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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Y

아름다운 기업의 얼굴 붉히는 형제

금호아시아나 경영권 분쟁 전말 … ‘父子 경영’ 위한 2세들의 ‘대리戰’이란 시각도

아름다운 기업의 얼굴 붉히는 형제

아름다운 기업의 얼굴 붉히는 형제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금호아시아나 신사옥과 7월28일 퇴진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떠나는 박삼구 명예회장(작은 사진).

재계 서열 8위(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오너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고(故) 박인천 창업주의 3남인 박삼구 명예회장과 4남 박찬구 전 화학부문 회장이 분쟁 끝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박찬구 전 회장이 이에 불복,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 싸움은 2차전에 들어갔다.

형제가 함께 기업을 경영하며 재계에서 이상적인 가족경영의 역할모델로 평가받아왔던 금호아시아나. 그러나 가족경영의 결말은 ‘아름다운 기업’이라는 슬로건과는 달리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대우건설 풋백 옵션이 갈등의 시초

7월28일 오후 3시, 일간지 기자들이 기사 마감으로 분주한 이때 금호아시아나 홍보실로부터 “두 시간 후 박삼구 회장(현 명예회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는 연락이 왔다. 대우건설 재매각 결정 이후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박 명예회장이 직접 회견장에 나온다는 깜짝 소식에 금호아시아나 기자실도 분주해졌다.



그즈음 출입기자들에게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해임’이란 제목의 e메일이 날아왔다. 박찬구 전 회장 측 인사가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e메일에는 박삼구 명예회장이 이날 이사회를 열어 동생인 박찬구 전 회장을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에서 해임시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곧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삼구 명예회장은 메가톤급 선언을 했다. 박찬구 전 회장이 선대 회장과 약속한 공동경영 합의문을 지키지 않고 독자적인 경영활동을 해 불가피하게 대표이사직에서 해임시켰으며, 자신도 도의적 책임을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것. 이어 그는 창사 이래 첫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고, 그룹 경영권을 항공부문 부회장을 맡고 있는 박찬법 부회장에게 넘긴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곧바로 형에 의해 해임된 박찬구 전 회장 측 입장을 들으려고 했지만 쉽사리 연락이 닿지 않았다. 광주일고 졸업 후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박 전 회장은 국내에 이렇다 할 지인이 없을뿐더러, 그룹 내에 ‘자기 사람’을 심지 않을 만큼 은둔형 경영자였다.

나중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박 전 회장은 이사회가 열리기 일주일 전부터 이사회 조짐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회장은 이사회가 열리기 며칠 전 임원 A씨를 불러 “이사회에 내 해임안이 올라간다는데 사실이냐”고 확인했다는 것. A씨에게서 “그럴 리 없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의구심을 떨치진 못했다.

두 형제가 갈라서게 된 것은 대우건설 인수가 결정적이었다. 금호아시아나는 2006년 건설업계 1위인 대우건설을, 이듬해에 물류업계 1위인 대한통운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물류·운송 △제조 △건설 부문으로 이어지는 3대 핵심사업 구축에 성공했다. 이는 기업 인수합병(M·A)에 대한 박삼구 명예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바탕을 둔 것으로, 덕분에 금호아시아나는 재계 순위 11위에서 8위로 뛰어올랐다.

아름다운 기업의 얼굴 붉히는 형제
그러나 대우건설 M·A에는 아킬레스건이 숨어 있었다. 대우건설 인수자금 6조4000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신한은행 등 17개 금융회사에서 3조원을 빌리면서, 금호아시아나는 올해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1500원을 밑돌면 이 가격에 주식을 되사주겠다는 ‘풋백 옵션’을 금융회사들에 약속한 것이다.

올 들어 대우건설 주가가 1만원대로 주저앉으면서 풋백 옵션에 따른 자금 부담이 경영 전반에 걸림돌로 불거졌다. 증권가에 따르면 현 수준 주가를 고려할 때, 향후 풋백 옵션 이행에 따른 추가자금 부담액은 무려 4조원에 이른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발발한 금융위기 여파로 유동성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지난 4월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 재매각 방침과 함께 금융권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하며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당시 박찬구 전 회장은 금융권과의 재무구조 개선 약정에 그룹의 지주회사 구실을 하는 금호석유화학이 주체가 되는 것을 꺼렸다. 박 전 회장 측의 한 관계자는 “박찬구 회장 본인이 30년간 몸담아온 금호석유화학마저 대우건설 인수 후유증에 시달리게 둘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약정서 체결에 필요한 금호석유화학 법인 인감을 빼돌리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이 일로 두 형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는 후문이다.

