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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기자의 It-Week | 마흔한 번째 쇼핑

달콤한 낮잠베개

달콤한 낮잠베개

달콤한 낮잠베개

중요무형문화재 서한규 선생이 대나무 속대를 엮어 만든 채상장을 옆에 대고, 이효재 선생이 안동포로 감싸서 만든 낮잠베개(오른쪽)가 효재 마루에 누워 있습니다. 좀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안에 마른풀 냄새 나는 메밀이 들어 있어서 한국식으로 아로마 테라피가 됩니다. 낮잠은 짧게 자는 게 좋답니다.여름휴가와 방학 때 좀비처럼 지내고 후회하지 말자고요.

몇 주째 ‘월화수목금월’의 생활을 반복하는 중입니다. ‘황 박사님’이 시켜서 ‘토일’ 대신 ‘월화수목금금금’인 것은 물론 아니고요, 금요일 밤에 자고 일어나면 월요일 아침이더라는 말씀이죠.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이어진 새벽까지 ‘마감’이 끝나고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가 퇴근한 밤부터 저는 마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라기보다, 공주와 함께 마법에 걸렸던 그 나라 아줌마처럼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어 월요일 아침에야 눈을 뜹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공주는 왕자랑 떠나버렸고요, 달콤한 꿀떡 같았던 휴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뒤죠(꿀떡은 희멀겋게 눈두덩과 양 볼에 붙어 있습니다). 마치 식당에서 밥 먹고 나오니 새로 산 구두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처럼 화가 납니다. 그리고 신발장에 ‘자기 신발은 자기가 챙기세요. 분실 시 식당 책임 없음’이라고 써붙인 문구를 읽은 것처럼 황당합니다.

‘좀비 모드’에 불이 들어온 이틀 동안 밥 먹고 화장실 가기 위해 잠시 몸을 일으키는 시간 외에는 방에서 마루, 침대에서 바닥으로 옮겨다니며 베개에서 쿠션 혹은 곰인형, 책 등 적당히 부피가 있는 건 뭐든 잡아끌어 베고는 자고 또 잡니다. 달아서 많이 잔다기보다, 잠이 마치 피할 수 없는 두려운 업보처럼만 여겨집니다. 이 정도면 수면장애에 듭니다.

대표적인 수면장애는 물론 불면증입니다. 꽤 오랜 기간 지속적, 반복적으로 수면 유지가 어려워 원기 회복이 힘든 증상을 가리킵니다. 밝은 낮에도 잠을 과도하게 자는 건 주간과다수면(excessive daytime sleeping)이라고 부르더군요. 주간과다수면은 수면장애의 하나인 기면증에서 나타나는 증상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면증이 두 편의 영화로 유명해졌는데요, 리버 피닉스 주연의 ‘아이다호’와 전지현 주연의 ‘4인용 식탁’이 그것이죠. 영화에서는 미남미녀 스타들이 드라마틱하게 스르륵 쓰러지며 잠이 들어버리기 때문에 기면증은 동정심을 유발하는 낭만적인 질병의 이미지를 얻었죠.

기면증은 낮에 과도하게 졸리고, 렘(REM)수면이 비정상적으로 발현되는 신경정신과 질환이라고 합니다. 원래 수면이 비(Non)렘에서 점점 깊은 수면, 즉 렘으로 옮겨가야 정상인데, 눈을 뜨고 있다가 갑자기 렘으로 옮겨가면서 깊은 잠에 빠져버리는 거죠.

불면증이든, 기면증이든 수면장애는 스트레스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하며-왜 아니겠습니까-부스럼이 나는 것도 아니어서 겉으론 별문제 없어 보이지만, 일상생활을 어렵게 하고 종종 위험한 상황도 만든답니다. 우리는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과 너무 많은 자동차, 그리고 절대로 상대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살고 있으니까요. 또 정신질환이 없어도 수면장애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자살 시도 가능성이 정상인보다 2.6배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더군요.

그런데 성인의 무려 10명 중 3명이 불면증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1000명 중 1명 정도는 기면증 환자라고 합니다. 또 저처럼 주말에 좀비 모드가 반복되는 수면장애를 가진 직장인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최근 렘수면 패턴에 맞춘 에어컨이 출시됐다거나 렘수면 침대가 인기라는 것도 수면장애로 괴로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일 겁니다.

한국식 자연주의 살림법으로 유명한 이효재 선생 집에 갔다가 ‘낮잠베개’들이 마루에 누워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저의 수면장애를 이야기하니 “베개 안에 메밀을 넣어서 머리를 차게 해보라”고 권해주시더군요. 메밀에선 따뜻한 풀향도 나서 아로마 테라피 효과도 있어요.

그리고 낮에 졸리면 졸린 대로 좀 높은 베개를 베고 자보랍니다. 낮에 늘어지게 자면 오히려 해가 되니, 친구 이야기 소리를 잠결에 들으면서 깜빡깜빡 조는 정도가 좋다고요. 하긴 ‘잠이 오면 자는 것’이 효재 식이죠. 안동포와 대나무 속대로 솜씨 좋게 만든 낮잠베개, 보기만 해도 얼마나 달콤한지 그 무서운 잠과 화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간동아 2009.07.14 694호 (p71~71)

  • 김민경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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