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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마이너리거들이 죽어야 민주당이 산다

포스트 DJ 시대엔 모든 ‘옛것’과 결별하라 … 격렬한 당내 투쟁 두려워 말아야

마이너리거들이 죽어야 민주당이 산다

마이너리거들이 죽어야 민주당이 산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익숙한 분들의 입적·소천·선종·서거·별세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정치권, 특히 민주당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다. 10년의 집권 경험을 만들어낸 유력 인사들이 하나둘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지고 있다. 영별의 눈물은 민주당에게 홀로 서라는 신호다. 민주당에겐 이제 혼란과 대립의 ‘시련기(throes)’가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민주당은 상당히 오그라들었다. 그러나 18대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호남당’이 아니었다. 16개 시·도 가운데 민주당은 13개 시·도, 한나라당은 10개 시·도에서 당선자를 냈다. 전체 의석수에서는 한나라당보다 크게 열세였지만, 지역별 의석 분포로 나타나는 지지기반의 광역성 측면에서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했다.

정권 넘기고도 변화와 쇄신 부족

하지만 그 후 민주당의 지지기반은 극도로 축소됐다.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민주당은 호남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한 자릿수 내지는 10%대 초반의 낮은 지지도를 보였다. 지난 1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서 민주당의 정체성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여기서 여론의 54%는 민주당을 호남에 기반을 둔 지역정당으로 보고 있었다.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정책정당이란 여론은 33.8%에 그쳤다.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더 심각하다. 수도권의 약 54%가 민주당을 지역정당으로 인식했다. 충청권에서도 지역정당이란 이미지가 절반을 넘었다. 같은 조사에서 한나라당을 대기업과 부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보는 시각이 53%였다. 한나라당의 카운터파트가 민주당이기에 한나라당을 이렇게 보는 사람들은 민주당에 대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나라당을 부자 대변 정당이라고 보는 사람 가운데 무려 50%가 민주당을 지역정당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도 지난 1월의 여론조사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쇄신 노력이 부족하고, 새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해 물었더니 33.8%가 기득권 집착 등 쇄신 노력 부재를 들었다. 21.5%는 참신한 인물 부재를 거론했다. 사람이 곧 정책이고, 메시지다. 그런 점에서 쇄신이란 것이 사람을 바꾸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쇄신 노력 부재와 참신한 인물 부재는 한 묶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결국 55.3%가 변화 거부를 민주당의 첫 번째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당의 지지율은 한때 30%를 넘어섰다. 지금도 20%대 초·중반에 안착해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참담한 속사정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정당의 존재감이나 리더십 측면에서 민주당은 더 왜소해졌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전례 없이 전면에 나섰고, 친노 세력이 대안세력으로 급부상했다. 민주당이란 ‘그릇’, 민주당의 ‘사람’은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았다. DJ가 입원하고, 입법투쟁으로 초점이 이동하고 나서야 민주당이 그나마 관심시장(attention market)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당의 위기를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마이너리거들이 죽어야 민주당이 산다

7월20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한나라당 언론악법 강행 음모 규탄대회’에 나선 민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

DJ와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이전의 리더들은 자기 소임을 다했다. 10년 집권을 일궈냈고, 이끌었다. 이제 민주당은 야당이다. 그것도 ‘불임정당’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위축된 야당이다. 인물이든, 정책이든, 노선이든 ‘구(舊·the old things)’와 결별해야 한다. 지역 고착화 구도를 털어내야 한다. 지역연합론은 더 이상 유미한 정치·선거 전략이 아니다. 이제 민주당은 어떡해야 하는가.

동서의 어느 정당이든 패배를 딛고 거듭나기 위해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1979년 정권을 내준 영국 노동당은 18년간 야당으로서 지겨운 당내 투쟁을 거쳤다. 1980년 패배한 미국 민주당은 12년간 절치부심해야 했다. 그럼으로써 ‘신(新)’이 탄생했다. 새로운 노선, 새로운 정책,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냈고 마침내 승리했다. 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그들은 리더가 아니라 조정자 돼야

야당으로 전락한 영국 노동당은 당의 진로를 놓고 극심한 대립과 혼란을 겪었다. 지도자급 인사들의 탈당도 있었다. 선거에서는 이골이 날 만큼 졌다. 하지만 당내의 현대화 세력은 흔들림 없이 당을 리모델링해 나갔다. 정책 재검토(policy review)를 통해 국민에게서 멀어진, 그럼으로써 선거 패배를 낳은 정책들을 하나하나 재검토하고 수정했다. ‘제3의 길’이란 새로운 노선도 정립했다. 현대화 작업을 주도한 닐 키녹이 물러나고, 마침내 젊은 리더십의 새 인물 토니 블레어를 당수로 밀어올렸다.

미국 민주당은 또 어떤가. 공화당의 독주 속에 민주당은 바람 앞의 등잔불처럼 흔들렸다. 당내 일부 인사들이 리더십회의(DLC)를 만들어 당을 바꾸는 일에 나섰다. 변절, 배신, 투항 등의 비난 속에서도 ‘뉴민주당’ 그룹은 정책을 변경하고 노선을 재정립하고자 했다. 여론의 지지를 받는 것이라면 공화당의 주장이라도 수용했다. 이른바 중도노선이다. 대중이 환호할 만한 인물도 찾아냈다. 클린턴은 DLC 의장을 지낸, 명실공히 DLC의 총아였다.

영국 노동당이나 미국 민주당의 노선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이 불가피했다는 사실만큼은 배워야 한다. 이 땅의 민주당은 대선 참패 후에도, 총선에 패한 뒤에도 너무 한가했다. 그래서 호남당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제는 대립과 혼란을 자초해야 한다. 백가쟁명을 조장해야 한다. 따따부따 싸우고, 가리산지리산 갑론을박해야 한다. 질서 있는 변화, 단연코 허상이다. 혼란이야말로 창조의 어머니 아니던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격렬한 투쟁 속에서 무엇을 바꿀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

민주당이 다시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고만고만한 마이너리거들이 담합해 변화를 막는 것이다. 전략적 관점에서 본인들에게 아쉬움이야 있겠지만, 정세균 손학규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 등의 시대는 지나갔다. 그들이 여태 대변, 상징해온 흐름은 이제 주류가 될 수 없다. 다수연합(majority coalition)을 창출할 그릇이 되기 어렵다. 그들이 오바마가 되기 위해 경쟁하려 든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그들은 하워드 딘이 되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리더가 아니라 조정자(coordinator)가 돼야 하고, 썩어 새싹의 거름이 되는 밀알이 돼야 한다.

이철희 본부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청화대 행정관을 역임했다. ‘어드바이스 파트너’ ‘정치와 선거의 기술’ ‘클린턴과 블레어 그리고 그 참모들’ ‘1인자를 만든 참모들’ 등의 저서가 있다.




주간동아 2009.08.04 697호 (p54~55)

  •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컨설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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