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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풍년이 들어 벼 한 석 보낸다”

600여 년 선조들 타임캡슐 ‘근묵’, 완역본으로 재출간

“풍년이 들어 벼 한 석 보낸다”

“풍년이 들어 벼 한 석 보낸다”

성균관대 박물관이 펴낸 완역본 ‘근묵’. 책을 엮은 위창 오세창은 부유한 역관 집안 출신으로 국외로 유출되는 서화를 수천 점 감식하고 구입해 기초 미술사학 발전에 공적을 남겼다.

현대인은 문자메시지로 살지만, 소설 ‘임꺽정’에 “양반은 편지로 살고, 아전은 포흠으로 살고 기생은 웃음으로 산다”고 할 정도로 조선시대까지 가장 주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편지였다.

그러나 편지는 인편으로 전달됐고 종이도 구하기 쉬운 물건이 아니었기에 자주 쓰기는 어려웠다. 그런 만큼 편지에는 보내고 받는 사람의 진정성이 담기고, 시전지를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디자인 감각도 더해졌다.

역사책에서 그 이름을 들었던 ‘근묵(槿墨)’은 고려의 정몽주에서 대한제국 말기의 이도영까지 선인 1136명의 서간류 소품을 감식학의 대가인 위창 오세창(1864~1953) 선생이 수집해서 엮은 책. 6월29일 ‘근묵’을 소장한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이 처음으로 한글로 풀고 주석을 단 완역본 ‘근묵’ 출간을 발표해 미술사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풍년이 들어 벼 한 석 보낸다”
‘근묵’은 작가의 연대가 600여 년에 걸칠 뿐 아니라 작가층도 왕에서 승려, 중인을 망라한다. 따라서 글씨는 물론 당시 사회와 경제,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지만, 워낙 방대해 번역과 출판 작업이 지금까지 미뤄졌다.

세월이 흘러 선조들이 쓰던 한자와 한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 점점 줄어들어 시급하게 번역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성균관대 박물관에서 6년에 걸친 노력 끝에 번역과 주석을 단 완역본을 펴냈다. 덕분에 일반 독자들의 감상도 훨씬 쉬워졌다.



완역본 ‘근묵’은 1000질이 한정 제작돼 판매된다.

정조1752~1800가 친척에게 보낸 선물 목록

“상림(왕의 농장)의 벼 한 석. 금년 가을 풍년이 들어 소출이 배나 많아 전에 말로 보내던 것을 석으로 보낸다. 내원의 담배 두 봉. 토양이 적합하고 맛이 좋아 삼등(평남 삼등에서 나는 질 좋은 담배)에 못지않다. 게장 한 항아리. 원에서 딴 밤 한 말. 새로 심은 것인데 맛이 이렇게 좋다.”

“풍년이 들어 벼 한 석 보낸다”
김정희1786~1856가 아내를 잃은 사람에게 보낸 편지

“아내를 잃은 슬픔에 놀라움을 누를 수 없습니다. … 나는 일찍이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단맛과 쓴맛을 잘 압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슬픔을 삭이는 데는 종려나무 삿갓을 쓰고 오동나무 나막신을 신고 산색을 보고 강물 소리를 들으며 방랑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윤선도1587~1671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

“작년에 받은 영감의 편지를 지금도 펼쳐보며 그리움을 달랩니다. … 저는 영감의 염려 덕분에 죽지 않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으나 노환이 날로 심하여 뼈대만 남았을 뿐입니다.

… 영감이 만약 왕명을 받아 이쪽으로 오신다면 죽기 전에 한 번 해후할 길이 있겠지만 어찌 바랄 수 있겠습니까.…”

이덕무1741~1793가 성리학자 조경암에게 보낸 편지

“4월20일 쓰신 편지를 이달 26일에 받았습니다. … 대군자께서 저를 문장의 명목으로 지목하신 것은 잘못된 격려이며 진정한 충고가 아닌 것 같습니다. … 과거시험의 속된 학문에 골몰하여 세월을 허송한 것도 이미 죄과인데, 어찌 문장에 힘을 쏟을 겨를이 있었겠습니까. 예로부터 ‘불후’라고 자칭하는 유명한 인물과 학자들이 스스로 세우고 스스로 의지한 것은 모두 축적된 힘에서 나왔습니다.

“풍년이 들어 벼 한 석 보낸다”
… 근년 이후로 혈기가 장성하고 지혜가 조금 열려 명예를 추구하는 썩은 학자의 습성을 자못 씻으려고 지난날을 반성하며 늘 방안에 홀로 앉아 ‘논어’와 ‘소학’의 의미를 되새기며 거기 있는 한마디 말로 나의 행동 하나를 검증하고 한 구절로 나의 생각을 비교하며 진솔한 성품을 돈독히 하여 결점을 고치고 모자람을 보충하는 법을 삼고자 합니다. 그러나 자연히 쌀과 소금이 떨어지면 아녀자의 우는 소리에 마음이 흔들려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여 스스로 실행하다가 그만두고 맙니다. … ”



주간동아 2009.07.14 694호 (p66~67)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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