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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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헤딩 … 자존심으로 비행

영화 ‘국가대표’ 흥행 성공으로 주목받는 한국 스키점프의 세계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08-13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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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땅에 헤딩 … 자존심으로 비행

    실제 현 스키점프 국가대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가운데 하얀 옷은 영화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 ‘국가대표’가 상영 2주차에 관객 150만명을 돌파, 여름 극장가의 태풍으로 떠올랐다. 스키점프는 일반인에겐 생소한 종목이다.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스키, 쇼트트랙, 아이스하키에 가려져 전혀 주목받지 못한 겨울스포츠.

    스키점프는 스키를 타고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급경사면을 활강해 내려오다가 도약대에서 직선으로 허공을 최대한 많이 날아가 착지하는 경기다.

    노르딕스키(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언덕이 많은 지역에서 발전한 경기들을 총칭하는 말로 주로 거리, 점프 등으로 승부를 결정하는 종목)로 분류되며, 제1회 동계올림픽 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핀란드와 오스트리아가 강국으로, 이 나라의 스키점프 선수들은 영웅 대접을 받는다. 핀란드의 스키점프 영웅인 얀네 아호넨은 세계적으로 ‘인간 새’라고 불린다.

    종목은 두 가지로 출발 지점부터 도약대까지의 길이에 따라 K-90 (90m·Normal Hill), K-120(120m·Large Hill)으로 나뉜다. ‘K’는 독일어 크리티슈 포인트(Krtisch Point)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임계점을 뜻한다.



    채점 기준은 비행 거리와 자세. 육상경기인 멀리뛰기에 체조와 다이빙을 결합했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비행 거리가 긴 K-120의 경우, 120m 이후 1m당 2점이 가산된다. 미달이면 1m당 1.8점을 뺀다. K-90은 90m가 기준 거리로 1m 초과에 2점 가점, 1m 미달에 2점 감점이다.

    영화 속 훈련 모습 실제 상황

    여기에 도약, 비행, 착지 점수가 보태진다. 몸을 웅크린 채 경사면을 내려오다 힘차게 도약대에서 점프해 양 스키를 ‘V’자로 만든 뒤 스키와 몸을 평행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 다음 안정감 있게 한쪽 무릎을 굽힌 상태에서 양팔을 수평으로 벌려 착지하는 게 이상적인 자세다. 공중에서 스키가 벌어지거나 몸이 흔들리는 경우, 착지 시 불안한 동작이 나오는 경우 감점된다.

    5명의 심판이 각각 20점 만점으로 채점한다. 그중 가장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를 뺀 3명의 심판 점수를 더해 순위를 가린다. 고속 활강과 착지 때의 위험 때문에 아직은 남자 대회만 열리고 있다. 경기 중 사고는 드물지만, 비행기 착륙 사고와 마찬가지로 공중에서 몸의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선수들의 과학적인 훈련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영화 ‘국가대표’처럼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은 1996년 전북 무주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거의 미팅 선수(?)를 만들 듯 급조됐다. 스키만 좀 탔을 뿐 사전 연습조차 전혀 없던 상태. 말이 국가대표지 변변한 연습장, 보호장구, 유니폼도 없이 오토바이 헬멧이나 공사장 안전모를 쓴 채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 같은 연습을 되풀이해야 했다.

    시속 90km로 달리는 승합차 지붕에 스키를 고정시켜 놓고 타거나, 폐장된 놀이공원의 후룸라이드를 개조해 뛰어내리는 식의 연습은 영화적 재미를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맨땅에 헤딩 … 자존심으로 비행

    영화 ‘국가대표’가 극장가를 강타해 스키점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영화 ‘국가대표’에서 배우 하정우가 나무에 매달린 채 점프 자세를 연습하는 장면(맨 아래).

    외국 선수들이 보면 놀라 자빠질 정도로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은 생사를 오갈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

    현재 월드컵 대회에 대비해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전지훈련 중인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김흥수 코치는 8월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선수들의 캐릭터는 조금씩 다르지만 영화 속에 나오는 훈련 방법 등은 정말 현실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김 코치는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에 가장 많은 경험을 전수한 국내 스키점프 1세대 대표주자다.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하자 지원이 끊겼고, 국가대표 선수들은 최저 훈련비만 지원받으면서 오로지 대표선수라는 마음속 자부심으로 어렵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비인기 종목처럼 소속이라도 있어서 몇천만원의 연봉을 받는 일은 꿈도 못 꾼다. 김 코치는 “일반인이 상상하지 못하는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의 하루 수당이 3만원이에요. 한 달 20일 기준으로 최대 6개월까지 지원되거든요. 계산해보면 360만원 될 거예요. 생활이 당연히 안 되죠. 그래서 선수들은 아르바이트로 버티고 있어요. 건설현장에서 노동일도 하고, 놀이공원에서 인형탈도 쓰고, 포장 아르바이트도 하고….”

    연봉 360만원 그래도 스키는 놓지 못한다

    해외 대회에 나가면 박탈감이 더해진다. 유니폼에 온통 스폰서 엠블럼을 붙이고 날아가는 유럽 선수들을 보면 ‘부러움 반 허탈감 반’이다. 그때마다 유니폼이 가벼운 게 오히려 서럽다. 그들이 수시로 교체하는 장비나 유니폼도 완전히 못쓸 정도가 된 다음에야 쪼개고 쪼갠 경비로 구입한다. 김 코치는 이럴 때마다 선수들의 사기가 꺾이고 경기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기에 눌린다고 하잖아요. 그런 이유 때문에 4명밖에 안 되는 선수들이 동시에 컨디션이 정점에 있는 때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선수생활 도중에 다른 종목으로 전환하거나, 운동을 아예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라는 유혹이 많았을 법하다.

    “물론 유혹이야 많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금만 더하면 세계 정상에 설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겨요. 그래서 스키를 놓기가 힘들어요.”

    척박한 환경에서도 국가대표 선수들은 아시안게임과 각종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2003년 타르비시오 동계유니버시아드 개인 및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그해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2007년 토리노 동계유니버시아드 개인 및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해 세계 수준에 근접한 상황이다. 올해 하얼빈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도 개인 및 단체전을 휩쓸며 내년 캐나다 동계올림픽에서의 전망을 밝게 했다.

    “이젠 유럽 선수들도 우리 선수들이 타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칭찬도 자주 해요. 예전엔 상상도 못하던 일이죠.”

    영화 ‘국가대표’를 계기로, 부디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이 하늘에서 오래 날고 싶은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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