 폐색전증



그렇다면 김 전 대통령에게 다발성 장기부전을 불러온 기저 질환은 무엇일까. 의료계는 이견 없이 폐색전증을 지목한다. 2005년에도 그의 폐색전증과 관련해 한 차례 소동이 있었다. 그해 8월 김 전 대통령은 기력이 떨어지고 미열이 있어 입원했다가 세균성 폐렴 진단을 받고 12일간의 치료 후 퇴원했다. 그러나 퇴원 한 달여 만에 다시 갑작스런 호흡곤란 증세로 재입원, 폐부종과 고혈압 진단을 받고 치료를 했다.

돌이켜보면 이 모두가 폐색전증과 무관치 않다. 관련 질환, 관련 증상들이다. 색전증은 폐로 들어가는 동맥을 ‘피떡(혈전)’이 한 군데 이상 막아 혈중의 산소포화도(90% 미만이면 의식을 잃는다)를 떨어뜨리는 증상을 의미한다. 폐로 들어가는 동맥 속의 혈액은 폐에 산소를 전해주고 대신 이산화탄소를 받아 폐정맥으로 빠져나온다.

그런데 혈전이 폐동맥을 막거나 흐름을 방해하면 폐로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환자는 고통에 빠진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이나 각혈, 흉통, 어지럼, 쇼크로 인한 실신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이때 일반적으로는 혈전 때문에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계속 떨어지는데 폐동맥을 막는 혈전의 크기가 작으면 치료가 쉽다. 하지만 재발이 잦고 시간이 지나면 폐동맥 고혈압을 일으킨다.

의문의 교통사고 … 불편한 다리가 근본적 사인

걷고 또 걸어라! 멈춰서면 곧 죽음

1971년 일어난 의문의 교통사고. 이후 그는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그의 폐색전증 증상은 지난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되살아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과 그 과정에 빚어진 이러저러한 마찰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당시 측근들은 “김 전 대통령의 기력이 다소 떨어졌으나 곧 회복됐다”고 밝혔지만 사실은 달랐다.

그로부터 40일 후인 7월13일 김 전 대통령은 폐렴 증상을 보여 입원했다. 휠체어를 타고 온 후 걸어서 병실로 들어갔지만 입원 다음 날 새벽 곧바로 호흡부전 증세를 보이며 생과 사의 고비를 오갔다. 폐색전증이 다시 발생한 것이다. 이번엔 그 증세가 심각했다. 산소포화도가 86%까지 떨어졌고, 의료진은 이때부터 인공호흡기 치료를 시작했다.

그 후 병세는 호전과 악화를 거듭하다가 7월29일에 급기야 기관절개술을 받았다. 인공호흡기를 달 때마다 기관지에 구멍을 뚫고 삽관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재발한 폐색전증의 정도가 그만큼 심각했다는 얘기다. 측근들은 “김 전 대통령이 계속 잠을 잔다”고 했지만 실상은 폐색전증으로 의식이 혼미해진 것이다. 월 들어서는 신장 혈액투석 과정에서 부정맥이 오고 혈압이 떨어져 혈압상승제까지 맞아야 했고, 9일 새벽에는 혈압과 산소포화도도 크게 떨어져 한때 ‘서거설’이 나돌기도 했다.

사실 이때부터 다발성 장기부전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후로는 연명 치료에 들어간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목숨을 이어간 게 아니라 약물이 그의 생명을 지탱해준 것.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당시 “약을 들이붓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상황을 전했다. 물론 그 약물 중 대부분은 혈전을 녹이는 혈전용해제였다. 에게 폐색전증이 온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그중 가장 큰 의학적 요인은 그의 불편한 다리(고관절 장애)와 신부전, 심혈관계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폐동맥에 혈전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의외로 다리에서 비롯된다. 심장에서 나간 혈액은 신체 말단인 발까지 내려가 산소와 당, 영양분을 전해주고 정맥을 타고 다시 올라오는데, 정맥혈은 중력을 거스르면서 위로 올라와야 하는 부담을 가진다. 이때 정맥에 추동력을 가해주는 것이 걸음이다.

호스 끝을 살짝 누르면 내뿜어지는 물의 속력이 빨라지듯, 걸으면 정맥을 둘러싼 근육들이 정맥혈을 짜주어 가뿐하게 심장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계속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등 몸을 잘 움직이지 않으면 이런 흐름이 느려지면서 혈액이 뭉친다. 그 혈전은 결국 폐동맥을 막고 폐색전증을 일으킨다.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탈 때 발생하는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도 폐색전증의 일종이다.

김 전 대통령은 제8대 국회의원 선거 지방유세를 다니던 1971년 5월 전남 무안에서 일어난 의문의 교통사고로 평생 고관절 장애를 안고 살았다. 그는 혼자서 양말도 신을 수 없었고 지팡이에 의지해야 했으며 조금만 걸어도 대퇴부에 통증을 호소했다. 14t 트럭이 중앙선을 침범해 일어난 당시 사고는 후일 고의성이 명백한 테러로 결론났지만 배후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걷고 또 걸어라! 멈춰서면 곧 죽음
고관절 장애로 전혀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음식 욕심이 남달랐던 그는 민주화투쟁 당시에도 계속 살이 쪘다.

