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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바다에서 돈을 캐다 02

“전곡항의 기적? 이제 시작일 뿐”

해양레저산업 새 역사 쓰는 경기도 전곡항 희망 ‘출렁’

“전곡항의 기적? 이제 시작일 뿐”

“전곡항의 기적? 이제 시작일 뿐”

경기도 화성시 전곡 마리나. 요트들이 본격 운항에 나서면서 일부 빈 곳이 있다.

7월3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 사진으로만 접하던 크루즈 요트와 모터 보트들이 빽빽이 진을 치고 있다. 그 옆 방파제 안쪽 바다에는 조그마한 돛을 이리저리 휘날리며 딩기요트들이 한가롭게 떠다닌다.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 여기가 미국 뉴욕인지 호주인지 헷갈린다.

불과 2년 전 전곡항은 그저 서해안의 자그마한 어항일 뿐이었다. 몇 척의 고기잡이배가 음울하게 떠 있고 선창가에는 횟집들만 들어서 있던 곳. 오래된 통통배만 즐비하던 어항이 예쁘고 아담한 요트들이 가득한 마리나(요트계류장)로 바뀌었다.

“전곡 마리나엔 60석의 수상계류장과 53석의 육상계류장이 있습니다. 2010년에는 633석으로 늘어날 겁니다. 얼마 전 요트대회가 끝난 뒤 요트와 보트들이 이렇게 몰려드네요. 현재 여기도 모자라 인근 바다에 그냥 서 있는 요트도 꽤 많습니다.”

안내를 담당한 경기도 해양수산과 해양시설담당 홍석우 사무관이 신이 나서 말한다. “취재 온다고 남해안의 요트를 이리로 다 끌어모아 놓은 것 아니냐”고 농처럼 물었더니 “트럭으로 실어올 수도 없는데, 이 비싼 크루즈 요트들을 어떻게 한꺼번에 100척씩 모으겠냐”고 쏘아붙인다.

마리나를 한 바퀴 돌아보니 크루즈 요트들의 규모가 사진으로 본 것보다 무척 크다. 육상계류장에도 육중한 요트들이 지지대에 의지한 채 공중에 떠 있다. 이걸 어떻게 끌어올렸을까 싶은데, 한쪽에서는 선박용 기중기가 가뿐하게 요트를 바다에 내리고 있다.



“전곡항의 기적? 이제 시작일 뿐”

요트 무료강습에 나선 인하대 생활체육과 유홍주 교수(왼쪽).

“국내 요트의 수가 신고 안 된 것까지 합치면 1만5000대쯤 되며 그중 절반이 수도권 시민의 소유입니다. 그동안 수도권 인근에 마리나가 없어 전부 남해안에 가 있었는데 그게 속속 돌아오는 중입니다.

벌써 포화상태라 옆에 500여 석 규모의 마리나를 더 만들려는 겁니다. 수도권 소유자는 편하죠. 차로 1~2시간 거리에 자신의 요트가 있으니까요. 앞으로 경인운하가 완공되면 한강의 크루저들은 전곡항 일대 마리나를 자유자재로 다니게 될 겁니다.”

홍 사무관은 “서해안의 평균 조수간만차가 9m인데, 전곡 마리나는 이런 어려움을 기술력으로 극복해 물이 가장 많이 빠져나가도 요트 정박의 기본 조건인 3m 수심을 늘 확보한다”며 “이곳만한 요트 정박 적지(適地)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곤 “이곳 땅값이 10년 만에 20배가 올랐다. 비싼 곳은 3.3㎡당 1000만원에 육박한다”고 귀띔했다. 실제 1998년 한국수자원공사가 전곡항 어항배후지를 개발할 때 이곳 일대의 분양가는 3.3㎡당 50만~100만원이었다.

2020년까지 1500척 규모 마리나 건설

이름 없던 자그마한 어항이 이처럼 인기 있는 레저항으로 변한 이유는 뭘까. 마리나 시설과 요트, 보트 등 해양레저산업 전반에 대한 경기도의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투자에 그 답이 있다.

