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7

2009.08.04

“너희는 공부기계야. 기계가 무슨 고민을 해?”

외고 출신 소설가 오현종의 ‘외고를 위한 변명’… 엘리트 의식과 기묘한 열등감의 ‘동거’

  • 오현종 aura0320@naver.com

    입력2009-07-29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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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공부기계야. 기계가 무슨 고민을 해?”
    외고 졸업했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영어 잘하겠네?”

    “그런데 왜 SKY를 못 갔지? 학교 때 좀 놀았나?”

    아마도 아이비리그 입학생의 성공담이나 ‘내 아이 이렇게 특목고 보내서 일류대 합격시켰다’ 식의 학부모 수기가 넘쳐나는 ‘특목고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전공인 프랑스어와 영어시간에 원어민 교사에게서 회화수업을 들은 것은 사실이다. 난이도 조정에 실패해 너무 쉽게 출제된 1992학년도 대입학력고사의 영어시험을 치른 뒤 3년 동안 죽도록 공부한 것이 아까워 울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게 외고 시절이란 이런 것만이 전부였을까?

    자율학습 땡땡이 … 유난히 무거웠던 책가방



    나는 쉽게 말해 외고 1세대다. 내가 외고에 입학할 무렵엔 특목고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고, 외고 입시를 준비시키는 전문학원도 없었다. 영어를 조금 좋아했던 나는 집 근처의 여고에 가고 싶지 않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외고 입학시험을 쳤다. 평범한 교사 집안의 장녀였기에 이른바 선수학습이란 건 생각도 못했다. 영문법 책 한 권 미리 들여다보지 않았다. 외고는 외국어를 ‘배워서’ 들어가는 학교가 아니라 ‘배우러’ 들어가는 학교인 줄 알 만큼 무지했다.

    단순무식한 결정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인가 보다. 입학 후 첫 시험에서 내 성적은 꼴찌에서 10등 안에 들었다. 전교 석차가 이 따위인가 안경을 추어올리고 봤더니 반 석차였다. 서울의 여자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했던 내가, 연합고사 200점 만점에 195점을 받은 내가 끝에서 10등 안쪽이라고?

    나는 얼마 전 출간한 장편소설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문학동네 펴냄)에서 담임교사의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졸업하기 전까지 너희는 기계야. 기계는 감정이 없다. 사람이 아니라고 믿으면 고민도 없어.”

    고교 3년간 너무 많이 들어서 잊히지 않는 말이다. 나 역시 공부기계가 되고 싶었다. 한 남학생은 영어사전을 통째로 암기했고, 나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통조림’ ‘양고기’ 등의 프랑스어 단어를 달달 외웠다. 그러면서 차츰 하위권 성적에서 벗어났다. 나중에는 상위권 아이들의 스터디 그룹에도 간신히 낄 수 있게 됐다. 입시에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감, 내신경쟁에서 낙오될 수 없다는 오기, 상류층 집안 아이들을 바라보며 느낀 위화감 속에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아니 우리는 영어기계가 되진 못했던 것 같다. 영어교사가 지목하면 발딱 일어나 전자동으로 영어독해를 해야 했던 우리에게도, 야간자율학습이 끝나자마자 스쿨버스에 올라타기 바빠 떡볶이 한번 못 사먹었던 우리에게도 고민은 많았다. 그때 우린 모두 감정을 가진, 어쩔 수 없는 소년이고 소녀였으니까.

    졸음이 올까 두려워 저녁 도시락도 양껏 먹지 못하던 시절, 누군가는 가슴 졸이며 러브레터를 적었다. 또 누군가는 축제에서 미국 뮤지션의 곡을 전자기타로 딩딩거렸다. 자율학습 시간 교사 몰래 TV로 미국 드라마 ‘브이’를 보기 위해 반장이 망을 본 날도 있다.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당구장으로 달려간 남학생이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악몽을 꾼다. 꿈속에선 매번 답안지 작성을 망치고, 시험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 감독교사는 답안지를 당장 내놓으라고 독촉한다. 대학은 많고 많지만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은 하나도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

    외고 아이들은 반드시 일류대에 합격해야 한다는 사명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입학을 한다. 외고라는 명찰이 붙는 것과 동시에 가족과 사회의 기대가 시작되지만, 우등생은 너무 많다. 누군들 힘들지 않은 고교 생활이겠느냐만 우리의 책가방은 유난히 무거웠다고 기억한다. 1 더하기 1은 2인 것처럼 명백한 사실이 있다. 일등이 있다면 꼴찌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외고에 입학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 동부 명문대에 합격하는 아이가 있다면 대입에 실패하는 아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눈이 자주 내리던 그 겨울, 누구는 서울대 법학과에 합격했고, 누구는 전문대학에 입학했으며, 누구는 유학 갈 준비를 시작했다. 진작 자퇴를 해서 학교를 떠난 아이도 있었다. 나는 생선 비린내가 풍기는 노량진 학원가로 향했다. 외고를 다닌 내가 재수생, 아니 죄수생이 됐다는 사실에 가족은 충격을 받았다.

    내신에서 6점이나 깎아먹을 거였으면, 뭐 하러 외고에 가 고생했는지 모르겠다는 부모님의 한숨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그 절망의 계절 한가운데서도 외고를 다닌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왜 후회가 되지 않는지, 그 이유를 그때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똑같은 교복에 똑같은 넥타이를 매고 책상 앞에 앉아 있던 그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돼 있을까? 졸업한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동창 가운데는 대기업 사원도 있고, 뉴스 앵커도 있으며, 재즈 가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외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글을 쓰는 소설가가 되었다.

    “우리는 남들보다 깊이, 더 많이 아팠다”

    올해 초였던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락이 끊어진 동창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우연히 신문에서 내가 쓴 칼럼을 읽었다고 했다. 반가운 나머지, 나는 그 동창을 만나 점심을 먹으며 학교 때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었다. 이상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른이 되어 만난 동창은 다들 외고 시절, 자신은 보잘것없어서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고 얘기한다.

    외고 졸업생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 은밀한 엘리트 의식이라면, 또 한편에는 기묘한 열등감 같은 것이 존재하는 듯하다. 그 동창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고시를 패스한 친구인데도, 있는 듯 마는 듯한 학생이었다고 자신의 고교시절을 회상했다.

    외고 아이들에게 빛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어둠도 있을 것이다. 나는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을 쓰면서 그들의 명암, 그 때문에 생겨나는 그림자까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외고 아이들의 화려한 성공담을 전하는 책이 각종 실용서라면, 그들의 갈등과 실패를 들려주는 데 가장 적합한 장르는 소설일 거라 믿었다.

    서울대를 지망하는 모범생이라고 해서, 재벌 회장을 아버지로 둔 아이라고 해서 아픈 상처가 없을까? 나는 그간 우리 사회가 자주 말하지 않았던, 혹은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에 대해 다 쓰고 싶었다.외고가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럴 수 있다면 한 권이나 되는 두꺼운 소설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남들보다 좀더 깊이, 많이 아팠다는 진실이다. 그 시절 나는 세상을 한 발짝 일찍 보았고, 나 자신의 한계와 희망을 동시에 깨달았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면서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

    “너희는 공부기계야. 기계가 무슨 고민을 해?”
    소설가 오현종은

    1973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프랑스어과를 나와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소설집 ‘세이렌’ ‘사과의 맛’과 장편소설 ‘너는 마녀야’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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