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8

2009.08.11

“삼촌들은 너희의 모든 것이 귀엽거든!”

‘3말4초’ 아저씨들 소녀 그룹 청순함+섹시 코드에 열광 …日 문화 경험도 한몫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입력2009-08-05 14:0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삼촌들은 너희의 모든 것이 귀엽거든!”

    소녀 그룹의 대표주자 소녀시대.

    ‘소녀 그룹’ 열풍이 거세다. 2007년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점화한 여성 아이돌 그룹의 열풍은 카라, 애프터스쿨, 포미닛, 2NE1, 티아라 등으로 불길을 이어가는 중이다. 여기에 이른바 ‘삼촌팬’ 현상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즉 기존 아이돌 그룹의 팬층인 10, 20대뿐 아니라 30, 40대 남성들이 여성 아이돌 그룹의 팬덤 현상에 가세하고 있는 것.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삼촌팬은 값비싼 음반을 대량 구입하고, 아이돌 멤버의 이름으로 봉사단체에 기부하기도 한다. 새로운 팬덤 현상은 삼촌팬이 주도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삼촌팬이 여성 아이돌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여성 아이돌 그룹의 현재 시장부터 생각해보자.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양분한 곳에 2NE1이 혜성처럼 등장한 상태다. 카라, 애프터스쿨, 포미닛, 티아라 등은 본격적인 ‘소녀 그룹’ 시장에 안착했다고 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논점을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2NE1으로 압축해보자. 먼저 2NE1은 삼촌팬 현상과는 거리가 있다. 처음부터 여성팬을 노리고 기획된 그룹이기 때문이다. 대범한 코디네이션과 뚜렷한 음악풍은 여성이 좋아하는 프로페셔널한 이미지를 만든다. 남성이 좋아하는 아슬아슬한 섹시미와 청순한 소녀미 그 어느 쪽과도 거리가 멀다. 이런 그룹은 여성팬에게 지지를 얻는다.

    음반 대량구매 등 팬덤 현상 주도



    이제 남은 둘,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를 생각해보자. 두 그룹의 인지도와 인기는 대동소이하다. 최대 히트곡인 ‘지(Gee)’와 ‘노바디(Nobody)’의 인기도 비슷했다. 그러나 둘 사이를 명확히 가르는 요소가 있다. 음원 순위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음반 판매량은 소녀시대가 확실히 앞선다.

    현재 음원과 음반시장의 구분은 다소 미묘하지만, 음원이 실질적 인기와 트렌드를 보여주는 수치라면 음반은 팬덤의 견고함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음반이라는 것이 이젠 열혈 팬들의 ‘팬시형 상품’ 성격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즉 원더걸스는 소녀시대와 비교해 ‘음반까지 사줄 만한 팬덤’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음반까지 사는 삼촌팬 현상에서 원더걸스는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실제로 원더걸스는 이미지 측면에서 남성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한다고 보기 힘들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초창기에 내세운 촌스러운 콘셉트는 이들이 가요계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으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소희’의 롤리타 콘셉트도 ‘노바디’에서는 상당 부분 없어졌다. 그렇다고 2NE1처럼 여성용 그룹도 아니다. 원더걸스의 성공은 ‘노래’를 중심으로 한 정석 케이스라고 보는 게 옳다.

    그렇다면 남는 건 소녀시대 하나다. 소녀시대는 전형적인 남성용 여성 아이돌 그룹이다. 청순한 소녀 이미지를 고집하면서도 의상 등에 섹시 코드를 살짝 가미한다. 노래도 웬만해선 아이돌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삼촌팬 현상의 중심도 소녀시대에 있다. 즉 이들은 삼촌팬 구미에 맞아떨어지는 그룹이라는 뜻.

    “삼촌들은 너희의 모든 것이 귀엽거든!”

    삼촌팬의 휴대전화에는 소녀 그룹 멤버들의 사진이 가득하다.

    소녀시대는 일본의 여성 아이돌 그룹을 벤치마킹한 사례다. 기본 골격은 모닝구 무스메(Morning Musume). 멤버도 9~10명이고, 이미지 마케팅도 유사하다. 소녀풍을 기본으로 하되 각자의 캐릭터를 잡아 차별화했다. 가벼운 ‘응원가’ 또는 유명 노래의 리메이크 곡을 부르는 점도, 연기·춤·노래·버라이어티쇼 등 각자 ‘보직’을 따로 잡아 공략하는 점도 비슷하다.

    초반에는 이런 콘셉트가 한국 대중에게 낯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를 뒤엎은 소녀시대 팬덤의 한 축이 바로 삼촌팬이다. 그렇다면 삼촌팬들은 일본풍 여성 아이돌 그룹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대중음악 고정 소비층으로 정착하나

    일단 삼촌팬의 연령대부터 생각해보자. 대개 30, 40대 남성층이라고 말하지만, 여기에는 이질적인 세대가 모호하게 섞여 있다. 단적으로 40대 중후반은 이 계층에 넣기 힘들다. 삼촌팬의 연령대는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 넓게 봐도 40대 초반까지다. 이들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니는데, 그중 하나가 일본 문화에 제대로 눈을 뜬 첫 세대라는 점이다.

    1998년 이들이 10대 중반에서 20대 중반이던 시기에 일본 대중문화가 1차 개방됐다. 때마침 일본의 대중문화도 전성기를 맞이했다. 일본의 톱스타 기무라 다쿠야가 시청률 30%를 웃도는 히트 드라마에 2편 연속 출연하면서 발돋움했다. ‘슬램덩크’의 성공으로 일본 만화 역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는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졌다.

    “삼촌들은 너희의 모든 것이 귀엽거든!”

    요즘 ‘3말4초’는 취미활동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한다. 사진은 대한항공 직원들로 구성된 댄스그룹 ‘직딩슈즈’.

    무엇보다도 일본 여성 아이돌 그룹의 전성기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톱가수 아무로 나미에는 ‘아무라’ 현상을 일으켰고, 스피드는 여성 아이돌 그룹 붐을 일으켰으며, 이를 모닝구 무스메가 이어받았다.

    즉 지금의 삼촌팬은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문화흡수력이 높았던 시기에 일본 문화, 그중에서도 일본 여성 아이돌 그룹의 빅뱅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삼촌팬은 소녀시대가 표방한 일본식 여성 아이돌 그룹에 익숙할 뿐 아니라 향수까지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사회 환경도 이들로 하여금 삼촌팬으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경제 불황의 장기화로 결혼연령이 늦춰지면서 30대 미혼남성이 급격히 증가했다. 가정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이들은 취미활동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기성세대에 편입됐으면서도 여가생활에서는 기성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10, 20대 시절의 취미를 고스란히 이어갔다.

    또 ‘패거리형’ 대학 문화를 경험한 마지막 세대인 이들은 386이 주도하는 주류 문화에 대한 반발심으로 키치적이면서도 컬트적인 문화에 몰두하는 성향을 지녔다.

    이렇듯 삼촌팬 현상은 다양한 조건들이 시계태엽처럼 맞아떨어지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삼촌팬을 ‘나잇값 못하는 아저씨’라고 치부하고 그냥 넘겨버려선 안 된다. 삼촌팬의 특성을 정확히 분석, 이들을 대중음악의 고정 소비층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삼촌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 불황기에는 시장 파이를 키우는 것만큼이나 파이의 빈틈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