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6

2009.07.28

눈속임 쇠고기 유통 꼼짝 마!

쇠고기 이력추적제 계도 단속 현장 … 식별번호 휴대전화 입력하니 이력이 줄줄

  • 유두진 프리랜서 기자 tttfocus@naver.com

    입력2009-07-20 1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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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속임 쇠고기 유통 꼼짝 마!
    “여기 비닐 포장한 쇠고기 제품의 라벨에 표기된 것이 ‘개체식별번호’거든요. 이 번호는 소의 주민등록번호나 마찬가집니다. 이 번호만 알면 휴대전화로 이 쇠고기에 대한 중요 정보를 바로 조회할 수 있습니다.”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 기동단속반 전대경 주임이 마트 정육코너에 진열된 국거리용 한우쇠고기를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비닐에 붙은 라벨의 개체식별번호를 휴대전화에 입력하기 시작한다.

    “아주 간단합니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6626번을 누르고 인터넷에 연결하면, 이렇게 조회 화면이 뜨지요? 거기에 포장지 라벨에 기재된 개체식별번호 12자리를 찍어요. 한번 찍어볼까요. 002019653×××. 그 다음엔 OK 버튼만 누르면 좍 나옵니다. 보세요.”

    대형업체는 합격점 … 계도활동엔 ‘깜짝’

    번호 입력이 끝나자 전 주임의 휴대전화 화면에 포장 쇠고기의 이력이 떴다.



    ‘소의 종류-한우, 성별-거세, 출생일자-2006.08.10, 소유자-김○○, 도축일자-2008.10.20, 도축 검사결과-합격, 등급-1+등급.’

    포장 진열된 쇠고기의 라벨 내용과 휴대전화 ‘이력추적’ 조회내용이 정확히 일치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소속 단속반은 쇠고기 이력추적제의 계도활동을 위해 7월6일 경기도 내 정육마트들을 긴급 방문했다. 기자는 이들 단속반을 동행 취재했는데, 처음 찾은 곳은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의 이마트 안양점이었다. 대형 마트여서인지 이력추적제에 대한 준비는 잘돼 있는 듯했다.

    그러나 정육코너 앞에서 단속반과 기자의 얘기가 길어지고 사진기자의 플래시가 연신 터지자 판매직원들이 깜짝 놀라 멈칫했다. 이에 직원들의 호출을 받은 정육코너 책임자와 총무과 담당자가 한꺼번에 ‘출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습니까?”

    달려온 이마트 관계자들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온다. 단속반원이 신분증을 제시하고 “쇠고기 이력추적제 계도활동 중이며, 이쪽은 ‘주간동아’에서 취재 온 분들”이라고 밝히자 표정이 조금 풀어진 듯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단속반과 취재팀이 업체 처지에선 부담이 되게 마련. 직원들의 표정에는 좀처럼 긴장감이 가시지 않았다. 이후 단속반의 샘플링 조사가 몇몇 포장제품에 이어졌지만 크게 문제 되는 것은 없었다.

    “양호하네요. 홍보가 미리 돼서인지 준비 상태가 좋군요. 이제 관련 서류만 확인하면 될 것 같습니다.”

    또 한 명의 단속반원인 김영규 팀장이 마트 측의 쇠고기 이력추적제 준비상태에 만족감을 표시하자 이마트 직원들은 안심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농식품부는 6월22일부터 유통단계의 쇠고기 이력추적제를 실시 중이다. 소의 출생에서부터 도축, 포장처리, 판매까지의 정보를 기록, 관리해 위생 및 안전에 문제가 생길 경우 그 이력을 추적,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유럽연합(EU),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선진국에서 이력추적제를 시행하고 있다. 쇠고기 이력추적제는 ‘사육-도축-포장처리-판매’의 4단계로 시행되는데 사육단계에서의 이력추적제는 2008년 12월22일부터 시행됐고, 이번에 시행된 이력추적제는 도축, 포장, 판매 등 유통단계의 이력추적제다.

    이마트 안양점에서 나온 뒤 좀더 작은 규모의 마트를 점검해보기로 했다. 단속반을 따라간 곳은 과천시 모아파트 단지 내 상가. 상가 지하에는 단지 주민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400㎡ 규모의 중대형 마트가 입점해 있었다. 이마트나 롯데마트처럼 대형급 마트는 아니지만 고급 아파트단지에 입점해 있고, 대기업 자회사가 관리하는 곳이어서인지 큰 위반사항은 없어 보였다. 그곳 정육코너 관계자에게 이력추적제를 준비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이력추적제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국내 사육 모든 소는 이력추적 대상

    “5월 중순부터 준비했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전자저울도 ‘개체식별번호 라벨용’으로 바꿨고요. 고객 반응이요? 글쎄요, 아직 고객들은 이력추적제가 어떤 건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농식품부의 이력추적제 홍보 포스터를 판매코너 앞에 붙여놨는데, 그걸 보고 궁금해하는 분이 많습니다. 저희가 직접 설명도 해드리죠.”

