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3

2009.07.07

미국에서 사고 치고 한국에선 나 몰라라?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7-01 1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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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명문 의대를 졸업한 의사 P씨는 15년 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과실치상 등 3가지 의료사고로 현지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했습니다. 이후 유죄판결을 받고 의사면허를 박탈당했습니다.

    그러자 P씨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비록 미국 의사면허는 빼앗겼지만 한국에서 병원을 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는 ‘만성피로증후군 전문가’라는 간판을 내걸고 환자를 모았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그가 미국에서 어떤 의료사고를 냈으며 왜 의사면허를 박탈당했는지 알지 못한 채 그에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서도 같은 의료사고가 터졌습니다. 환자들에게 스테로이드를 과도하게 투약하는 등 엉터리 진료를 벌이다 법적 소송까지 불거졌습니다.

    미국에서 사고 치고 한국에선 나 몰라라?
    P씨처럼 한국 의사면허와 미국 의사면허를 모두 가진 사람이 미국에서 의료과실 등 불미스러운 일로 면허가 취소돼도 한국에서는 버젓이 진료행위를 합니다. 미국 의사면허 취소가 한국 의사면허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 의료사고를 냈다고 한국에서 의료활동을 못하게 해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의료사고가 고의 혹은 중대한 과실 때문에 빚어졌다면 환자들에게 그 사정을 알리는 등 어느 정도의 규제가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문제는 이런 점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환자들은 의사가 외국에서 무슨 사고를 쳤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보건복지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시인하지만, “특별한 심사 제도는 없다”며 손을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해외에서 문제를 일으킨 의사들이 제재나 검증절차 없이 귀국해 환자를 보는 현실. 결국 피해는 애꿎은 환자들에게 돌아갈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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