요트 경기에 관심 없는 사람도 얼마 전 경기도가 치른 국제요트대회 소식은 들었을 터. 경기도는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국제보트쇼와 코리아매치컵 세계요트대회를 개최했다. 특히 6월3~7일에 열린 제2회 코리아매치컵 세계요트대회에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요트대회인 아메리카스컵 출전팀, 올림픽 3연속 우승팀 등 기라성 같은 멤버들이 참가했다.

이 때문일까. 세계적 경제 불황과 남북 긴장 고조, 폭우 등 온갖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25만명의 관람객이 운집했으며, 세계 60개국에 생방송됐다. 이를 두고 경기도는 코리아매치컵이 아메리카스컵, 볼보오션레이스와 함께 세계 3대 요트대회로 성장할 가능성이 열렸다고 자체 평가한다.

홍 사무관은 “요트대회가 단 2회 만에 이렇게 세계적 대회로 성장한 데는 전곡항 인근 바다의 아름다움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침 순시를 나가던 화성시 어업지도선 화성누리호를 같이 타자고 제안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뜻. 어업지도선이라면 대형 어선 또는 군함에 큰 레이더가 얹힌 형태를 떠올리지만 화성누리호는 대형 크루즈 요트를 닮았다.

“전곡항의 기적? 이제 시작일 뿐”

순수 국산 기술로 국제대회 공인 요트 ‘G마린’호를 만든 어드밴스트 마린테크 이상홍 대표(위). 그가 만든 모터보트엔 현대자동차의 엔진이 사용됐다.

내부도 마찬가지. 선상에 오르니 파티라도 할 수 있을 만한 테이블과 의자가 갖춰져 있고 선실에도 대형 벽걸이 TV가 있는 회의실, 조리실, 세면실, 침실 등 호텔급 시설이 구비돼 있었다.

“요즘 요트나 보트 구입 등 해양레저산업에 대한 투자 목적으로 경기도를 찾는 외국 바이어들이 많습니다. 이 배로 일대를 보여주면서 설명하곤 하죠. 그럼 다들 좋다고 난리입니다. 앞으로 어업지도선은 고기잡이배들의 단속과 계도뿐 아니라 요트나 보트의 해상 구조, 면허위반 단속업무 같은 것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요트처럼 만들면 더 잘 어울립니다. 발상의 전환이라고나 할까요.”

화성누리호 이홍구(화성시 축수산과 소속) 선장의 설명이다.

한국 요트산업, 작지만 강하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전곡항을 빠져나가는데 오른쪽으로 누에섬이 눈에 들어온다. 전곡항은 안산시 탄도항과 말굽 모양으로 마주보고 있다. 탄도항에서 누에섬까지는 방파제가 쳐져 있고 방파제 위로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이 방파제 덕에 지금의 전곡 마리나가 조성될 수 있었고, 옛 어항은 방파제와 전곡 마리나 사이로 옮겨가게 됐다. 누에섬 정상에는 새하얀 작은 등대가 그림처럼 걸려 있다. 그 뒤쪽으로 2012년까지 500척 규모의 요트 마리나가 새로 만들어질 제부도가 눈에 들어온다.

경기도는 인근 방아머리항(구본항)에도 100척 규모의 요트 마리나를 조성할 계획. 홍 사무관이 슬쩍 귀띔한다.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항구가 흘곳인데 거기에 SK그룹이 2015년까지 400척 규모의 요트계류장을 만들 계획입니다. SK그룹은 대형 크루저요트를 소유하고 있죠. 제가 알기론 SK그룹뿐 아니라, 요즘 웬만한 대기업은 ‘큰손’ 바이어 접대를 자사 소유의 대형 크루저요트에서 합니다. 대기업이 대형 마리나를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요트레저가 사업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겠죠. 대기업이 손해보는 장사를 하겠습니까?”