    단속반과 기자를 처음 봤을 때 당황해하던 정육코너 담당자는 곧 미소를 되찾고 농식품부의 이력추적제 홍보 포스터를 가리켰다. 기자가 정육코너 담당자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단속반원들의 포장쇠고기 샘플조사는 이어졌다. 포장품 샘플조사에서 별문제가 없자 다른 마트로 이동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단속반의 조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단속반은 마트 팀장에게 도축검사증명서, 식육기재증명서, 거래내역서 등 각종 서류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눈속임 쇠고기 유통 꼼짝 마!

    대형 마트 매장에는 이력추적단말기가 설치돼 휴대전화 없이도 즉시 확인이 가능하다.

    마트 팀장은 서류를 찾아온 뒤 단속반원에게 하나하나 펼쳐 보였다. 서류에는 소가 태어나 사육, 도축, 가공 및 포장, 판매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단속반원들은 개체식별번호와 서류의 내용을 일일이 대조하고 비교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서류 대조작업에도 별문제가 없자 단속반은 “앞으로도 쇠고기 관리를 잘 부탁한다”고 마트 관계자들에게 당부한 뒤 자리를 떴다.

    단속반의 조사는 꼼꼼했다. 관리해야 할 업소가 수만 개에 달해 격무에 시달리지만, 일단 업소를 방문하면 ‘대충’이란 없었다. 일일이 판매품 샘플을 조사하고 관련 서류를 챙기고 위생상태까지 점검한 뒤에야 조사를 끝냈다.

    현재 ‘국내’에서 사육하는 모든 소(한우, 육우, 젖소 등)는 이력추적제 대상이다. 이들 소에서 나온 지육, 정육, 포장육이 이에 해당하는데, 뼈나 내장 등 부산물은 제외된다. 원활한 이력추적을 위해서는 사육, 도축과 같은 쇠고기산업의 첫 단계부터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사육농가의 경우 소가 태어나거나 거래되거나 폐사한 경우 지역의 위탁기관(축협, 낙농조합 등)에 30일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

    영세 정육점은 아직 준비 미흡

    한편 위탁기관은 농가로부터 소가 태어났다는 신고를 받은 경우 ‘귀표’를 부착해야 한다. 소의 귀에 붙이는 귀표는 사실상 주민등록증 기능을 하며 도축되기 전까지 의무적으로 부착해야 한다. 도축업자는 귀표가 부착되지 않거나 훼손돼 개체 식별이 곤란하거나 이력추적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소를 도축해선 안 된다. 또한 도축검사신청서 전산입력 사항을 날짜별로 기록해 2년간 보관한다. 도축 후 분할한 도체(도살한 가축의 몸뚱이)에는 개체식별번호가 표시되고 도축처리 결과 등을 전산 입력하는데, 이 단계에서부터 ‘개체식별번호’가 철저하게 관리된다.

    과천의 마트 점검을 끝낸 단속반은 다음 방문지로 영세 정육업체들을 예정하고 있었다. “홍보는 했으나 영세업체들은 개인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고 당장의 판매에만 급급해 주먹구구식 관리를 하는 경우도 많아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게 단속반의 설명.

    단속반과 취재팀은 경기도 안양시의 한 재래시장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이들 영세업체의 이력추적제 준비상태는 불량했다. 시장 입구에 자리한 C정육점에 먼저 들렀다. 이력추적제가 시행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식육판매표지판도 제대로 갖춰놓지 않았다. 식육판매표지판을 갖추지 않았다는 것은 개체식별번호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얘기. ‘재수 없이 걸렸다’는 듯한 표정의 정육점 주인은 “표지판에 개체식별번호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단속반이) 오신 것”이라고 둘러댔다. 단속반 김영규 팀장이 취급거래대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육점 주인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며 난처해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필요 서류 중 ‘등급판정확인서’를 진열대 앞에 게시한 점.

    눈속임 쇠고기 유통 꼼짝 마!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이 ‘쇠고기 이력추적제’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한 영세정육점이 도입한 전자저울. 값은 비싸지만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가운데).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소속 단속반이 쇠고기 이력추적제 계도 활동을 벌이고 있다.

    건너편의 J정육점도 기습 방문했다. C정육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이미 단속반의 움직임을 눈치챈 듯, 주인은 준비서류를 추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도 허술하긴 마찬가지였다. 식육판매표지판에 ‘한우 등심 1등급’이라고 수기(手記)로 표기한 제품을 기자가 휴대전화로 이력추적을 해봤다. 확인 결과 해당 부위는 ‘한우 등심 2등급’. 정육점 주인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일반인도 쇠고기의 내력을 쉽게 파악해 유통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실감했다.

    당황해하며 ‘1등급’이라 표기된 식육표지판 숫자를 ‘2등급’으로 고치고 있던 주인에게 단속반 전대경 주임은 “8월31일까지가 계도기간이라 일단 봐드리는 겁니다. 9월1일부터는 법대로 처리할 것이니 적발사항을 꼭 시정하세요”라고 말한 뒤 업소를 나섰다.