박찬구 전 회장 일가는 6월부터 금호산업 지분을 팔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추가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금호아시아나는 창업주의 1남인 고 박성용 회장의 장남 박재영 씨(4.65%)를 제외하고 2남인 고 박정구 회장의 장남 박철완 금호그룹 전략경영본부 부장, 박삼구 명예회장 부자, 박찬구 전 회장 부자 등이 나란히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10.01%씩 보유해왔다.

그러나 박찬구 전 회장의 ‘액션’으로 지분이 변동돼 ‘힘의 균형’이 깨졌고, 증권가를 중심으로 그룹 경영권에 변화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했다. 박삼구 명예회장의 기자회견 이후 일주일간 침묵을 지키던 박찬구 전 회장이 처음 입을 연 것은 신임 그룹 회장의 취임식이 끝난 다음 날인 8월3일. 박찬구 전 회장은 이날 오전 9시 금호석유화학 사내게시판에 ‘금호석유화학 임직원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A4 4장 분량의 글을 올렸다.

그 강도는 예상보다 강했다. 첫 공세는 박삼구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자신의 조카인 박세창 그룹 전략경영본부 상무였다. 박 상무 등이 최근 금호석유화학 주식 매입자금 마련을 위해 금호렌터카와 금호개발상사에 금호산업 주식을 340억원에 매각했는데, 이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완전 자본잠식 상태인 금호렌터카가 어떻게 대주주로부터 170억원이 넘는 계열사 주식을 매입했고, 금호개발상사가 왜 30억원을 차입하면서까지 150억원에 이르는 주식을 사들였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박찬구 전 회장은 사실상 그 배후로 박삼구 명예회장을 지목하며 “불법적인 거래를 지시했거나 관여한 책임자는 응분의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 측은 “박세창 상무가 계열사에 주식을 매각한 것은 적법한 절차와 경영 판단에 의한 것”이라며 “시장에 내다팔 경우 금호산업 경영권 방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박찬구 전 회장은 박삼구 명예회장이 기자회견 당시 “아무나 형제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말에 크게 상심했다는 후문이다. 박찬구 전 회장 측근은 “결국 자기 아들(박세창 상무)에게 그룹 경영권을 주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찬법 신임 회장 취임식 즈음 고 박정구 전 회장의 장남인 박철완 아시아나항공 부장이 그룹 전략경영본부로 자리를 옮겨 박세창 상무와 같은 층에서 일하게 됐다. 박철완 부장은 박삼구 명예회장 부자와 똑같이 금호석유화학 지분 11.76%를 갖고 있고, 박찬구 전 회장 부자는 18.47%를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삼구 명예회장 측에서 만일에 있을 박찬구 전 회장 일가와의 지분 대결에서 우세를 잡기 위해 박철완 부장을 그룹으로 끌어온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금품 살포, 형사고발 등 악재 겹쳐

한편 박찬구 전 회장은 최근 대형법률사무소를 변호인으로 선임, 본격적인 법적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7월28일 열린 금호석유화학 이사회 무효 소송을 내거나 대표이사 해임 무효 가처분 소송 제기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대표이사 해임 무효 가처분 소송이 받아들여지면, 박찬법 신임 그룹 회장은 그룹 지주회사 구실을 하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 수행이 불가능해져 구조조정에 차질을 빚게 된다.

금호아시아나의 현안은 오너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 대우건설 매각 문제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최근 계열사인 금호건설의 경기 교하신도시 금품살포 의혹이 터졌고, 금호렌터카 고객 명의 도용 관련 형사고발 건, 구조조정을 위해 매물로 내놓은 금호생명 매각 난항까지 악재에 악재가 겹친 상태다. 창사 이래 어느 때보다 곤혹스러운 시기에 놓인 금호아시아나가 난세를 이겨내고 ‘진정한 아름다운 기업’으로 거듭날지,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



주간동아 2009.08.18 699호 (p54~55)

  • 정효진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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