2020년 경기도와 대기업이 기획한 마리나 시설 조성사업이 끝나면 도내 서해안의 마리나 전체 규모는 1113척을 넘는다. 여기에 평택시가 자체 조성하는 마리나까지 합치면 서해안 일대 마리나는 1500척 이상의 엄청난 규모가 된다. 해양레저에 대한 대중적 수요가 아직 부족한 상태에서 경기도가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

화성누리호가 순시를 끝마치고 전곡항 근처로 돌아오는데 일단의 요트 무리가 순시선 가까이 다가온다. 배에 탄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홍 사무관이 그중 가장 큰 요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배가 이번 국제요트대회에서 사용된 공인 경기정입니다.‘G마린호’라고 불리는데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들었죠. 이번 국제보트쇼에서 대량 주문도 받았습니다. 한국은 출발은 선진국보다 많이 늦었지만 요트 만드는 기술력은 최고 수준입니다. 요트는 얼마나 가벼운가, 얼마나 엔진이 좋은가, 얼마나 균형이 잘 잡히도록 설계됐는가 등 세 가지로 경쟁력이 좌우되는데 한국은 조선 세계 1위, 자동차 세계 4위 국가잖습니까. 수요만 있으면 초스피드로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사실 경기도가 1500척 규모의 마리나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해양레저산업의 선두가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배경에는 ‘작지만 강한’ 국내 요트산업의 기술력이 있다. 화성엔 현대자동차 엔진개발의 산실인 남양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다. 코리아매치컵과 함께 열린 제2회 국제보트쇼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베네토, 자뉴 등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유명 요트 제작업체를 비롯해 163개의 외국 기업과 바이어가 참가한 사실도 놀랍지만, 117개 국내 업체가 참가해 438건, 1068억원(8900만 달러)의 요트와 보트, 부속장비 수출 계약을 맺은 것은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수출상담 건수는 4721건, 3억100달러에 달했다.

“해양레저산업 투자는 사회간접자본”

화성누리호에서 내리니 순수 국내 기술력으로 G마린호를 만든 어드밴스트 마린테크(이하 암텍)의 이상홍(41)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대 조선공학과 출신인 그는 대학시절 요트 제작 벤처를 창업해 지금까지 600여 척의 크고 작은 선박을 만들었다. 경기도뿐 아니라 남해안의 각 마리나 개발과 요트 산업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그는 이번 보트쇼에서 경기정 G마린호에 침실, 주방, 화장실 등이 들어간 레이싱 크루저를 선보여 2척의 수주 실적을 올렸다.

“같은 급에선 빨라요. 세계적 선박회사 관계자들이 우리 회사에 들렀다 갔습니다. 경비행기 소재를 이용해 무게는 가벼우면서도 속력은 더 빠르죠. 가격은 훨씬 싸고요. 그러니까 사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대표는 “우리 레저보트의 기술력을 보여주겠다”며 레저용 모터보트로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러고는 대뜸 직접 운전을 해보라고 했다. “수영도 할 줄 모른다”고 말하자 “요트 선수 출신이자 요트 제작업자인 나도 수영을 못한다. 그렇지만 이 배는 절대 뒤집히지 않게 설계됐다”고 단언했다. 벌벌 떨며 배에 오르니 보트 엔진에 현대자동차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현대자동차 사내 벤처인 씨즈올마린에서 SUV ‘모하비’에 들어가는 베라크루즈 엔진을 선박용으로 개조한 엔진입니다. 타보면 알겠지만 정말 조용해요. 하지만 힘은 끝내줍니다. 40노트까지 나오거든요.”

기어를 전진에 놓고 최대속도로 올렸지만 말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대화가 될 만큼 조용했다. 보트 운전은 자동차 운전보다 쉬웠다. 기어도 전진과 후진, 중립뿐. 앞으로 밀수록 속력이 올라갔다.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도 배는 안정감을 잃지 않았다. 비록 핸들을 쥔 손이 긴장감에 부르르 떨리긴 했지만 수영도 못하는 기자가 창망한 바다를 40노트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 보트 가격은 5만 달러로 고급승용차와 비슷한 가격대다.

“해양레포츠는 돈 있는 사람들만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죠. 저기 딩기요트 타는 사람들 보세요. 누구든 딱 하루만 배우면 탑니다.”

