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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아,그때 말만 잘했어도! 09

“바쁜데 결론부터 …” 두괄식이 대세

대통령 스피치 스타일 & 미디어 발달과 발맞춰 변화한 스피치 트렌드 분석

“바쁜데 결론부터 …” 두괄식이 대세

“바쁜데 결론부터 …” 두괄식이 대세

1 1945년 10월17일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구 조선총독부 청사 앞에서 대중연설을 했다. 2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브리핑’ 문화가 꽃을 피웠다. 서울대 종합건설계획 브리핑을 듣고 있는 박 대통령. 3 노태우 대통령 시대에는 원탁 토의를 통해 ‘수평적 말하기’ 문화가 유행했다.

‘이 연사 강력히 외칩니다~’를 가르치던 웅변학원들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스피치학원’ ‘언어학원’ ‘스피치 리더십학원’ 등으로 소비자 요구에 따라 간판을 바꿔 달았다.

‘웅변’의 사전적 정의가 ‘조리 있고 막힘없이 당당하게 말함 또는 그런 말이나 연설’로, 최근 강조되는 스피치 교육의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웅변=계몽적·선동적 말하기’란 인식이 강해 ‘모던’하지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스피치학원들은 ‘보이스 트레이닝’ ‘효과적인 프레젠테이션법’ ‘효과적 영업을 위한 말하기’ 등으로 목적에 따라 강의 내용을 세분화하고 있다.

말을 잘하려는 목적과 상황이 다양해지면서 소비자들이 점점 전문적인 교육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언론학자, 국어학자들과 현장의 스피치 강사들은 소비자의 수요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와 맞물려 변화했다고 말한다. 과연 어떤 이유로, 또 어떻게 ‘말하기’의 트렌드는 달라져왔을까.

대통령 연설, 변신은 무죄



동아방송 부국장, KBS 아나운서 실장, 한국화법학회 1, 2대 회장을 역임한 수원대 전영우 명예교수는 1963년 미국 스피치협회에 가입한 이후 최근까지 스피치 관련 저서와 번역서 등을 활발히 집필해왔다. 그는 우리 사회의 스피치 트렌드 변화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소재로 대통령의 스피치 스타일을 꼽았다.

이승만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집권 전후인 1950~60년대에는 만연체로 가득한 복합문을 많이 사용했다. 이 대통령의 연설문만 봐도 한 문장의 길이가 길어 ‘~합니다’ 같은 종결어미가 나오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을 정도. ‘설득적 스피치의 심리(psychology of persuasive speech)’를 집필한 미국의 로버트 올리버 박사에게 스피치 지도를 받았던 이 대통령은 웅장하고 유장한 전형적인 웅변조를 모범으로 삼았다.

“바쁜데 결론부터 …” 두괄식이 대세
“컬러TV의 등장이 만연체의 유장한 스피치 문화 소멸에 영향”-이선미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브리핑’이 화두였다. 현장을 방문해 책임자들에게 브리핑을 요구한 박 대통령의 영향으로 사회 요직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현장 브리핑’을 강조했기 때문. 전 교수는 “당시 정부 각 부처, 국영기업체 등으로부터 브리핑 강의 의뢰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대에도 비슷한 전통이 이어졌다. 엄격하고 공식적(formal)이며 짧고 힘 있는 스피치 스타일이 득세했다.

노태우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집권 시기 전후에는 부처, 기관별로 ‘원탁’ 토의가 활성화됐고 이는 ‘의식적인’ 수평적 말하기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점차 확산되는 민주화 분위기가 스피치 어투에까지 스며든 셈. 웅변조보다는 톤 다운된 부드러운 말하기 스타일이 선호되던 때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야당 정치인의 양대 산맥이던 김영삼, 김대중 정권 시대에는 정서적인 요인이 스피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번역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레토릭’을 펴낸 전 교수는 이 시기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내세운 설득의 세 가지 요소 중 ‘실천 가능한 견해를 수용하도록 자각시키는 파토스(pathos)적인 정서’가 강했던 때라고 진단했다. 공식적인 상황에서도 말하는 사람의 정서를 솔직하게 담는 스타일의 스피치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바쁜데 결론부터 …” 두괄식이 대세

2003년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 나선 노무현 전 대통령. 공적 스피치에서도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그의 스피치 스타일 때문에 ‘감성적 말하기’가 스피치의 화두가 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정서적인 요소가 강한 스피치는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꽃을 피워 우리 사회에 좀더 직설적이고, 감성적인 말하기가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인 현재는 ‘토크쇼’적 말하기가 인기를 끈다. 현대 대중의 특성을 고려해 유머러스하고 호흡이 짧고, 감각적인 말투가 득세하는 것.

전 교수는 “이 대통령의 스피치도 점점 ‘두괄식’의 형태를 띠는데 이 역시 ‘짧고 강한’ 메시지를 선호하는 대중의 성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소통학회 류춘렬 회장은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직설적인 스피치 트렌드는 ‘사회적 자정’ 과정을 겪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386 세대’가 대표하는 반권위주의적 세력은 공적인 상황에서조차 여과되지 않은 격한 레토릭을 구사하는 것을 용인했습니다. 현재는 이러한 레토릭이 난무하면서 사회 여러 세력 간 갈등이 더욱 커졌다는 반성이 일고 있는 시점이며, 이에 따라 좀더 정제된 표현을 쓰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짧고 즉각적인 말하기가 트렌드

스피치 트렌드는 시대별 미디어 발달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서울여대에서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을 강의하는 ‘이선미 스피치랩’ 이선미 대표는 “라디오가 유일한 방송매체였던 시대에는 오로지 말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려다 보니 만연체가 주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라디오 방송에서조차 ‘아스라이 쏟아지는 별빛’ 등 수사학적이고 문어체적인 어구가 만연했고 아나운서, 전문 MC들의 방송언어도 흐느끼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호소력 짙은 스타일이 인기였다.

그러다 등장한 컬러TV는 표정, 제스처, 옷차림 등 말 이외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요소들을 더욱 부각했다. 라디오에서처럼 장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어진 만큼 설명적인 어투도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됐다. 한편 휴대전화 텍스트 메시지나 인터넷상에서의 짧은 ‘댓글’을 통해 즉각적인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현 세대는 단문 중심의 짧고 간결한 어투를 선호한다.

“바쁜데 결론부터 …” 두괄식이 대세
“웃는 소리를 ‘ㅋㅋ’라는 자음 두 개로 표현하는 세대이니 만큼 매스컴에 등장하는 언어들도 짧고 감성적이죠. 스피치 강의를 하면서 ‘1분 스피치’를 자주 시켜보는 것도 짧은 시간 내에 자기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군더더기 없이 전달하는 게 최근의 스피치 트렌드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미디어의 발달 속도가 빨라지면서 스피치 트렌드의 변화 주기도 과거보다 한층 짧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스피치에는 시대별 말하기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전영우



주간동아 2009.08.18 699호 (p36~37)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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