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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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를 위해 小가 희생하려면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7-15 1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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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라.’ 누구나 쉽게 꺼내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자기가 제3자이거나 다수에 속할 때 하는 말입니다. 자신이 소수에 속한다면 이 말을 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소수의 희생만 강요할 뿐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었던 역사를 돌이켜보면 쉽게 수긍이 갑니다.

    그러다 보니 대의보다는 ‘무슨 수를 쓰든 살아야겠다’ ‘나 혼자 죽을 수는 없다’는 심리가 팽배합니다. 갈등 현장에서 소수가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지금 경기도 평택에서는 정리해고 통지를 받은 쌍용자동차 직원 900여 명이 격렬하게 농성을 벌이며 공장 가동을 막고 있습니다. 쌍용차 임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및 가족 1만명이 모여 쌍용차 노조의 공장 점거 파업을 규탄하는 집회도 열었지만, 농성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 쌍용자동차 공장이 살아야지 해고통지를 받은 직원들에게도 원상 복귀할 기회가 생기지 않냐”는 주장도 이들 앞에서는 ‘쇠귀에 경 읽기’입니다. “소수의 파업 때문에 어렵사리 운영되던 쌍용자동차가 문을 닫게 되고 1, 2, 3차 협력직원까지 모두 죽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냥 이들을 비난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미래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대를 위해 희생하라’고 강요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을까요? 그건 스스로 다수임에 안도하며 무책임하게 내뱉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모두 죽을 테냐’는 식의 다그침과 무조건적인 협상 강요는 현명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비록 지금은 해고대상자인 소수에 속하지 않지만 언제 내가 그 위치에 서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입장을 바꿔 그들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大를 위해 小가 희생하려면
    소수가 다수를 위해 희생되는 데 동의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소수의 희생을 보상하는 사회적 경험의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일단 ‘쌍용자동차가 살아야 한다’는 대의를 거스를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희망도 없이 거리로 내쳐진 그들에게 대책 없이 희생만을 강요하고 사회악으로 몰아가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그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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