홍 사무관이 “잠시 들를 곳이 있다”며 광활한 갯벌로 안내했다. 6월3일 국제보트쇼 개막과 함께 첫 삽을 뜬 해양복합산업단지 터였다. 화성시 서신면 장외리와 전곡리 일원 198만㎡(60만평)에 조성되는 복합산업단지(2012년 완공)에는 보트와 요트의 제조, 수리, 판매, 보관 등 해양레저산업 관련 산업이 입주할 예정이다. 암텍과 이 대표의 보트에 선박용 엔진을 납품한 씨즈올마린 등 5개 국내 업체가 이미 단지 입주를 약속했다.

취재를 마치고 전곡 마리나를 떠나려는데 딩기요트를 타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점심밥을 먹기 위해 인근 횟집으로 몰려갔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도 눈에 띈다. 어린이는 “오늘 배웠는데 생각보다 쉽다. 돛대가 얼굴에 부딪히는 것만 피하면 된다”며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이들은 화성시에서 무료로 마련한 요트 교육 및 체험에 참가한 사람들.

한 팀에 40명씩 일주일에 3회가 열리는데, 벌써 정원이 다 차간다고 한다. 이곳에서 요트 강습을 하는 인하대 생활체육과 유홍주 교수는 “경기도가 대중적 수요에 비해 너무 앞서나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조선시대 이래로 해양에 관심이 적었던 우리는 해양레저산업 투자를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세계 레저보트의 시장 규모가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20% 수준입니다. 우리는 이제 걸음마를 뗀 데 불과합니다.”

인터뷰/ 김문수 경기지사

“해양레저 왕국의 꿈, 우리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전곡항의 기적? 이제 시작일 뿐”
해양레저산업에 이토록 많이 투자한 계기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분야가 조선업, 자동차산업, 정보통신(IT)산업인데 이 세 가지가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이 해양레저산업이라고 판단했다. 소형 레저용 선박의 세계 시장 규모는 48조원으로, 대형 조선(57조원)에 육박한다는 사실도 투자를 결정한 계기가 됐다.”

해외 전문가들이 이번 경기도 국제보트쇼를 두고 ‘기적적인 성장’이라고 했다던데.
“외국인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miracle’ ‘amazing’이었다. 해양레저산업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나라에서, 그것도 조수간만의 차가 9m나 되는 곳에 1년 만에 마리나를 만들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지난해까지 국내에는 자체 기술로 요트를 만드는 업체가 두세 개밖에 없었지만, 올해엔 10여 개로 늘었다. 그들의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에 세계가 또 한 번 놀랐다. 경기도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들의 중복투자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3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여러 지자체가 해양레저산업에 관심을 갖는 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과잉 경쟁하지 않고 상생할 길을 찾으면 된다. 서로 시너지 효과가 나도록 중앙정부가 교통정리를 잘 해야 한다. 지자체별 특성을 살린 해양레저산업 육성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경기도가 해양레저산업 발전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특장점이 있다면.
“레저용 선박 구매 의사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수도권에 있다. 현재 부산 수영만 요트 경기장에 정박 중인 요트와 모터보트의 약 40%가 수도권 거주자의 소유다. 따라서 수도권에 배를 두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야 해양레저산업이 발전한다. 그런 점에서 경기도 서해안이 가장 적합한 지역이라고 본다. 산업기반도 탄탄하다. 현대기아자동차 연구소, 자동차 부품 클러스터, 삼성과 LG 반도체, 디지털 전자제품 업체 등 자동차산업과 IT산업 근거지가 대부분 경기도에 있다.”

해양레저산업 발전이 경기도민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라면.
“경기 국제보트쇼와 세계요트대회 행사만 해도 올해의 경우 전국적으로 생산유발 효과가 1719억원, 고용유발 효과가 1223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중 경기도 내 생산유발 효과는 1238억원, 고용유발 효과는 857명에 달했다. 해양레저산업단지가 완공돼 수백 개의 업체가 입주하면 지역경제도 자연스럽게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2009.07.21 695호 (p18~21)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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