고관절 장애와 비만은 폐색전증을 일으키는 주범. ‘하버드메디컬스쿨’(동아일보사 펴냄) 등 각종 의학 텍스트북은 폐색전증의 발병 가능성이 큰 사람으로 수술, 질병, 비만, 다리나 골반 골절로 활동이 원활하지 않은 사람 또는 뇌졸중, 심장병, 혹은 심부정맥혈전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사람을 지목했다. 김 전 대통령은 양쪽 모두에 해당한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직후인 2003년 5월 심장동맥 협착으로 혈관확장 수술을 받았다. 신장 기능이 떨어져 신장 혈액투석을 받기 시작한 시점도 이때.

김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부인하지만, 적어도 그때 또는 그전부터 그에게 당뇨병과 고혈압 등 성인병이 있었고, 대통령직을 물러난 후 긴장이 풀리고 건강관리가 느슨해지면서 증세가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심장동맥 협착과 신부전은 고혈압과 당뇨병 등의 대표적 합병증이다.

그의 성인병은 1997년 말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건강 이상설’을 유포시킨 도화선이 됐다. “DJ가 대통령이 되면 바로 국상(國喪)이 난다. 당뇨병, 고혈압 등 온갖 성인병을 앓고 있다”는 괴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 이때 이런 소문을 일거에 잠재운 사람이 후일 김 전 대통령의 주치의가 된 허갑범 당시 신촌세브란스병원 내과 교수(현 허내과 원장·연세대 의대 명예교수)였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건강에 대한 평가 소견서를 내고 “고관절 변형, 왼쪽 귀 이명 현상 등이 있을 뿐 생명과 직결된 성인병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교수는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기자와 만나 “대통령직에서 벗어난 뒤 긴장이 풀리고 비만을 관리하지 못하면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것 같다. 근본적인 원인을 따지자면 그의 죽음은 고관절 장애로 인한 다리운동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상자기사 참조).

김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성인병 예방을 위해 주치의가 짠 식단에 따라 음식을 먹었고, 청와대 내 수영장에서 물속 걷기 같은 운동을 꾸준히 했다. 싫으나 좋으나 몸을 움직여야 하는 행사도 끊이지 않았다. 다리운동, 즉 유산소운동을 할 시간이 그만큼 많았던 셈. 그러다 보니 많이 걸을 수 있는 근력도 생겨났다. 그가 대통령직에 있을 때는 살이 많이 빠지고 복부비만도 크게 개선됐다.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퇴임 후 운동부족에 식단관리 소홀?

하지만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로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저에서 보냈고, 이렇다 할 운동도 하지 못했으며 엄격한 식단 관리도 받지 못했다. 언론보도에 비친 그는 대부분 휠체어를 탄 모습이었다. 각종 성인병 예방에 대한 평범한 진리, 즉 ‘거친 음식을 적은 양으로 먹고, 하루 1시간 이상 유산소운동을 하라’는 대원칙을 지켜나가기 힘들었던 듯하다. 100명의 왕이 쥔 권력을 모아도 되돌릴 수 없는 게 세월이라 했던가. 병마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위대한 정치지도자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인터뷰/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시 주치의 허갑범 교수목

“잘 걸었다면 조금 더 사셨을 것”


걷고 또 걸어라! 멈춰서면 곧 죽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다음 날인 8월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허내과 진료실에서 김 전 대통령 재임 시 주치의였던 허갑범 교수(사진)를 만났다. 허 교수는 전날 김 전 대통령의 시신이 모셔진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서 밤을 새웠다.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 눈물을 찍어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김 전 대통령의 건강상태는 어떠했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아뵀기 때문에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한다. 분명한 건 긴장감이 일거에 풀려서 그런지 얼굴색이 갈수록 안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최근 입원하신 후에는 상태가 악화돼 거의 매일 찾아뵀다.”
근본적 사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폐색전증이 문제였다. 폐렴은 치료하면 됐는데 폐색전증이 심해지면서 모든 장기에 영향을 줬다. 고관절 장애와 오랜 기간 입원으로 다리운동을 전혀 하지 못한 게 치명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것도 컸다. 7월13일 입원 전에 중국에 다녀온 것도 노구에 크게 부담이 된 듯하다.”
퇴직 이후 살이 찌고 부은 듯 보였다.
“김 전 대통령께서 과식 습관이 있고 음식 욕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만을 줄이기 위해 대통령 재직 당시엔 청와대 식단을 내가 직접 관리했다. 과식을 철저하게 막았고 식단을 칼로리에 맞게 관리했다. 다리장애를 고려해 청와대 내 수영장에서 거의 매일 물속 걷기 운동을 했다. 그래서 뱃살이 많이 빠졌다. 6·15 선언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같이 선 김 전 대통령의 배를 봐라. 자신보다 열여덟 살이나 아래인 김정일의 배가 훨씬 많이 나와 있다. 그때 나도 동행했는데 김정일의 배를 보고 몇 년 안에 문제가 터질 것이라고 했다. 결국 그렇게 됐다.”
비만이 성인병으로 연결되고 결국 폐동맥 협착과 신부전을 불러온 것 아닌가.
“재직 시까지 당뇨병이 없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고혈압은 모르겠다. 하지만 퇴직 후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그분이 제대로 걸을 수만 있었어도 조금 더 오래 사실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성인병은 운동부족에서 생긴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 몸의 근육 중 70%는 다리에 모여 있다. 유산소운동을 하면서 다리근육도 키울 수 있는 최고의 운동법이 바로 걷기다. 참으로 안타깝다.”




주간동아 2009.09.01 701호 (p36~38)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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