    9월부터는 대대적 단속

    쇠고기 이력추적제와 관련해 개체식별번호 표시, 식육 포장처리, 소의 출생신고, 거래내역 기록 등을 위반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력추적 조회는 휴대전화 이외에 터치스크린 등을 통해서도 할 수 있다. 현재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 마트들은 정육코너 내에 터치스크린을 구비해놓고 있다. 여기에 개체식별번호를 입력해 해당 쇠고기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식육판매업자는 축산물가공처리법에 의한 거래내역서에 개체식별번호를 함께 기록해 1년간 보관해야 한다.

    재래시장 일부 업체의 미흡한 이력추적제 준비상태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지만, 영세 정육업체라고 다 그들처럼 체계 없이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이력추적제 시행 한두 달 전부터 대다수 업체가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과천시 원문동 T정육점의 경우가 그런 예다. 이곳은 영세 업체인데도 최신 전자저울과 각종 서류, 농식품부의 쇠고기 이력추적제 홍보 포스터까지 완비하고 있었다. 영세업체를 계도하는 것도 ‘난공불락’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무리를 하긴 했어요. 전자저울이 130만원이나 하거든요. 그래도 이력추적제 라벨 처리를 하려면 아무래도 전자저울이 편하잖아요. 돈은 들었지만 어떡합니까. 법이 바뀌었으니 따라야지요.”

    말끔한 흰 유니폼을 입고 고기를 팔던 T정육점 여사장의 말이다. 그는 “우리 가게는 소규모 정육점이다 보니 소 한 마리를 통째로 들여와 부위별로 나눠 판매하는데, 이럴 경우 이력추적제 관리도 좀더 쉬워진다”며 소규모 업체의 ‘틈새 경쟁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력추적제, 남은 의문 Q&A

    포장과 식별번호 바꾸면 DNA 검사로 ‘족집게 적발’


    쇠고기 이력추적제가 투명한 쇠고기 유통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는 듯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놓고 볼 때 몇몇 대목은 아직도 의문을 사고 있다. 이런 의문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측의 설명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휴대전화 인터넷 데이터요금이 비싸다. 쇠고기 이력추적제에서는 휴대전화 인터넷을 통해 이력 조회를 하게 되는데 부담이 너무 크지 않나.
    그렇지 않다. 대략 50원 안팎으로 보면 된다. 이동통신사마다 요금이 조금씩 다른데 SK텔레콤은 1건 조회에 45원, KTF는 45.5원, LG텔레콤는 52원이다.
    일반인도 개체식별번호가 표시된 거래명세서나 영수증을 판매처에 요구할 수 있나.
    물론이다. 구매자가 요구하면 판매인은 개체식별번호를 기재한 거래명세서나 영수증을 교부해야 한다. 특히 구매자가 식품접객업소나 집단급식소 등 대형 구매인일 때는 요구하지 않더라도 필수적으로 교부해야 한다.
    사육단계에서 소의 귀에 부착되는 ‘귀표’가 이력 추적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수십 마리의 소를 키우는 농장에서 2, 3마리의 귀표가 동시에 떨어졌을 경우 어떻게 헷갈리지 않고 그 소의 출신성분을 밝힐 수 있나.
    그런 점을 방지하기 위해 왼쪽 귀에도 작은 귀표를 하나 부착한다. 소의 양쪽 귀에 큰 귀표와 작은 귀표를 함께 부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귀표는 밀착시켜 붙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떨어지지 않는다. 귀표가 떨어지면 바로 위탁기관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마리의 귀표가 동시에 떨어지거나 특히 왼쪽, 오른쪽 귀표까지 함께 떨어져 소를 파악하는 데 헷갈리는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수입쇠고기에는 이력추적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나.
    현재 추진 중이다. 빠른 시행을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준비가 된다면 2010년 말에는 수입쇠고기도 이력추적 시스템을 통해 정보를 조회할 수 있을 전망이다.
    포장판매 시 개체식별번호와 실제 고기가 맞지 않게 조작될 가능성, 이를테면 수입산을 한우로 바꿔 포장해 개체식별번호만 몰래 붙일 수도 있지 않나.
    DNA 동일성 검사가 그에 대한 대비책 중 하나다. 사육, 도축 과정에서 소별로 시료 채취(시험·검사·분석 등에 쓰기 위해 물질을 채집하는 것)를 하게 된다. 이후 이 샘플은 판매과정의 포장제품에서 수거한 시료와 DNA 동일성 검사를 통해 일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DNA 동일성 검사는 단속기관의 필요에 따라 무작위로 이뤄진다. 다만 구매자의 요구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임할 예정이다.
    쇠고기 이력추적제 관련 문의는 어디에다 하나?
    이력지원실 대표전화 1577-2633번을 이용하거나 인터넷 주소 www.mtrace.go.kr을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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